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귀재 정용진, 서민엔 목의 칼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유통귀재 정용진, 서민엔 목의 칼

스카이데일리 칼럼

김신 기자페이지 + 입력 2017-04-17 00:01:30

▲ 김신 편집이사

“앞으로 먹고 살 걱정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서울 서초구 한 슈퍼마켓 점주가 시름 섞인 한숨을 내쉬며 꺼낸 말이다. 그가 이런 푸념을 한 이유에는 인근에 위치한 이마트의 기업형슈퍼마켓(SSM) ‘이마트에브리데이’의 영업행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해당 매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노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감해 점포 운영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마트는 유통업이 주력인 굴지의 대기업 신세계그룹(이하·신세계)의 주력 계열사 중 한곳이다. 국내 대형마트 브랜드 중 하나인 이마트는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뛰어난 접근성을 지닌 기업형슈퍼마켓(SSM)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자체 브랜드 상품 등을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마트의 새로운 변화에는 그룹 총수인 정용진 부회장의 의중이 깊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귀재로 불려 온 정 부회장은 경기침체, 소비심리 위축 등에 따른 유통업계 불황을 탈피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이마트에브리데이, 노브랜드 등을 탄생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라는 브랜드 파워와 뛰어난 접근성, 거기에 일반 슈퍼마켓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이마트에 소비자들은 호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뿐이었다. 이마트의 새로운 시도는 일대 상권의 황폐화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정 부회장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 같은 부작용은 애초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강점으로 내세운 요소들이 소상공인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어른과 아이가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기도 했다. 이를 반증하듯 이마트를 상징하는 ‘노란간판’이 내걸린 지역에서는 여지없이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최근에도 비슷한 논란은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사안의 크기가 남다른 논란들도 상당하다. 그만큼 우려도 크다. 지역 사회 전체가 들썩이고 있기까지 하다. 신세계가 시도 중인 복합쇼핑몰 건립을 두고 발생한 지역사회와의 갈등이 그것이다. 복합쇼핑몰 건립 예정지 인근 지역 상인들이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신세계계열사인 광주신세계는 지난달 ‘광주시 특급호텔 복합시설’ 건립 인허가 과정에 착수했다. 신세계와 광주시가 쇼핑몰∙특급호텔을 포함한 복합시설을 개발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한지 2년 만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지역상권이 ‘골목상권 침해’를 문제 삼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신세계 측이 계획 일부를 수정했지만 이미 지역 민심은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쪽에 기울어져 있다. 수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경기 부천시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부천시가 지난해 10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백화점, 전문 식당가 등을 포함한 신세계복합쇼핑몰 건립 계획을 승인했지만 인근 지역 상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부천은 물론 인천시·부평구 상인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 상권 붕괴와 교통 혼잡이 반대의 이유였다.

신세계와 광주·부천 지역 상인들과의 갈등은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까지 합세해 신세계의 확장행보를 저지하는 모양새다. 앞서 신세계(이마트)로 인한 줄폐업 사례를 유의 깊게 지켜 본 상인들의 배수진을 친 반발에 정치권이 협조하고 있는 셈이다.

정용진 부회장과 신세계는 과거 비슷한 일을 수차례 겪는 과정에서 파격적인 제안으로 상인들을 설득했다. 상인 입점 혜택, 지역발전 기금 기부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협상에 성공해 결국은 신세계 간판을 내걸었다. 이번에도 솔깃한 제안으로 상인들을 협상테이블에 앉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소상공인들의 시름과 한숨뿐이다. 유통귀재라는 별칭을 듣는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솜씨가 서민들에겐 사지(死地)가 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광주와 부천의 사태는 이미 해당 지역만의 일이 아닌 사안이 됐다. 신세계와 지역 소상공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과 골목상권 간의 상생협력 프레임으로 확대됐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은 이해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에만 기댄 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각급 지자체까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필요하다면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맞다. 작금의 국민 여론은 신세계로 인한 시한부 서민상권이 확산되는 현상을 저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김신 s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