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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경기도 안산 고려인 집성촌 땟골마을 르포

운명처럼 받든 조국에 홀대받는 ‘유랑자 고려인’

핍박 150년 방랑 속 한민족 기상…피 흘리며 지킨 땅에서 가난·외면·멸시

이경엽기자(yeab123@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04-14 13: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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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역 인근에 위치한 땟골마을 상점들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없는 글자로 돼 있다. 러시아어 키릴문자로 쓰인 간판들이다. 러시아인 밀집지역으로 생각되지만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김새는 우리와 비슷하다. 고려인들이다. 고려인이란 말은 지난 1988년 6월 ‘전소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스스로를 조선인이라 불렀지만 북한이 스스로를 조선이라 부른다는 점에서 이와 차별성을 두고자 고려인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고려인들은 주로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등 과거 소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후손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 일대서 항일운동을 펼친 이들의 후손들인 셈이다. 1937년 스탈린이 일본의 첩자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연해주 일대에 살고 있던 우리 동포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부터 중앙아시아 일대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태가 된 ‘대한국민의회’ 등을 설립한 독립운동가들의 후예인 이들은 상당한 박해 속에서 살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국내에 거주 중인 고려인은 약 4만여명이다. 경기도 안산에만 7000여명이 거주 중이며, 3000여명의 고려인들이 땟골마을에 몰려 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뗏골마을 고려인들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경기도 안산 땟골마을에는 3000명 가량의 고려인들이 거주 중이다. 또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정문 인근에도 약 1000명 가까운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땟골마을과 한양대 정문 근처에 위치한 러시아어 간판들 ⓒ스카이데일리

고려인들에 대한 처우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항일독립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다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으로 강제 이주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은 이들에게 조국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려인들 대다수는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이다. 땟골마을에서도 무명의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의 후손들을 상당수 만나볼 수 있었다. 이모를 도와 전통국수 전문식당에서 근무하는 김 이벨리나(30·여)씨의 증조부는 한의사였다고 한다.
 
김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도시가 아니 산속에서 한의사로 활동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했던 연해주에서 군의(軍醫)로 활동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증조부는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과정에서 소련에 대항하다 총살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고려인 지도층 2500명이 총살됐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 하나가 김 씨의 증조부였던 셈이다.
 
김 씨는 “할머니가 3살 때 증조부께서 총살당하시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할머니 큰 오빠는 카자흐스탄으로, 할머니와 증조모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할머니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던 것은 이로부터 30여년이 흐른 뒤였다.
 
러시아 전통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갈리나(55)씨의 할아버지도 전 재산을 바쳤을 정도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 자료 : 재외동포재단 [그림=배현정] ⓒ스카이데일리


김씨는 “우리 집안이 연해주로 넘어온 것은 할아버지 때다”며 “고국에서 있었을 때는 ‘생산’이라는 지역에 살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어디를 뜻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이 너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셔서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고국에 있었을 때는 굉장히 부유했었지만 나라가 망한 이후 연해주로 넘어오면서 빈털터리가 됐다고 들었다”며 “특히 일본과 독립전쟁을 하며 고국에서 가져온 재산을 모두 써버렸다고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역사와 기록을 잃은 고려인들…전 세계 50만명, 국내 고려인 인구 파악도 안 돼
 
고려인 지원 시민단체 사단법인 ‘너머’의 김영숙 사무국장은 “고려인들의 경우 강제이주 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이 유실돼 조상들의 구체적인 행적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대다수 고려인들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국장은 “먹고 사는 문제조차 버거워 하는 이들에게 과거를 더듬는 것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며 “하지만 올해 고려인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고려인들의 구술사를 채집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재외동포재단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일대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인구는 약 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국내에 얼마만큼의 고려인들이 들어와 거주하는지는 파악조차 불가한 상황이다.
 
법무부 외국인 출입국 통계에는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들에 대해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만 고려인들의 경우 이 같은 기준이 없는 상태다.
 
 ▲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저 내려 온 고려인들의 겉모습은 우리와 비슷하다. 연해주 일대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하면서 본격적인 고려인 불행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진은 안산 땟골 마을 주민들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재외동포들에 발급되는 방문취업사증(이하 H-2) 및 재외동포사증(이하 F-4) 소지자 중 중앙아시아 일대 출신들을 감안해 고려인 인구를 대략적으로 추산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8월 기준 이들 두 방법으로 국내 유입된 고려인 인구는 총 총 2만8320명이다.
 
H-2·F-4사증 소유자들 중 대다수는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거주 중이다. 41.7%인 1만1814명은 경기도가, 10%에 달하는 2780명은 충남이 소재지다. 두 사증 외 다른 방법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까지 합해 약 4만명의 고려인이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뜻한 조국은 없었다…언어장벽에 선 고려인들, 공무원들 이해부족
 
조상들이 지킨 조국을 찾은 고려인들 중 대다수는 경제적 문제 등에 당면한 상태였다. 재외동포재단 조사결과 32%의 고려인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39.9%는 의사소통이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지적했다.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의견도 25%에 달했다. 실제 취재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가 언어문제였다. 한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고려인들은 극히 드물었다.
 
8개월 전 입국한 이 빅토리아(40)씨는 앞서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 거주하다 집안사정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 바 있었다. 약 5년여가 흘러 다시 고국을 찾았지만 긴 시간동안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려 또 다시 어려움을 반복 중이라며 “한국어만 할 줄 안다면 살기 편한 나라다”고 언급했다.
 
 ▲ 안산 땟골마을에 위치한 고려인 문화센터(사진)는 고려인 지원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너머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단법인 너머는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돕기 위해 땟골마을과 한양대 정문 앞에서 야학을 운영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김영숙 너머 사무국장은 “강제이주 과정에서 또 소련 치하에서 10년 가까이 우리말 사용을 금지 당한 역사가 있어 후손들 역시 우리말에 능통한 이들이 별로 없다”며 “너머가 주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간학교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 “특히 재중동포(조선족)에 비하면 사람 수가 적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어려워 피해에 대한 집단적인 대응이 어려운 편이다”며 “그 외에도 임금체불,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재단에 보고서를 제출한 IOM 이민정책연구원의 오정은 박사는 “고려인들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교회, 시민단체 등 민간단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러시아어로 상담을 해줄 수 있을 인력이 상주하고 있고 도움 요청에 쉽게 응해주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고려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각 학교의 교사들이나 주민센터 등의 공무원 들이 고려인에 대해 잘 모르는 탓에 공무원들이 시민단체에 업무를 미루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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