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꿈꾸는 어린이와 비극적 난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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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부동산공화국에서 40년 후 난장이는 무엇이 되었나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9-23 20:46:58

압박을 견디고서야 얻게 되는 무엇이 됐다. 40여 년 전 소설 하나로 개발독재를 비판한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40여 년 동안 한때 3저 호황의 경제부흥기를 거쳐 IMF외환위기를 직면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일컫는 풍자적 명칭 중 하나가 바로 ‘헬조선’이다. 풍요와 행복을 이끌어 주리라는 현대문명의 진보의 꿈은 90년대 이후 가속화된 경제위기와 고용불안 등으로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40여 년 전 소설 속에 그려진 ‘난장이’의 건조한 듯 비관적인 목소리는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의 꿈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낙원’구 ‘행동’동의 비극

소설은 여러 아이러니적 장치들을 통해 우리를 비극으로 안내한다. 남들보다 몸이 작은 난장이 아버지는 도시개발업자들이 이끄는 거대한 기계들과 폭압에 짓눌리며 집에서 쫓겨난다.

시로부터 입주권을 받기는 했으나, 정작 입주비를 낼 수 없어 거리로 내몰려야 했던 이 난장이 가족은 1970~80년대 토목형 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철거민들의 비극을 담아내고 있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도시화의 흐름은 70년대로 넘어가며 도시 재건축 열풍을 낳았다.

나라 하나를 통째로 뒤바꿀 듯한 거대한 개발주의의 흐름 앞에서 가난한 철거민의 존재가 하염없이 무기력하고 작은 존재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도시의 ‘미관’을 헤치는 존재.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자 근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회부적응자의 이미지를 받게 이들은 말 그대로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린 난장이들이었다.

지극히 평범해서 동시대 평범한 존재들의 삶 일반을 연상케 했던 ‘영수’, ‘영희’, ‘영호’는 집을 잃고 흩어져 노동 현장에 들어가게 된다. 영희는 6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여성노동의 한 단면을 응축한 식모의 삶으로, 영호와 영수는 공장으로 들어가 하루하루의 노동에 몸을 담그게 된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동네 명칭은 이런 맥락에서 극히 반어적이며, 개발의 신화가 약속한 낙원이 난장이 가족을 위시로 한 수많은 이들을 배반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당대는 70년 전태일의 죽음에서부터 여공들의 저항을 거쳐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저항이 아래로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였는지, 출간 당시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호응을 불러왔다.

건물주가 꿈인 나라의 40년

이 소설이 나은 충격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일반적으로 문체의 차가움과 간결함을 꼽기도 한다. 극히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담담한 듯 차가운 묘사는 비극의 강도를 한 단계 높이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소설이 향하는 시점이다.

1990년대 들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본격적으로 올린 장르는 ‘성공한’ 사람들이 자서전이거나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들이었다. 1994년에 번역출간돼 엄청난 판매를 기록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그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1990년대로 접어들며 피라미드 꼭대기로 향했다. 성공하는 사람들, 즉 피라미드의 최상층의 삶에 대하나 조명은 90년대 이후 헬조선을 낳은 시선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88만원 세대의 불행에 대해 말하지만, 동시에 이 불행을 극복할 성공의 처세술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는 최근 한 조사에서도 반복돼 나타났다. 어린이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나라가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건물주가 별다른 일 없이도 돈을 쉽게 번다는 뜻을 것이다. 이른바 ‘불로소득’으로 계층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은 어린이들에게도 이미 인지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70년대 조세희의 소설은 피라미드의 최상층이 아니라 그 바닥을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바닥은 최상층의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가 인근에서 발 딛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낙원구 행복동의 삶은 40년 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건물주’를 꿈꾸는 어린이들은 건물주에게는 철저히 ‘난장이’처럼 약하고 무기력했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될까.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