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感情)의 산업화…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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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개인에게서 분리돼 상품이 되어 가는가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1-22 15:56:35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힐링’이 문화산업의 트렌드를 이끄는 사회의 도처에는 항상 ‘감정’이 이슈가 된다.

쇼핑몰 직원들은 늘 웃는 얼굴을 하고 계산대에는 언제나 친절한 얼굴의 여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고객센터는 인터넷 소비시장이 커진 오늘날 기업들의 주요 고객관리 창구가 됐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고객센터 상담원의 멘트는 웃음을 훈련받은 이의 친절함이 배있다. 감정노동이다. 바야흐로 감정이 노동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감정노동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가상 형태의 ‘연인’이 될 인공지능 캐릭터 개발이다.

영화 ‘그녀’(Her·2013)는 인공지능 여성 캐릭터가 남성 주인공으로부터 연애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을 묘사한다. 모두가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감정은 이제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산업이 주목하는 거대한 기획 상품의 하나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은 언제부터 노동의 대상이 됐나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기업에서 감정에 주목한 것은 대략 1960년을 전후로 한 시점이다. 미국에서 조직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이 부상하면서 인간의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감정에 주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기존에 조직을 유지하는 구심점은 ‘권위’였다. 가족 내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있었고, 기업 내에서는 경영자의 카리스마가 요구됐다. 군대는 권위가 조직의 구심점이 되는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고 오늘날과 같이 ‘팀워크’를 강조하는 흐름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1960년을 전후로 모든 게 변하게 된다.

우선 새롭게 요구된 덕목은 ‘소통’이라는 화두였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느리고 조심스럽게 나타난 변화였지만,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대기업들에서 ‘소통’이 없는 경영문화는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론적 관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기업 내 업무패턴에 변화가 생긴다. 지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던 명령체계는 ‘팀’ 체제를 통해 협력의 문화를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한다. 기업에서는 ‘사보’를 발행했다. 팀들 간의 협력 강조를 위해 팀 회식과 화합 프로그램들도 속속 등장했다.

실적은 팀별 업적 평가를 수반했다. 기업과 팀 문화라는 것이 이때부터 강조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먼저 고려된 것은 소통의 수평성이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개인의 역량이 조직의 발전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이때부터였다. 기업복지도 일반화되며 직원들의 주거 공간(사택)도 제공됐다.

심리학의 발전은 무엇을 야기했나

대체로 기업문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도입된 심리학의 원리들은 점차 사회 일반으로 확산됐다.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개인의 ‘자아’라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원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이제 개인의 내밀하고 섬세한 자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배경이 된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민주화라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20세기 후반은 권위에 대한 거부와 민주적 소통에 대한 강한 열망을 수반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보다 옆으로 평등하게 진전되는 소통이 더 많은 가능성과 풍요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다른 하나는 자아의 가능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일반적 특성보다는 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이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 주된 용어가 바로 ‘인재’다. 고정된 듯한 느낌을 주는 기질이나 성격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역량’에 집중했고 자기계발을 통해 이른바 ‘포텐’을 터뜨리는 게 화두로 부상했다.

감정에 대한 관심은 감정 산업을 낳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은 감정 산업에 아주 적합한 말이다. 자아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면서 이제 기업들은 기업 내 문화와 복지뿐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출판사는 자기계발서를 발행하고 백화점들은 판매원들의 감정노동을 관리했다. 심리상담소에서부터 여러 힐링 상품들이 거대한 문화산업 망을 구축하며 등장했다.

이때부터 권위를 대체한 개인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다시 자아를 개인 자신의 통제력으로부터 분리해 내는 효과를 낳는다. 내 감정을 ‘캐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의 노력이라기보다 감정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나는 내 기쁨과 심리의 안정을 위해 나 자신이 아니라 의사나 상담사의 말에 의존해야 한다. 도처에는 감정상품들이 널려 있다. 혹시 내가 저 상품들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자문할 필요도 생겨났다.

오늘날 감정 산업이 야기한 아이러니는 이런 것이다. 내 자아는 이제 나 자신의 통제력이 아니라 저 상품의 통제력 속에 있다. 감정 산업 속에서 정작 감정은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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