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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막말과 돌출행동으로 글로벌 질서를 예측불허의 장으로 빠뜨리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국 다운 리더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국은 지금 세계 어떤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초강대국 지위에 있다. 미국은 그에 걸맞는 품위와 처신으로 항구적인 세계 평화의 지휘자 역할을 해내야 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발전의 메가기둥 역할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시계초침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지금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의 분야에서 가히 그만한 독불장군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우선주의 깃발을 내건 트럼프 행정부는 그들만의 독트린으로 세운 국익에 장애가 되면 국제질서에 반하는 반골기질 정책을 불사하고 있다. 마치 정글을 지배하고 있는 사자가 굶주린 듯 포효하면서 무차별 사냥을 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우리는 이런 미국의 행태에 의해 피해를 받아야 하는 최전선에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의 경우 누가 봐도 강자의 유아독존 논리에 의한 일방주의 정책이다. 오랜 기간 진지하고도 깊이 있는 협상에 의해 타결된 국가 간 질서의 축을 트럼프는 일거에 허물려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다. 나아가 이유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기 그지없으니 쓴 웃음이 나온다. 이익이 될 줄 알았는데 손해이니 물러달라는 생떼 수준이다. 오죽하면 트럼프판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으로 일반화 되지 않았나.
트럼프가 칼날을 번뜩이고 있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는 한 마디로 강자의 법전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절차나 협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준을 바이블 삼아 우리 기업을 제물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이른바 미국 판 십자군 전쟁의 서막으로 비유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기업들을 향한 옥죄기가 시작됐다. 자국산 가전제품 및 태양광 산업 보호를 위해 대놓고 ‘메이든 인 코리아’ 제품에 수입제한이나 관세를 메길 심산을 굳혔다. 문제는 자국 기업들의 연구·개발이나 투자가 소홀한데 따른 경쟁력 약화 문제를 우리에게 떠넘겨 마치 죄인인 냥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틈만 나면 우리를 우방이니 혈맹이니 하면서 굳건한 동맹국임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괌에 있는 가공할 전략자산을 한반도 상공에 띄우고 항공모함 전단으로 대북용 무력시위를 벌여준다. 그런데 트럼프의 실익 챙기기 행보를 보면 과연 그것이 대북용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와의 경제전쟁 상황을 보면 미국의 군사 무력시위가 안타깝게도 대남용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본토에서 이미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조차 목을 옥죄고 쌀을 비롯한 농산물 대국의 지위로 한국의 400만 농민들을 무차별 위협하는 미국의 경제옵션이 군사옵션 그 이상으로 두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가장 먼저 정조준하고 전 방위적으로 통상압박을 가해오고 있다. 이에 대응해야 할 한국 정부는 일방적으로 의견이 무시되거나 묵살되고 있다. 작은 골목상권에서도 지켜지는 상도의가 보이지 않아 한 마디로 거침이 없는 행보다. 한국기업들의 숨통을 직접 조이겠다는 무역확장법 232조는 사실 미·소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케케묵은 유물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보호무역주의 구식 칼을 꺼내가면서 칼날을 가는 목적이 바로 한국 기업들 때문이라고 하니 충격이다.
한국산 자동차와 철강까지 이런 식으로 막으려 하는 것은 상식 이하다. 자유시장주의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이 자국기업 보호를 위해 취하는 행태가 온전히 반시장적인 탓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에 선 미국이 금융에 관한한 전 세계에서 무한 독식을 꾀하고 있으면서 굴뚝산업은 그 반대의 행보를 가고자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건 정말 막가자는 이야기다. 아니면 트럼프는 작은 나라조차 두려워 치졸한 행보를 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농산물 부문에서 수준 이하의 포문을 연 것이 이를 반증한다. 당초 한·미 FTA 협상안은 100여개 품목에 대해 15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점차 관세를 없애기로 했었지만 미국은 이들 품목은 물론이고 총 500여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전부 없애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나섰다. 가관인 것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를 5~10면 더 메긴다는 입장을 내세운 점이다. 이 정도면 생떼도 아니고 조폭이나 할 막장 횡포다.
협상이 아니면 무조건 폐기를 운운하는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에 우리는 속수무책 끌려다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더욱이 북한의 잇단 핵과 미사일 도발로 우리는 미국과의 경제전쟁에서 백기 투항해야 할 처지다. 강자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지 말라는 ‘미치광이 전략’을 이용한 미국의 이중정책이 정황상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어울리지 않는 신 제국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연합(UN)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국이란 말은 사실 맞지도 않고 통용돼서는 안 될 말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속된말로 UN은 미국을 위한 얼굴마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UN의 실질적인 막후 권력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를 영구히 장악한 핵클럽 국가들 중 미국은 여전히 좌장역할을 한다.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입김이 작동하는 생사여탈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중에서 1순위에 들어 있다.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민주주의, 교육, 대중문화 등에서 가장 앞서간다. 국가위상의 상징인 노벨상만 해도 지금까지 360여명이 수상해 사실상 싹쓸이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의 대부분 분야에서 미국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존중감이 묻어나는 국가다. 굳이 조악한 행보를 하지 않아도 미국은 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견고한 거탑을 수없이 쌓아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미국의 위상을 기저에서 흔드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
한·미 FTA를 뿌리째 흔들고 우리 기업들을 죄인처럼 다루는 것은 잘못된 제국을 지향하는 트럼프의 오판이란 점을 분명히 적시하고 싶다. 군사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선심성 무력시위를 수시로 전개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인 경제를 옥죄는 행보는 비열하다 못해 잔인한 꼼수다. 이들 정책이 과거 닉슨 식 전략적인 미치광이 정책이 맞다면 오늘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냉전 시대 힘만으로 자웅을 겨루던 상황에서 통용됐던 강자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지금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부메랑은 미국의 고립이다.
아무리 강국 미국이라고 해도 많은 나라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 지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가정책을 자신의 사업적 마인드로 운영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국익은 눈앞의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그 그릇에 경제적 이익을 담을 수는 있어도 경제실리만으로 국익을 담지 못한다. 비즈니스적 판단은 미국을 소국적 지위로 떨어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상대로 한 폐기 수순의 FTA 재협상과 통상압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도 국민도 아닌 자신만의 제국을 쌓고자 하는 탐욕의 상징적 사건이이란 것을 엄정히 충고하고 싶다. 트럼프 이후 크게 추락해 회복하기 힘든 미국의 쪼그라든 위상이 안타깝게 반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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