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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불요불급한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챙겨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도 이른바 선량(選良)들은 국민 혈세를 차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진수성찬’을 호화롭게 차려 질펀한 먹거리 굿판을 벌였다. 그것도 최순실 국정농단에 책임있는 일단의 국회의원들까지 하이에나처럼 죽은 고기를 물어뜯는 듯한 추잡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국민들의 억장을 또다시 참담하게 무너뜨렸다.
국회는 지난 3일 새벽 400조5000억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을 사실상 얼렁뚱땅 통과시켰다. 국민 혈세인 만큼 조목조목 따져 아끼고 아껴쓰도록 하는 예산검증 및 심사 과정이 국정농단 사태라는 시의적절한 핑계거리를 슬쩍 들이밀고 어물쩍 대충 넘어갔다는 점이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한 직·간접 예산 4000억원이 삭감되고 노동4법 개정이 미뤄지며 3000억원대의 구직급여 예산이 깎인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그 반대급부로 전례없는 표밭 다지기용 실속을 챙겼다.
마치 최순실 예산이 대폭 삭감된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라도 하듯 국회의원들은 국정농단으로 순혈이 낭자한 피 묻은 국민 혈세를 챙겨 먹기에 바빴다. 예결위는 그런 하이에나 같은 국회의원들의 이권복마전에서 교통정리 역할까지 자임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예결위는 예산증액심사에 들어가면서 소위 먹이배분을 대놓고 했다. 국민들의 피맺힌 절규와 탄식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무려 4000여건에 40조원의 호화로운 성찬 밥상을 국회의원들 앞에 성대하게 차렸다.
국회의원들은 어지러운 국정마비 상태를 마치 금준미주(金樽美酒)로 삼았고, 국민들의 원성소리를 옥반가효(玉盤佳肴)로 곁들이는 듯한 막가는 태도를 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먹기 좋은 안주 하나에 수십억, 수백억씩 하는 값비싼 먹거리 잔칫상은 그렇게 국정이 혼란스럽고 국민들의 관심이 딴 곳으로 가 있는 틈을 타 스리슬쩍 차려졌다.
그 중에서도 진박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대표의 이른바 ‘이정현 예산’은 가관이었다. 국정농단 연대책임의 최일선에 있는 그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소속으로 있으면서 17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최순실·차은택 예산’ 삭감을 지켜보며 기가막히게도 자신의 지역구(전남 순천) 예산은 조목조목 잘 챙겼기 때문이다. 그의 당초 증액요구는 야간경관, 스포츠센터, 수영장, 골프실습, 기념물 건립 등 총 5건 234억원에 달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국가경제 이상으로 시급을 다투는 예산항목들이 없었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순천만 야간경관 조성사업 등 총 4건에 걸쳐 지역 예산 144억원을 확보하는 치적을 쌓았다. 물론 순천시민들에게 이들 예산은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경제의 풍향을 한치 앞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국민들로부터 거둔 돈을 한 푼이라도 절약해 쓰도록 해야 할 국회의원이 한건에 수십억원씩 펑펑 쓰도록 자기주머니를 챙겼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이기주의 행보다.
이 같은 이정현 예산을 두고 정계 일각에서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정치적 이기주의로 지역 민심잡기에만 나선 것은 사실상 온 국민을 배신하는 행태일 뿐만 아니라 국민은 물론 순천시민도 바로로 전락시키는 행태다. 또한 친박의 핵심임을 자청해온 사람이 정작 정치적 위험상황이 닥치자 박 대통령을 버리는 깃발을 공개적으로 흔든 행위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물 먹인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등의 원색적인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이정현 의원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국회에서 완장을 찬 인사들이나 중량감 있는 인물들이 지역예산 숟가락을 올리거나 속된 말로 빨대를 꽂아대기 바빴다. 최순실·차은택 삭감밥상이 차려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유성엽 위원장(국민의당 사무총장)은 숟가락 하나를 슬쩍 걸쳤다. 이정현 예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는 지역구(정읍·고창) 예산으로 경찰서 신축비용 10억원, 생활폐기물 매립장사업비 5억원 등을 챙겼다.
친박 좌장 중 한명으로 꼽히는 최경환 의원도 예의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초이노믹스’로 불리며 무리한 확장적 포퓰리즘 예산운영으로 국민을 빚무덤으로 만든 장본인인 그는 지역구(경북 경산)에서 무선전력 관련 사업비 명목으로 10억원의 예산을 따냈다. 국고를 불필요하게 축낸 초이노믹스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은 빚과 함께 허리띠를 추가로 졸라매야 하게 됐지만 최 의원은 여전히 국고를 뽑아 쓰는데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행태를 저질렀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교량건설 10억원, 길 조성 3억5000만원 등의 지역예산을 뽑아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목포간 호남고속철도 예산 655억원을 늘렸다. 대권 잠룡중 한 사람인 김부겸 의원은 공단재생 및 정비사업 등 이런저런 3건의 지역예산 94억원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하천공원 조성사업 10억원, 경찰서 신축예산 7억원 등을 확보했다. 추 대표는 특히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호남비전위원회를 통해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광주·전남 4376억원, 전북 800억을 증액시켰다고 자랑했다.
이밖에도 많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앞서 예산심사 초기 지역예산을 늘리지도 말고 자랑도 하지 말자는데 의기투합 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강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사상 첫 400조원이라는 거대 예산은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국민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겠다는 의도와 다르지 않음에도 국회의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득의에 찬 태도를 드러냈다. 내년 예산은 200조원을 넘어선지 12년, 300조원을 넘어선지 6년만이다. 올해 예산보다 무려 14조원이나 늘어났다. 국민부담이 그만큼 크게 가중됐다는 얘기다. 국회는 이를 애써 줄이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실세예산이라는 소위 정치권의 ‘쪽지예산’들이 독버섯처럼 들어간 새해 예산은 국민들을 향해 국회원들이 진액을 빼먹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뛰어난 인물이라는 선량들의 고혈 빼내기 기술이 또한 대단하다고 해야 할 판국이다. 나아가 국민이 죽든 말든 자신들의 정치적 흥행만을 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비열하기까지 했다.
국민들 관심이 청와대를 향할 동안 여의도에서는 국민들을 위한 척 앞에서 정의를 외쳐댔지만 정작 뒤에서는 국민곳간을 몰래 털어먹는 시궁쥐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금준미주는 백성들의 고혈이고 옥반가효는 백성의 기름이라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은 마치 자신들만을 위한 술상·밥상으로 생각하고 먹고 마시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국회는 다소 시간이 늦더라도 국가 비상사태 시국에 흐드러지게 벌인 ‘하이에나식 예산 굿판’을 전면 백지화 하고 새해 예산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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