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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무려 8년이 넘는 길고 긴 투쟁 끝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에 실패했더라면 그 싸움은 독립전쟁이 아니라 반란 또는 항쟁이란 명칭으로 역사에 기록됐을 것이다.
미국의 독립은 사실 우연의 결과였다. 처음부터 독립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독립 전쟁 초기 식민지의 대다수 주요 인사들은 독립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망설였다. 아메리카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꼭 독립해야 할 이유나 명분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독립할 경우 막강한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로 인해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지도 의문시됐기 때문이다.
미국 민병대와 영국군 간에 최초로 대규모 충돌 혹은 전투가 일어난 이후에도 미국의 유력인사들은 독립전쟁의 감행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할 정도였다. 미국 식민지 인사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 국왕 폐하의 선량하고 충직한 신민(臣民)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다수 주요 인사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돌연 혁명과 독립의 확고한 명분과 당위성을 제공한 이가 등장했다. 거의 모든 이가 그 사람의 주장에 공감을 표했고 이로서 전 미국 식민지 사람들이 독립전쟁의 대의에 기꺼이 동참했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겨우 2년 전 먹고 살 길을 찾아 영국에서 미국 식민지로 건너와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1776년 초에 작은 책자를 한 권 냈다.
책은 왜 식민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길인가에 대해 확고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상식(Common Sense)’이었다. 내용인 즉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이여, 영국 정부의 부당한 세금 부과에 대해 항의하고 저항할 일이 아니다, 이젠 우리도 당당하게 독립을 선언하고 쟁취해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시대의 요청이자 지극히 당연한 ‘상식 중에 상식’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의 인구는 300만이 채 되지 않았는데, 페인의 책은 삽시간에 50만부나 팔려나갔다. 그로서 미국 독립을 향한 투쟁은 식민지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요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야말로 마른 벌판에 불쏘시개 하나가 던져진 형국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저 불온한 반란이나 항쟁 정도였던 것이 책 한 권으로 독립을 위한 혁명으로 승화된 셈이니 페인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있어 반열에 드는 최고의 선동가라 하겠다.
페인의 주장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7월에 가서 식민지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제2차 대륙회의에서 채택된 ‘미국독립선언문’의 핵심 내용이 됐다. 명분 당당한 이혼 선언문을 꾸미는데 결정적인 논거를 제공했으니 그로서 페인은 일약 스타가 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조지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는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워싱턴 장군의 칼은 헛된 것이 됐을 것이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페인은 미국 독립에 있어 참으로 대단한 공로자라 하겠다.
그 정도의 공을 세운 페인이었으니 그 다음엔 잘 먹고 잘 살았어야 마땅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가유공자를 챙겨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던 시절이라 그저 모 유력인사가 그의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게다가 페인이란 사람은 정치선동에 있어서 만큼은 천재였지만 돈을 버는 데에는 전혀 감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뒤에도 페인의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 건너 장차 일어날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이 독립한 것은 1783년이었고 프랑스 혁명은 1789년이었으니 두 사건은 동일한 맥락이다.
페인은 미국에서 도무지 먹고 살 길이 보이지 않자 또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갔으나 그곳에서도 반란선동의 죄명으로 인해 졸지에 프랑스로 도피해야 했다. 프랑스에선 그의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2년 뒤인 1791년 그는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란 책을 발표했는데 이 책 또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주된 내용을 보면 ‘정부가 국민들의 자연적인 권리를 보호하지 않을 때 대중에 의한 정치적 혁명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으로서 프랑스 혁명의 대의명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 책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더욱 가속화됐다. 책은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는데 그 정도면 인세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법도 했을 터인데 이번에도 페인은 그러지를 못했다. 너무 멍청한 페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페인은 프랑스 혁명 정부로부터 심한 탄압까지 받아야 했다. 프랑스의 강경파 혁명정부는 1793년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했는데 페인은 그게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칫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형당할 수도 있는 위기마저 겪어야 했다.
그는 또 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란 책을 썼다. 사실 그 책의 내용 또한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책이었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것이 문제였다, 책은 조만간 페인 자신에게 커다란 재앙이 되고 말았다.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과 직접 교류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았다는 모둔 주장은 헛된 것이며 인간이 신을 직접 알 순 없다는 내용과 함께 기성의 제도권 기독교는 결국 하나의 지배계급으로서 인민을 착취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급진적인 주장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페인은 모든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적이 되고 말았다. 페인은 청교도의 신생 독립국인 미국이나 성공회의 영국, 가톨릭의 프랑스 등 모든 나라에서 흉악한 무신론자로 내몰리면서 ‘나쁜 놈’이 됐다.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페인의 주장은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이자 서양 철학의 대부격인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연상케 한다.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이신론자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페인은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무르지 못하고 180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미 미국에서도 철저하게 나쁜 놈이 돼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명분을 제공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이단자 딱지가 붙는 바람에 사람들의 철저한 냉대와 외면 속에 술로 시름을 달래던 그는 결국 건강 악화와 가난에 찌들어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가 1809년 뉴욕에서 외롭게 죽었을 때 모 신문은 그의 사망기사를 실었다. “페인이란 작자는 약간의 선행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해악을 끼쳤다, 그럼에도 그는 잘도 오래 살았다”는 지극히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도 토머스 페인은 두고두고 악인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페인의 사상과 주장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유럽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한 명의 선각자였다고 하겠다. 그의 사상은 후대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니 근대와 현대의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발전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훗날 링컨 대통령은 젊은 시절에 ‘나는 토머스 페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정치에 입문하게 되자 ‘너 정치 해먹으려면 이런 글 미리 없애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충고를 받고 불태웠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것은 1809년이었는데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먼저 영국이 페인의 업적을 재평가했다. 1937년이었다. 영국 런던의 ‘타임즈’지가 그를 영국의 볼테르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이에 다시 1952년이 되자 페인의 흉상이 미국 뉴욕대학교 영예의 전당에 놓여졌다. 페인은 미국에서 비로소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페인의 사주를 통해 운명의 계절을 알아본다.
1737년 2월 9일 오전 11시 30분 출생했다. 정사년 임인월 기해일 경오시다.
기토(己土) 일간이니 1739년인 기미년이 입춘 바닥이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을 했고 1769 기축년이 기의 완성인 입추가 된다. 이에 60년 순환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고 인정을 받는 추분의 때는 1776년인 병신년이다. 바로 이 때 낸 책이 독립혁명 전쟁의 명분을 제공하게 되는 ‘상식’이란 책이었다.
그가 프랑스에서 ‘이성의 시대’를 낸 때는 1794년인 갑인년 입동의 운이었다. 이로서 운세가 기운 그는 마침내 이단자가 돼 온갖 비난을 받아가며 온 세상으로부터 왕따가 돼 몰락했고 죽은 뒤로도 그러했다.
그의 책들 속에 담긴 사상과 주장은 근현대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운이 좋았을 때엔 갖은 칭송을 받았으나 운이 기울자 나쁜 놈이 돼 100년 이상 ‘몹쓸 놈’으로 기억돼야 했다.
이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 호호당은 그간의 숱한 사례연구를 통해 일이나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선 아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시대를 앞서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가지 말라는 충고도 주제넘은 일이라 여긴다. 그건 어차피 그 사람이 생겨먹은 기질이고 천성일 것이니 말이다. 그저 덧붙이자면 명대로 살다갈 뿐이라 하리라.
김태규의 희희락락호호당
http://www.hoho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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