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예외상태 ‘파시즘’…히틀러도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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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

독재와 다른 파시스트적 법 효력 중단…위법과 합의의 경계 ‘합법적 폭력’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8-27 15:56:36

대중은 종종 독재와 파시즘을 구별하지 못한다. 국가권력에 압도적인 권력이 집중돼 시민사회를 통제하는 독재는 역사 속의 수많은 전제정치의 궤적과 유비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다르다. 히틀러를 총통이 되게 했던 것은 놀랍게도 대의 민주주의의 결정판인 선거를 통해서였다.

20세기의 수많은 법학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파시즘의 역사적 근원을 파헤치고자 했다. 국내에서는 대중독재라는 용어가 발명되며 한때 경제개발기의 독재를 파시즘과 등치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독재와는 결을 달리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파시즘의 뿌리를 오히려 근대 민주주의의 혁명적 전통에서 찾는다.

근대 민주주의와 예외상태

“아무튼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현대적인 예외상태가 절대주의의 전통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 전통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20쪽)

예외상태란, 법의 작동이 중단된 상태로, 한국어로는 종종 (국가)비상사태, 혹은 긴급사태 등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헌법의 중단을 통해 국가 통치자의 권력이 법적 규범과 무관하게 행사될 수 있는 상태로, 헌법의 효력 중단이라는 이러한 관념이 근대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 혁명력 8년의 헌법 92조를 통해서였다.

“국가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무장봉기나 소요가 일어날 경우 법률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해 헌법을 효력 정지시킬 수 있다”(프랑스혁명력 3년의 헌법 92조)

법 효력 중단이란 무엇일까. 독재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과 법적 집행력의 강력함에 기반 해 작동한다. 20세기 후반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군부를 주된 권력기반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강력한 독재적 통치를 시행했고 필요할 시 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별도의 권력기관을 선임해 법을 강력히 집행하기도 한다.

반면, 예외상태는 권력의 강력함이 아니라 법 자체의 마비 상태에 기반해 나타난다. 그것은 체제붕괴로 나타난 일종의 아노미 상태로 볼 수 있으며, 통치자의 억압적 권력 이상으로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포퓰리즘적 충동을 수반하며 전개된다.

법이 중단된다는 것은 공적 영역이 마비된다는 뜻이고, 근대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해체된다는 것을 말한다. 공사의 구분이 해체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공적 영역을 지탱하는 근본준거는 ‘법’으로 알려져 있다. 법은 모든 개개인의 행위에 대한 공식적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며, 필요에 따라 특정 범법행위에 대한 합법적 폭력을 정당화해 주기도 한다(감금, 사형, 그 외의 여타의 공무집행 등).

반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모든 폭력은 법에 대한 일탈로 간주된다. 공과 사의 구분은 기본적으로 합법과 폭력적 위법의 경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 초 예외상태의 상징적 체제로 이해된 나치에서 이 법과 위법의 경계가 모호하게 붕괴되는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의 해체와 항구적 전쟁상태

20세기 초 독일에서 히틀러의 지지세력으로 급부상한 이들이 나치 돌격대라는 이름하에 등장한 민간집단들이었다. 공적 치안기구가 마비되자 기존에는 법의 일탈 상태로만 존재하던 갱스터 집단의 폭력이 반(反)체제 세력 일반을 탄압하는 준-공적 테러집단으로 변모한다.

법의 효력 정지는 법의 가치판단이 불가능해지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법집행이라는 합의된 폭력(합법적 폭력)은 위법과 합법의 경계 와해와 더불어 무작위적인 폭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조르조 아감벤에 따르면, 기존의 연구자들은 예외상태가 갖는 이러한 고유한 특성을 간과했다.

기존 연구자들에게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강한 권력을 갖는 독재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는 정작 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20세기 중후반의 독재자들의 시대와는 다른 무엇이 존재했다. 냉전기 독재국가들을 지탱한 것은 시민사회의 사적 공간에 대한 국가권력의 공적 억압이었다.

따라서 갱스터들이 아니라 국가경찰들이 치안을 도맡는다. 20세기 초와 현행의 포퓰리즘적 글로벌 혼돈상태가 공유하는 것은 독재자의 탄생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붕괴라는 체제의 아노미적 상태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폭발하는 인종갈등이나 이민자 문제 등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존을 책임질 국가 기능의 무능력과 연관돼 있다. 이 무능이 아노미로 연결될 때 포퓰리즘은 기존의 공적 영역을 잠식할지도 모른다. 아감벤은 이러한 아노미 상태를 독재와 구별되는 의미에서 예외상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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