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경제위기…시대적 화두 ‘먹고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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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다나카 다쿠지 <빈곤과 공화국>

빈곤이라는 틀을 통해 19세기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2-18 17:54:19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경영진 한 관계자가 근로자 1인당 월 103만원이면 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다수의 미디어들에서 과연 103만원으로 월세에 거주하는 직장인들의 생활이 가능한지 정리한 바 있다.

우선 월세·관리비 등 거주비가 든다. 요새 고시원들도 40만원을 웃돌곤 하지만 최소치로 30만원으로 책정해보자. 출퇴근을 위해 소요되는 교통비가 10여만원이다. 식비로는 하루 1만원 이상 지출된다. 한 달이면 30~40만원이다. 벌써 80만원에 육박한 금액이다. 여기에 통신비와 공과금을 각각 5만원, 10만원으로 책정했을 때 지출된 총 액은 95만원이다.

연애도 해야 하고 옷도 한 두벌 사 입어야 한다. 학자금대출을 받았더라면 수십만원의 이자·원금 상환비용이 든다. 명절 등 이따금씩 고향에 돈을 부쳐줄 수도 있다. 절대 계획할 수 없는 갑작스런 병에는 병원비·약값도 들어간다. 사실상 불가하다.

논란을 낳은 최저임금 문제가 국내의 화두가 된 것은 오래전이 아니다. 수십년의 가파른 경제발전 후 근본적인 경제위기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에서 ‘먹고사니즘’은 이제 전 국민적인 화두로 부상 중이다. 다나카 다쿠지에 의하면, 이런 생계 혹은 빈곤의 문제가 ‘사회’의 근본적 문제로 사고된 것은 19세기 초반부터다.

빈곤 혹은 사회문제의 발견

우리가 ‘경제’라고 번역하는 영어 ‘이코노미’(economy)의 그리스어 어원은 ‘오이코스’로, 당시 이는 가정(운영) 혹은 가계(家計)를 뜻했다. 고대 그리스에는 현대사회와 같은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먹고 삶의 문제는 부부와 친족 간 관계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공적인 화두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이 16세기를 넘어 17~18세기를 경유하며 사태가 바뀌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탄생은 공동체적 가계 운영이 아니라 익명적 시장경제의 탄생을 알렸다. 이때부터 가계를 의미하는 오이코노미는 가정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위해 앞에 ‘Political’ 혹은 ‘National’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즉, 국민국가 단위의 정치경제학 혹은 국민경제학이 이 시기에 탄생한다.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생산물을 나누는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자유교환의 원리에 기반한다. 그런데 자유교환은 생각만큼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화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의 표현을 빌리면 갑자기 사회적 문제(questions sociales)라는 것이 나타났다. 이는 빈곤 문제가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 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거리의 부랑자들, 빈민들의 삶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이 부상한 결과였다.

레미제리블 탄생시킨 시대의 빈곤 문제의 해법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년작)은 이 시대의 화두를 담아냈다.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림에 쫓기며 빵을 훔쳤다가 19년형을 받는다. 프랑스어 misérable은 우리말로 ‘빈궁한’ 혹은 ‘비참한’을 뜻한다.

즉, 빈궁이 소설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모으는 시대가 왔고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를 (고대 그리스의 가정 문제와 달리) ‘사회문제’라고 불렀다.

이 책의 저자 다쿠지에 따르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접근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해법들은 크게 네 부류로 분류된다. 첫째는 ‘정치경제학’의 해법이다. 이 사상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시장 개입 자체를 반대하는 자유방임형 사상이었다. 자유방임형 사고에 기반하되 빈곤 문제의 해결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빈민들에 대한 훈육과 모럴 개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사회경제학의 해법이다. 이는 자유방임형의 정치경제학과 대립하며 다소 보수적인 방식으로 과거 공동체적 규범과 자선 행위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사상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당시 급진파들의 것으로 각각 ‘사회적 공화국’론과 ‘사회적 연대주의’를 표방하는 조류다. 이 둘은 시장경제 자체만으로는 빈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고 빈민층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여러 조류의 흐름들은 19세기 말까지 치열한 논쟁을 낳았다. 그리고 두 번의 20세기 세계대전을 거친 후 네 번째의 사회적 연대주의에 기반해 프랑스 복지국가 모델을 낳게 된다. 얼핏 보면 이러한 논쟁들은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와 노동 문제에도 긴밀히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기 대선 국면이 형성되며 경제와 노동 문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각 후보들의 공약은 19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논쟁과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를까. 어떤 후보의 어떤 공약이 21세기 사회문제의 해법이 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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