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 된 분열사회 지식인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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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20세기 프랑스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와 위상에 대해 묻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2-25 14:31:57

▲ 문화평론가 정현 ⓒ스카이데일리

조기대선을 앞두고 온갖 ‘청년’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청년은 언젠가부터 불쌍하고, 미래를 박탈당한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는 청년들에게서 미래를 빼앗아간 사회다. 아무도 그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조명해주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같은 현실인식과 사고방식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당장 30여 년 전으로만 눈을 돌려봐도 상황은 달라진다. 청년들은 보통 엘리트거나 미래의 선구자가 될 인물들로 각광받았다. 20세기 초 ‘어린이 날’이 신설됐다. 당시 어린이의 개념은 미래를 이끌어갈 주체들로 매우 포지티브하게 정의됐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근대화 과정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근대화를 거치며 청년들은 구세대와 급격하게 단절했다. 글을 모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부족한 구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현실사회를 보다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미래를 이끌 선구자로 정체화 할 수 있었다.

대체로 20세기 ‘지식인’ 개념이 준거한 인물형도 청년들의 이러한 비판적 사고방식이었다. 그렇다면, 그 개념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의미를 포괄하는 것이었을까.

드레퓌스 사건이 드러낸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 장 폴 사르트르의 책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20세기 프랑스에서 한창 화두가 된 ‘지식인’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지식인 개념이 거대한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터진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에서였다.

유태계 프랑스인 대위 드레퓌스는 1894년 독일 간첩의 누명을 덮어쓰고 투옥된다. 투옥 이후 무죄의 증거들이 나타났지만, 프랑스 군부는 자신들의 오류를 덮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자 한다.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 연결되며 프랑스 사회에서도 이 사건은 엄청난 정치적 사건으로 부상했다. 유태인에 대한 마녀사냥인가, 아니면 독일 간첩 사건인가. 사회도 크게 두 개의 진영으로 양분됐다. ‘드레퓌스파’와 ‘반(反)드레퓌스파’.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잡지에 발표하며 이 정치적 사건에 참여한다. 서한의 내용은 군부의 기만을 폭로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기폭제가 돼 역시 수많은 지식인들이 용기를 내어 드레퓌스의 무죄석방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군부의 탄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이런 것이 에밀 졸라와 더불어 지식인의 덕목으로 부각됐다.

‘지식인(Intellectual)’, 즉 ‘앎’을 갖는 이들에게 있어서 그 앎의 본질은 무엇일까. 당시에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물음은 이러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지식인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정의, 진실, 인권 등의 개념이 수반됐다.

지식인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떤 과제를 갖는가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모순’적인 존재다. 적어도 에밀 졸라 이후 지식인은 ‘지식’을 사회적 정의나 의제와 무관한 것으로 다를 수 없게 됐다. 그들은 기존 사회가 주입한 지식을 내면화하면서도, 그 지식을 기존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한 분야에만 몰두한 아카데믹한 전문가가 있고, 본인의 지식을 사회의 화두에 연결하는 유기적 지식인이 존재한다. 사실상 앞의 유형은 전문가(Specialist)라는 개념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특정 분야나 몇몇 분야에 특화된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하며, 그들에게서 우리는 어떠한 사회적 책무를 발견하지는 않는다.

반면, 에밀 졸라 이후 지식인은 항상 사회적 책무와 연관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가 갈등과 혼란의 상황에 있을 때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들을 프랑스인들은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변화의 상황에 개입하는 행위를 이렇게 정의하기도 한다. ‘아직 없는 것(미래)을 위해 현재 있는 것을 부정하는 일’. 이때의 부정은 파괴나 배제가 아니라 ‘극복’의 포지티브한 의미를 수반한다.

따라서 지식인의 실천은 항상 사회의 역사적 환경과 연관된다. 오늘날 한국처럼 혼란과 변화의 과도기에 놓인 사회에는 어떠한 지식인이 필요한 것일까. 적어도 본인만의 아카데믹한 세계에만 빠지지 않고, 지식을 사회적 실천의 장으로 가져올 존재들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