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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베이비부머들을 ‘단카이(團塊) 세대’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부류들이다. 6·25 전쟁 이후 태어난 우리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보다 7~8년 정도 빠르다.
단카이라는 말은 큰 덩어리라는 뜻이지만 ‘불쑥 튀어 나왔다’는 의미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는 평론가이자 경제기획청 장관을 역임했던 사카이야 다이치로가 그의 저서 ‘단카이 세대’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들은 전후 서구의 개방적인 문화를 수용하면서 한때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던 주역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경쟁심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면서, 조직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경제적 동물’이라고 불릴 만큼 재테크에도 밝다. 1970~1980년대 일본 고도경제성장의 영광과 1990년대 이후에는 그 후유증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들도 노인 취급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노인층의 범죄가 증가하면서 후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등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단카이 몬스터·꼰대 등으로 폄하되면서 회사 밖에 모르던 ‘회사형 인간’이 회사 밖에서도 군림하려고 한다는 핀잔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런 일본의 세대갈등에 최근 반전(反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도 단카이 세대를 비롯한 고령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들에 대한 경제적 가치 부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캐치프레이즈가 ‘1억 명이 총 활약하는 사회’인 것을 보면 이들을 끌어안으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현재 일본 경제의 주축 세력은 단카이 주니어(1970~1974년 사이에 태어난 소위 말하는 제2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이다. 1990년대 버블경제의 쓴맛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철학을 소유한 부류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최대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도 단카이 세대와 단카이 주니어 세대 간의 소통부재의 벽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 단카이 주니어 세대들의 연령이 40대로 경제의 주축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일본의 자존심 회복에 이들이 선두에 나서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단카이 세대와 단카이 주니어 세대 간의 화해·융합 조짐이다. 여기에는 일본의 경제구조가 한 몫 한다. 경제의 재생(再生)을 위해서는 이들 간의 불협화음이 더 이상 일본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절대 노동력 부족에 따라 은퇴 세대들이 현장에 다시 투입돼야 하는 판이다. 일본 경제 회생의 최대 걸림돌인 소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도 고령자들의 소비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단카이 세대들을 일컫는 상징적인 키워드인 ‘망주(忘走) 노인’이나 ‘폭주(暴走) 노인’ 등 사회적인 경계대상으로 이들을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은퇴 세력들의 희생 위에 일본 경제가 이 정도의 글로벌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의 경험·노하우를 어떻게 현 주축 세대와 효율적으로 접목시킬 것인가로 초점을 모아가고 있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노인에 대한 기준을 바꿔야 하는 환경적 요인도 이를 부추긴다. 뒷방 늙은이로만 취급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축적된 부를 사장시키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점을 인식한 결과다.
신조어로 일본에서는 60세를 ‘세 번째 스물’이라고 한다. 이에 걸맞게 20대 추억을 되살리면서 청바지도 입고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는 젊은 장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급기야 노인 마케팅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노인 화장품 광고에 노인을 모델로 하면 매상이 줄어든다고 할 정도다.
망국적인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 어리석고 결과는 치명적이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이비부머 세대 연령 차이와 비슷하게 요즘은 약 10년을 터울로 양국의 각종 현상들이 동질화되는 경향이 짙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특히 우리 경제의 주춧돌인 3040세대는 60대 이상 은퇴 세력에 대해 무시의 수준을 넘어서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려는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경제성장을 한답시고 그들만 호시절을 다 누린 뒤 본인들에게 남긴 것은 빈손과 지푸라기뿐이라고 원망을 한다.
반면 은퇴 세력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 젊은이들을 향해 헝그리 정신이 결여돼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우리 시대에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다고 창피를 주기도 한다. 갈수록 대립과 분열은 증폭되고 급기야는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망국병이라고 부르던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파이는 커지지 않고 주어진 파이를 서로 낚아채려는 제로섬 게임이 반복된다. 무엇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정신에 순응하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군상(群像)들이 만드는 삶의 궤적으로 이뤄진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전후의 베이미부버들도 피땀 흘려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산업화·민주화의 족적을 만들어 왔다. 완벽한 성취는 아니지만 제조업 경쟁력 글로벌 5위·6위 수출대국 등의 위업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또 다른 성장 동력을 만들고 이를 통해 파이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상황을 보면 우리 내부에서 신세대·구세대 간의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1억명이 활약하는 일본 경제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와 융합의 길을 닦아야 한다.
다행히 청년과 장년이 함께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미력하지만 조성되고 있다. 특히 정년을 앞둔 어느 현대차 전(前) 노조위원장의 호소를 보면서 가슴이 짠하다. 노조가 분배에만 올인하고 기업 경쟁력 제고와 파이 창출을 뒷전으로 밀어내면서 소비자와 협력업체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그의 이런 고백도 해외 자동차 공장 현장을 둘러보고 난 후에 바뀐 것이라고 한다. 해외에 나가 경쟁의 현장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우물 안 개구리인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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