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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민대통합위원회]
“와 대한통운 택배차다~ 아저씨, 우리 아빠도 대한통운 다니시는데..”
“그래? 너희 아빠가 누군데?”
“이충호요”
“그래? 네 아빠가 이충호 씨야? 더운데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렴”
택배 기사 아저씨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주머니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내주셨습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빠는 대한통운 택배 부서에서 차량의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담당하셨어요. 택배 기사 아저씨들께 정기적으로 안전교육을 하셨기 때문에 대부분 아저씨가 저희 아빠를 알고 계셨던 거예요. 가족끼리 차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동네에서 대한통운 차량을 발견하면 그때마다 “와~ 아빠 회사 차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저는 아빠 회사에 대해 프라이드가 강했었나 봐요.
아빠는 1970년 2월, 경상북도 상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셨어요. 지금은 일곱 살에 학교에 가는 경우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대요.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아빠가 어릴 때 학교에 너무 가고 싶어 해서 또래보다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셨다고 해요. 젊어서부터 할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힘든 농사일은 할머니의 몫이었답니다. 기계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지금도 농촌의 생활이 쉬운 게 아닌데 그 당시는 인력으로 대부분의 농사일을 해야 했으니 할머니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아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지금 사는 광명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명이란 곳으로 이사를 온 이후에도 집안 살림의 모든 책임은 할머니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가 아빠의 대학 입학을 한 달 앞두고 쉰 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지요.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믿어지지 않으셨대요. 고생만 하시고 돌아가신 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슬퍼서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던 거죠. 지금도 아빠는 할머니 생각을 하시면 슬픔을 감추지 못하세요. 어쩌면 아빠가 빨리 결혼하게 된 이유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어요.
군대 제대 후 복학하고 난 뒤에 아빠는 집안의 사업을 도우면서 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했던 아빠는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하셨지요.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엄마와 결혼을 하셨답니다. 다른 친구들은 4학년이 되어 취업준비 때문에 바빴지만, 아빠는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중에 그 당시에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후회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공부를 열심히 할 기회가 흔치 않다면서요. 전 지금 꿈꾸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할 때 이렇게 책상에 콕 박혀서 공부하는 게 불만인데요. 아빠 말씀을 들어보니 이 시기에 공부하지 않으면 커서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제까지나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던 집안 회사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다가 제가 태어나던 해에 부도가 나고 말았다네요. 아빠는 1년가량을 직장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하시다가 대한통운에 취직하셨대요. 집안 회사에서 편하게 직장생활 했던 것은 평범한 직장생활이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대한통운이 제대로 된 첫 직장이나 마찬가지였죠. 남들보다 뒤늦은 직장 생활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셨대요. 그래서인지 주위의 인정을 받으면서 재미있게 일을 하셨다고 해요. 그러던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대한통운을 퇴직하셨습니다. 제 기억에는 없지만 퇴직하시기 전에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셨다고 해요.
“현석아, 아빠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해. 그런데 그 일은 지금과는 달리 시간을 내서 현석이하고 많이 놀아도 줄 수 있는 일이란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려는 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응 아빠, 저하고 많이 놀아줄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좋아요. 그만두세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빠의 외가 식구들은 간암으로 모두 일찍 돌아가셨는데 간이 나쁜 가족력이 있었던 아빠는 퇴직하기 두 해전에 병을 얻어 회사를 휴직하고 한 달 동안을 병원에 입원하셨었대요. 전 아빠가 아프셨고 입원까지 하셨다는 기억이 없어요. 아빠의 말씀을 듣는데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지금은 주5일 근무제로 인해서 토요일에는 학교도 쉬고 직장도 근무하지 않지만, 그때는 토요일도 출근했다고 합니다. 아빠 역시 우리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다 보니 일요일에는 TV만 보고 피곤해서 밀린 잠을 자기에 바쁘셨지요. 그렇기에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병상에 누워있던 한 달 내내 너무나 가슴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많은 돈을 벌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들에게 좋은 아빠도 아닌 것 같고.. 그때 아빠의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돈은 적게 벌어도 꼭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아빠의 퇴직을 반대했지만, 아빠의 그런 뜻을 꺾을 수는 없었죠. 아빠는 저의 대답에 용기를 얻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물론 매년 새 학기가 되어 학부모 상담이 있을 때면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달리 아빠가 학교에 오십니다. 초등학교 시절 전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빠가 학교에 오셨었죠. 나중에 엄마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제가 살던 아파트 엄마들 사이에서 “전학 온 현석이는 엄마가 없나? 아빠가 학교엘 오시고..” 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대부분 가정에서 아빠들은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자녀의 교육은 엄마들의 몫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중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고등학생이 된 올해도 아빠는 제가 다니는 학교의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빠는 지금 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직업도 바꾸셨던 만큼 퇴직하시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빠와 저는 체험학습을 비롯한 캠핑도 다니고 많은 시간을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아빠와 엄마, 형 그리고 저까지 네 식구입니다. 아파트 3층에 사는 우리 집의 별명은 자칭 ‘쩌렁쩌렁 302호’예요. 왜냐고요? 우리 가족은 모두 목소리가 크거든요.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은 물론이고 추운 겨울만 아니라면 베란다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평소에 가족끼리 대화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집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들릴 정도라고 해서 형이 붙인 별명이에요. 이런 우리 집의 분위기는 단연 아빠가 리더를 하시지요.
아빠는 가끔 엄마와 우리에게 미안함을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예전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셨다면 경제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빠가 계속 직장생활을 하셨다면 지금 우리 가족이 느끼고 있는 이런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화목함’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주위에서 형은 외삼촌을, 저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는 혼자만 생각합니다. ‘나도 이다음에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다면 아빠처럼 내 아이와 함께 많이 있어 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저는 성격이 무뚝뚝해서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다음에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바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되겠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아빠의 스킨쉽 요구를 거절할 때면 아빠가 살짝 토라질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제가 먼저 아빠를 안아드리려고요.
이번 기회에 아빠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아빠들보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더 많이 만드시는 아빠지만 이렇게 아빠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은 없었거든요. 처음엔 쑥스러워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점점 활기차게 변하시면서 이야기를 끝내실 줄 몰랐답니다. 아빠는 아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매우 즐거워하셨어요. 진작에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볼 걸 그랬나 봐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아빠의 삶을 들으면서 아빠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빠도 저를 인터뷰하고 제 이야기를 쓰고 싶으시대요.
학교 끝나면 학원가고, 주말에도 학원과 독서실 다니느라고 어릴 때와 달리 아빠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즐거워하시는 아빠를 보니 한편으론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 열심히 공부해서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경제적으론 풍족하지 않아도, 언제나 화목한 우리 가족을 이끌어 주시는 우리 아빠!
쩌렁쩌렁 302호 우리 아빠가 전 정말 자랑스러워요.
건강하게 지금처럼 쩌렁쩌렁 아빠로 제 곁에 계셔 주세요.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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