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투쟁…나치의 극단적 인종주의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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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인문 책방…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라크 붕괴를 위한 부시 대통령의 선택…토마스 홉스의 전쟁론·극단주의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1-25 09:46:03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해 지속되는 정치다.” 클라우체비츠의 이 유명한 명제는 근대의 전쟁론을 규정하는 핵심 명제가 됐다.

이 명제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컨대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국가 간 무력 대결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클라우체비츠는 국가가 전쟁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국내외적 정치 흐름을 변형시킨다고 말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미국의 주장은 전쟁으로 이라크를 붕괴시키고 난 후 거짓으로 드러났다.

미국 내 매파들은 이미 전쟁의 선동을 통해 국내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깨달았다. 이라크 전쟁 역시 부시 대통령이 이런 매파의 논리에 충실해 국내 정치의 흐름을 (본인에게 유리하게)변형시키기 위한 우회적 수단이었다.

클라우체비츠의 이 명제는 전쟁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태도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1976년에 열린 강연에서 미셸 푸코는 이 명제의 앞과 뒤를 과감하게 뒤집고자 한다.

“정치는 다른 수단을 통해 지속되는 전쟁이다”

푸코에게 우선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 정치라는 모든 제도적, 비제도적 갈등과 합의의 과정들은 그 근저에 놓인 전쟁의 논리를 여러 우회적 수단을 통해 반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홉스의 ‘전쟁상태’ 개념

근대 정치의 핵심 사상가 중 한 명은 단연 토머스 홉스다. 홉스의 정치학을 규정하는 주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자연상태라는 것이다. 홉스의 자연상태란 곧 전쟁상태라 번역될 수 있다. 전쟁상태와 전쟁은 또 어떻게 다른 것일까? 푸코는 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사람들은 전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홉스가 언급한 ‘전쟁상태’ 속에 있다. 홉스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죠. ‘전쟁’은 다툼 혹은 싸움 행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전투를 통해 겨루려는 의지가 그 안에서 충분히 인식되는, 일정한 기간의 시간 속에도 있다”(117쪽)

전쟁상태는 노골적인 무력대결 상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상태란 전쟁의 의지를 가지고 여러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대결의 구도를 지속하는 상태를 말한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전쟁상태’에 놓인 존재들이다. 국가의 제도가 안착돼 전쟁이 종속된 경우에도 잠정적인 전쟁상태는 계속된다.

이 전쟁상태에서 특징적인 것은 근대의 이행대립적 정치 개념이 이 전쟁상태라는 관념 속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근대의 사회는 많은 경우 둘로 분화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이 있고, 게르만족과 유대인이 있으며, 빈자와 부자가 있다.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이 이항대립적 갈등의 항들을 통해 구성된다. 자연스레 정치는 이 두 항 간의 잠정적인 전쟁상태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인종 간 전쟁과 인종주의

푸코에 따르면, 근대의 전쟁론에서 이 두 대립항들은 대체로 ‘인종’의 모델을 하고 나타났다. 물론, 이때의 인종은 일종의 메타포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계급의 이름으로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투쟁이 격화되면 인종의 생물학적 모습을 통해 극단화된다는 것이 푸코의 관점이다. 푸코는 근대의 역사 속에서 여러 인종들이 두 개의 인종으로 분할되어 투쟁하는 것을 확인한다.

대표적인 것이 나치 시대의 게르만족과 유대인의 관계였다. 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하면 지배하는 인간무리와 지배받는 인간무리가 일정하게 인종의 얼굴을 하며 등장했다. 한편에는 지배자들의 웅장한 역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 웅장함을 깨는 피지배자들의 대항역사가 있다. 세계는 이 전쟁 속에서 둘을 용납하지 않았고, 복수의 ‘인종들’은 궁극적으로는 단수의 ‘인종’으로 대체되게 된다.

투쟁하는 두 이항대립적 집단들이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의미의 인종으로 대체되는 ‘인종주의’가 나타난다. 전쟁 혹은 투쟁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하나의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만을 보존하고자 하는 극단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 인종주의 속에서 모든 법적, 정치적 제도들은 기만적이고 허울뿐인 것이 된다.

이때 푸코는 나치의 인종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의 전쟁론은 나치즘적 극단주의의 모델이 어떻게 근대 정치사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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