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폭력…공익방송, 불행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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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폭력…공익방송, 불행을 팔다

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변효선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1-03 22:33:39

▲ 변효선 기자(산업부 1팀)

시선은 권력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주장한 말이다. 라캉에 따르면 많이 보는 사람은 권력자가 되고 반대로 보여지는 사람은 종속자가 된다.

원형감옥의 일종인 ‘판옵티콘’은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다. 원형감옥의 중앙에는 감시탑이 높게 설치돼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다수의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자리한다. 감시탑의 조명은 어둡고 수용자들의 방은 밝다.

이 빛의 비대칭 때문에 감시자는 아래를 볼 수 있어도 수용자는 감독자를 볼 수 없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용자들은 ‘자기 검열’을 시작하고 감시자들은 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게 된다.

굳이 서양까지 갈 필요도 없다. 언제나 힘 있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시선의 비대칭은 존재했다. 조선시대 왕들은 항상 신하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시선의 비대칭은 권력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런 배경 아래서 조준호 엔젤스헤이븐 대표가 한 말은 꽤나 인상 깊었다. 그는 인터뷰 당시에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는 “높은 금액의 모금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행을 드러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경섬유종에 걸렸던 사람이 방송을 타면서 10억여원의 모금액을 받았던 사례를 들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공익방송은 비슷한 양상을 취한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모금을 받기 위해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광고한다. 그리고 성우는 이 영상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30초마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 불행한지 어필할수록 많은 모금액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TV와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이들과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 사이에는 극심한 시선의 비대칭이 생긴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묘한 권력 관계가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 절실한 이들에게는 그 시선과 그로 인한 도움마저 절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엔젤스헤이븐 및 사회복지관계자들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함에도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고 싶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TV에 나오는 이들은 벼랑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말에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TV에 나오지 않으면 알지 못해 도와줄 수 없다”고.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그들이 벼랑 끝에 서야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까. 그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면서 절박한 목소리를 낼 때까지 우리사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사회 속에서 그들을 배제하고 살았을까.

공익 광고 속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약자를 마주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그렇게 이들은 우리 일상 속에서 배제되고 외면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TV 속에서 우리는 만난다. 점점 더 시선의 비대칭이 심해진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변효선 gytjs4787@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