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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곤 약사는 투철한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부천에서 심야약국을 운영해오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며 심야약국의 문을 두드렸다. 이웃의 고통을 눈 감을 수 없었던 그는 벌써 6년째 심야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추우시죠, 따듯한 유자차 한 잔 하고 가실래요”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위치한 바른손약국을 찾았던 손님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법한 인사말이다. 김유곤(56) 약사가 운영하는 바른손약국은 부천시는 물론 인근지역에서도 명물로 통한다.
바른손약국에서 2시간가량 인터뷰를 하면서 살펴본 결과, 김 약사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친절하게 안부를 묻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를 권했다. 물론 김 약사가 권하는 차는 무료로 제공된다.
김 약사가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유자차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1992년 부천에서 약국을 개업하면서부터 이웃돕기를 하고 있다. 유자차를 파는 것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다. 유자농가의 소득 향상에 일조하면서 불우이웃도 돕는 것이다.
“유자차 한병 판매금액은 1만5000원입니다. 4분의 3인 12000원은 고스란히 농가에 전달합니다. 나머지 3000원은 모아서 어려운 농촌민이나 이웃돕기에 사용합니다. 유차청을 구입하는 분들은 맛있는 차도 마시고 어려운 이웃도 도울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바쁜 직장인을 위한 ‘심야약국’…가족 반대 불구 6년째 24시간 대기 약사
바른손약국이 명물이 된 것은 무료 유자차 때문이 아니라 다른 약국과 달리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이다. 약사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약사는 김씨 단 한명이지만 거의 연중무휴다. 2010년 6월19일부터 지금까지 24시간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약사회의 심야영업 철회방침 이후에도 24시간을 고수하는 1인 약국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100% 24시간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토요일에는 오전 12시까지, 일요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교회를 가기 위해 오후 7~9시까지 자리를 비운다. 낮시간에는 체력단련을 위해 한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그래도 하루 대부분을 약국에서 보낸다. 약국의 구석에는 냉장고·싱크대 간이침대 등 그가 24시간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마련돼 있었다.
심야약국 운영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수지타산도 안 맞지만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그가 약국에서 새우잠을 자며 손님들을 기다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늦은 밤시간이나 새벽에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 김유곤 약사는 약학대학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약사란 직업에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책임감과 사명의식을 갖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지난 2010년 전국적으로 심야약국 운영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각 지역별로 1곳을 신청 받았는데 아무도 하려 들지 않았다. 기독교인인 김 약사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말로만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쟁이’라는 오해를 벗겨주고 싶어 심야약국을 신청했다.
그가 6개월만 심야약국을 하기로 했을 때까지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운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운영을 하자 가족들이 반대를 했다. 그의 건강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아내가 20일 정도 같이 이곳에서 먹고자는 것을 해보더니 ‘도저히 할 것이 못 된다’며 그만 둘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더군요. 그래서 약 두 달 간 공식적으로 심야시간 운영을 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눈에 밟혀 가족들 몰래 비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죠. 결국 제 마음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나서 다시 공식적으로 심야약국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심야까지 운영하는 것이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약사는 ‘그렇지 않다’는 말과 함께 밝은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 병원놀이나 약국놀이를 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고 너무 재밌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뭐든지 자기가 즐기는 것을 할 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밤새 클럽에서 놀아도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죠. 저는 약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놀러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전혀 힘든 일이 될 수가 없죠”
김 약사는 체력이 닿을 때까지 동네에서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바른손약국의 불빛을 계속 켜 놓을 생각이다.
“일반 약국과는 달리 그냥 차만 마시러 왔다가기도 하고, 짐을 맡기고 가기도 한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 저는 약국이 단순히 약만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놀러오는 손님들도 대환영이죠”
무당에 대한 반발심으로 택한 약대…군대에서 깨달은 평생 ‘업(業)’ 약사
김유곤 약사는 주변의 권유와 종교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로를 약대로 선택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사실 암기에 소질이 있어 문과가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학창시절 법조계에 진출해 ‘법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큰아버지·큰어머니가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연좌제에 걸려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어려운 시대였죠. 그래서 법대 대신 약대를 권유받아 가게 됐습니다”
약대로 진로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는 친구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무당인 친구 어머니가 있었다. ‘연세대학교 공학대학’과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무당이 연대공대를 가라고 말을 하자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반항심으로 중앙대 약대를 선택했다.
“오히려 처음에는 약사라는 직업에 편견도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약대는 여자만 가는 곳이란 생각이 팽배했었어요. 더군다나 약대에 들어간 후에도 약사에 뜻이 없다보니 신학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혼자서 운영하다보니 끼니도 약국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조제실 안쪽에 마련된 싱크대와 간이침대가 김유곤 약사가 이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족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하지만 김 약사는 체력이 닿는 한 계속 심야약국을 운영할 계획이다. ⓒ스카이데일리
‘약사’라는 직업에 딱히 매력과 소명의식을 찾지 못한 그는 군대를 다녀와서 진로를 변경할 결심을 했다. 군 입대 후 그는 수색대로 배치를 받았다. 약사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으러 떠나기 직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누군가 그가 탄 지프차를 막아섰다. 한 부대에서 급하게 약제병이 필요해졌다며 그가 타고 있는 차를 막았던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었죠. 원래 약대에 다니더라도 1학년은 약제병이 될 수가 없죠. 그런데 저는 약대 1학년생임에도 약제병이 됐어요. 이날 일을 계기로 약사라는 직업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는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소명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도 그렇고 최순실게이트도 그렇고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불거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사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약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약국을 지키는 것입니다”
김 약사에 따르면 새벽시간에 약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른손 약국의 피크타임은 다른 약국들이 문을 닫는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두 시간이다. 사실 자정까지만 하는 것이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아침에는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늦은 시간 문 연 약국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12시 넘어서까지 오는 손님은 많지 않습니다만 그 분들은 통증이 심각한 경우가 많아요. 시흥에서 치통으로 잠을 못 이루는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이가 배가 아프니 관장약을 사기 위해 시흥에서 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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