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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잡지에 나타나는 지배적인 주체는 남자의 그림자 속에 숨는 여성, 남자의 팔에 안긴 여성, 기꺼이 자기 공간을 줄이는 여성이다. 이 마지막 여성상은 현대의 미학적 이상이기도 하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의상이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시대는 사라졌다. 그래서 이 시대는 신분이 확정해 주지 않는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골몰하는 시대라고 한다.
이런 전제는 놀랍게도 성별의 문제 앞에서 멈춘다. 오늘날 여성 아이돌들의 의상과 남성 아이돌들의 의상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상이 정체성을 여전히 규정해주는 것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남성으로서 행동하고 사고하는 법 자체가 규범적으로 강요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남자의 팔에 안긴’ 의존적인 여성은 항상 어리고 유순한 표정을 짓는다. 반대로 남성의 팔이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고, 남성의 표정이 자신감과 열정에 차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모든 이미지들은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다. 동시에 자라나면서 훈육된다. 아무 생각이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남성으로서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성폭력, 동의와 강제 사이
“남성들은 강간을 당하기보다는 훨씬 더 강간을 하기가 쉽다 이것이 그들의 경험, 그들의 인식론적 지위의 물적 조건들을 형성한다”
필자는 한밤중 골목을 걷다가 바로 앞에 한 여성이 걷는 것을 보고, 뛰어서 빠르게 앞질러 간 적이 있다. 뒤를 계속 따라갔을 때 오해를 살 것이 부담스러웠다기보다 아무 생각 없는 걸음에 상대가 공포를 느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과 남성의 사고와 행동의 차이를 결정짓는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한 여성 유저가 게임방송을 진행하며 남성 유저들에 대한 혐오(미러링) 발언을 했다고 남성 유저들이 그 여성의 신상을 털어 직접 살해하겠다며 찾아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그들은 살해협박을 하며 여성 유저를 찾아다니는 과정 자체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이 ‘찾아다니는’ 과정이 상대에게 생존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서에서 ‘재미’로 했다고 말했다. 살해위협을 퍼포먼스처럼 재미로 할 수 있는 것이 신체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의 사고를 규정한다. 반대로 이 행위를 결코 ‘재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것이 여성들의 공포를 결정짓고 있다.
근친 폭력, 데이트 폭력
“거의 모든 사건들이 집에서, 대게는 부엌이나 침실에서 일어난다. 살해당한 여성들은 대개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보통 침실에서 당한다. (중략)아마도 폭력적 교류, 특히 양성 간의 교류라는 것은 성적 의미로도 뜻이 통할 것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잠시 한국사회에서 ‘인신매매’ 문제가 긴급한 치안 문제로 부상한 바 있다. 언론과 경찰당국에서는 인신매매의 대부분이 납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각 가정의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실제로 당시 인신매매에서 납치가 차지한 부분은 매우 희박하며, 대부분의 인신매매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살해는 데이트폭력이나 근친 폭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 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 준다. ‘남자’로 자란다는 것은 남자의 신체적 이미지와 사고를 내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언제나 강해야 한다고 주입받고, 자신의 ‘강함’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요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자신과 관계 맺는 여성의 언어를 이해하기보다 그들에게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데 골몰해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도록 체계적으로 상황지어져 있다”
여성살해의 상당 부분이 데이트폭력인 이유는 이 이해불능의 맹목성이 내밀한 관계에서조차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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