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발견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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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문학적으로 상상된 내면의 세계와 리얼리티의 기원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0-28 16:20:12

이 책의 첫 장 제목은 ‘풍경의 발견’이다. 풍경의 발견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진 고진을 세계적 석학으로 만든 대표적 연구서가 이 책이다.

첫 장의 제목이 말해 주듯,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풍경’이라는 것이 특정한 시대 상황 속에서 새롭게 발견됐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발견보다 ‘발명’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장 제목은 ‘내면의 발견’이다. 근대에 와서 인간은 풍경과 내면이라는 두 개의 대립쌍을 발견한다. 역으로 그 이전까지는 내면이라는 사적인 공간도, 나의 내밀한 세계로부터 분리된 풍경의 자리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문학이 발명한 내면과 풍경의 상상적 세계

내면과 풍경의 발견은 동시적인 것이었다. 바깥 세계로부터 온전히 분리된 나만의 내밀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고가 없다면, 애초에 ‘풍경’이라는 바깥 세계 자체가 존재할 리 없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을 자연과 분리된 주체로 간주하지 않았다. 초원과 물과 바람과 비가 모두 인간과 함께 자연의 유기적 부분을 구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라타니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분석한다. 분석을 통해 가라티니는 근대의 문학들이 유독 고독한 자아의 세계에 천착함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는 내면의 문학, 자아성찰의 문학이 큰 붐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물론, 내면은 1990년대가 아니라 근대의 초엽기에 이미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크게 몰두되었던 대상일 것이다.

“주위의 외적인 것에 무관심한 내적 인간(inner man)에 의해 처음으로 풍경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풍경은 오히려 ‘바깥’을 보지 않는 자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이 도발적인 말의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우회를 해야 한다.

파스칼의 <팡세>에 실린 유명한 문장 중 하나가 바로 “나는 왜 이곳에 있고 저곳에는 없는가”다. 과거의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면서 양반이거나 종이거나 귀족이거나 노예였고, 어느 지방의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 데 그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가라타니의 관점에서 문제의 발단은 기하학의 성장과 신대륙의 발견에 있었다. (나의 성씨와 신분과 인맥 등을 모두 사전에 규정해 주는) 좁은 지역 공동체의 세계를 넘어 신대륙의 발견은 세계가 무한함을 알려주었다. 천문학의 발견은 세계가 이 무한하고 기하학적 거대한 우주의 공간 안에 있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이 무한하고 천문학적으로 균질화된 공간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곳과 저곳이 질적으로 다른 공간이었던 중세의 위계적 세계상 속에서 이러한 물음은 존재할 수 없”(가라타니 고진)었을 것이다.

이 물음은 산업화를 겪으며 보다 근본적이고 범역적인 물음이 되었다. 시민사회라는 거대한 상품교환과 익명의 관계들이 얽힌 새로운 세계는 사람들에게 세계로부터 분리된 자신의 존재의미를 묻도록 했다.

고백과 문학적 주체의 몸부림이 탄생하다

“무한한 공간의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역시 파스칼의 문장이다. 근대에 팽배하게 된 이른바 ‘고백’의 문화는 여기서 중요한 함의를 얻는다. 고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한한 익명의 세계에 던져진 나약한 존재가 세계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 취하는 몸부림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신이 낮에 취한 행동을 회개하듯, 누군가에게 자신의 과오와 오류들을 고백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사태들에 대해 고백하는 이들의 태도가 함의하는 것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무한한 침묵의 균질적인 공간이 일으키는 공포는, 이 공간처럼 나 역시 균질화되고 익명화될지 모른다는 공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까지 자신의 자의식 속에서 되돌리고 싶고, 조정하고 정돈하고 싶어한다. 가라타니의 말을 빌리면, 균질화된 공간을 (자의식 속에서)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내면의 발견이 곧 풍경의 발견을 낳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면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대상세계(풍경)가 존재한다는 것은 주체로서 인간이 조작하고 변경시킬 수 있는 대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함의한다. 근대는 노동과 산업을 통해 세계를 조작하고 변경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문학을 매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역시 흥미롭다. 인간은 자의식의 동물이다. 특히나 근대에 와서 더 그렇다.

고태경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