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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는 지난 2012년 마리몬드를 설립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폰케이스, 에코백, 티셔츠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마라몬드 제품은 수지, 박보검 등 유명인이 사용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지난해 초 ‘수지 폰케이스’라는 단어가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를 장악했다.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웨이보의 밤’ 행사에 참석한 뒤 귀국한 가수 겸 배우 수지(배수지·22)가 손에 들고 있었던 보랏빛 플라워 프린팅을 한 휴대폰 케이스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날 해당 휴대폰 케이스의 제조업체 ‘마리몬드’ 역시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특히 수익금 일부가 기부 활동으로 사용된다는 의미가 함께 알려지며 주문이 폭주했고, 모든 재고가 품절됐다.
지난 2012년 설립된 마리몬드는 휴대폰 케이스를 비롯해 에코백, 백팩, 티셔츠 등 패션 잡화를 제작 및 판매하는 소셜벤처다. 마리몬드는 나비를 뜻하는 라틴어 ‘마리포사’와 새 생명과 부활의 메시지를 담은 고흐의 그림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합성한 이름이다.
마리몬드는 ‘세상 모든 이들의 존귀함 회복’을 기업미션으로 내세우며 동반자들을 설정해 그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리몬드는 첫 번째 동반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제품을 생산·판매해 수익금 중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두 번째 동반자로서 ‘어머니’를 선정해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 계기로 사업 진출…“실패 후 생각을 바꿨죠”
윤홍조(30) 마리몬드 대표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때였다. 윤 대표는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는 대학생 동아리에 소속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수제비누, 에코백 등을 생산·판매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사업을 했다.
“당시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일종의 부채의식이 생겼죠. 교과서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접했을 때는 일종의 맹목적인 연민, 분노 정도를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나 직접 광주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과 생활을 하며 할머니들이 단지 활자나 생존 숫자로 존재하는 분들이 아니라 실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윤 대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기획·추진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다.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로 스카프, 브로치 등의 상품을 제작해 판매했으나 시장은 냉담했다.
“당시에는 조금 무모했었어요. 상품에 좋은 의도만 있으면 사람들이 구매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당시 실패는 저에게 ‘왜’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왜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했어요”
윤 대표의 고민은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할머니들 한분 한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윤 대표에 따르면 할머니들도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에 신기해하고 SNS에 사진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 한 개인이다.
▲ 윤 대표는 동아리 활동 시절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맺은 할머니들과의 인연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한 분 한 분의 할머니들의 스토리를 공부한 후 그에 맞는 꽃을 선정하고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매년 2개의 플라워 패턴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소개한다. 발표된 플라워 패턴과 이야기들은 마리몬드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스카이데일리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했어요.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오만한 생각이었죠. 할머니 개개인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분들 각자의 매력이나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들’로 묶어버리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마리몬드 상징 ‘플라워 패턴’의 탄생…할머니들의 스토리를 담는다
윤 대표는 ‘무엇을 통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결과 마리몬드의 상징인 ‘플라워 패턴’이 탄생됐다.
마리몬드의 플라워 패턴은 할머니들이 원예 심리치료 과정을 통해 만든 압화(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할머니들이 그린 꽃 그림을 패턴으로 디자인해 각종 제품에 넣기 시작했다.
“플라워 패턴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윤 대표와 직원들은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 어울리는 꽃을 선정해 새로운 패턴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1년에 두 번씩 새로운 패턴을 출시했다. 시즌마다 출시되는 새 패턴들은 마리몬드 홈페이지에 할머니 개개인의 스토리와 함께 소개됐다. 그리고 패턴 북, 휴대폰 케이스, 에코백, 티셔츠 등에 프린팅 돼 제품화됐다.
“일례로 김학순 할머니의 패턴은 무궁화입니다. 독립군의 딸로 때어난 김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증언하신 분이에요. 무궁화는 밤 새 꽃이 질듯 하면서 다음날 다시 활짝 피는 속성이 있습니다. 김 할머니의 강인함과 용기가 무궁화와 닮았다고 생각했죠”
현재 플라워 패턴 ‘꽃 할머니’ 시리즈는 아홉 번째 ‘동백 이순덕 할머니’까지 출시됐다. 최초 2년까지는 할머니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패턴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꽃이 선정되면 전문 디자이너가 패턴을 만들고 있다. 보다 많은 할머니들의 스토리를 담아내기 위해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패턴에 담아내자 소비자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이후 매출은 매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지난 해 16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 매출은 30억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판매수익의 50%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된다. 현재까지 누적 기부금은 5억원을 넘었다.
마리몬드는 공식적으로 연예인 후원이나 협찬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리몬드의 뜻에 동참하는 연예인들이 스스로 구입해 입으며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다. 배수지 외에도 연기자 박보검, 블락비의 지코, 딕펑스의 김현우, 나인뮤지스의 경리 등이 마리몬드 제품을 소유했다.
“후손들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른 기업 미션
플라워 패턴 사업이 성공하자 윤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가 또 다른 사업을 생각하게 된 것은 “후손들은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할머니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윤 대표는 ‘모든 이들의 존귀함 회복’이라는 기업 미션을 내걸었다. 고객들이 익명으로 고민을 올리면 작가들이 시(詩)로 화답하는 ‘마리레터’ 사업과 10여명이 그룹 활동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자기발견학교’를 주 1회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가르침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귀함을 다시 깨달아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사업을 진행했어요. 또 사람들이 저희 마리몬드를 좋아하게 되면 그만큼 할머니들의 스토리가 많은 분들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여러 사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 윤 대표는 “후손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는 할머니들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이들의 존귀함 회복’을 기업미션으로 내세웠다. 이에 맞게 ‘마리레터’와 같은 고민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어머니’들을 위한 사업도 새롭게 추진 중이다. ⓒ스카이데일리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윤 대표 역시 사업 중 행복한 일들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함께 교류했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거나 함께 했던 직원들이 불행한 모습을 보일 때 윤 대표는 사업의 무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직원들이 버거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죠.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사업인데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괴로워요”
윤 대표는 지난 해 말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아쉬워 했다. 그래서 마리몬드는 당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소녀상 디자인 제품을 출시했다. 제품 수익금 전액은 관련 단체인 정의기억재단으로 기부됐다. 정의기억재단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된 교육·연구·복지·사료발굴·장학 사업을 하는 곳이다. 당시 마리몬드는 소녀상 디자인 제품을 통해 2억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했다.
윤 대표는 향후 다른 기업과 콜라보, 모바일 플랫폼 개발, 중국 내 ‘할머니 기억 숲’ 조성 등을 통해 ‘존귀함의 재조명, 회복’을 힘쓸 계획이다. 두 번째 동반자인 ‘어머니’에 이어 또 다른 존재들을 동반자로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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