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에는 살아있는 ‘고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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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에는 살아있는 ‘고호’가 있다

죽어서야 빛을 본 작가…가난의 세월을 살아가는 한국의 화가들

김수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18-01-13 10:53:09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서슴없이 말하리라. “그냥 그리고 싶은 욕망으로 산다”

유명한 등산가가 “산이 거기 있어 올라간다” 라고 말하듯, 이해가 안 될 말이지만 나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며 마음속에 널려있는 선과 형상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미칠 것 같은 유혹에 평생을 살아 온 ‘그림쟁이’다.

화가가 되려고 내가 처음 부모님에게 말했을 때, 우리엄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불쌍한 듯 나를 바라보면서 “춥고 배고프다는데 그걸 왜 해?”였다.

맞다. 그림쟁이 아니, 예술가는 우리나라에서 “춥고 배고픈 직업”이다. 한 해 우리나라 미술계열로 공부하고 졸업하는 대학생들이 거의 수천 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공을 살리고 그것을 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미술학도는 불과 10%도 안 될 것이다.

처음 ‘졸업 전시회’를 마치고 대학을 나와 전공을 살리려 미술학원과 미술계열 직장을 찾아 헤매다가 운 좋게 직장을 찾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결국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빈센트 반 고호’. 그는 1853년에 태어나 1890년에 사망하여 불과 37세의 나이에 운명할 때 까지 ‘춥고 배고픈’ 화가로의 일생을 가난과 고독 속에 그야말로 예술가의 초상처럼 살다 갔다.

고호는 그림물감이 없어 스케치만 몇 년을 하다가 동생 테오가 보내 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지만 살아생전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란 작품 딱 한 점만 판매를 한 가난을 숙명을 산 비극의 화가였다.

“화가는 죽어서 빛을 본다”라는 말을 몸으로 실천한 슬픈 화가였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제대로 대접 받았다면 얼마나 더 좋은 작품이 남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화가의 운명은 참으로 묘한 수수께끼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작품 100위 안에 고호의 작품이 7개나 들어 있다. 만약 이 위대한 작품들이 고호가 살아 있을 때, 단 한 점이라도 이렇게 더 비싼 값에 팔렸더라면?

고호는 분명히 최고급 별장에서 시대를 휘어잡는 대작으로 더 많이 빛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별이 빛나는 밤’, ‘몽마르뜨르의 초상화’, ‘감자먹는 사람들’, ‘귀에 붕대를 감은 초상화’, ‘해바라기’. 그의 그림은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들이다.

그가 가난과 비탄 속에 창녀와 결혼하고 훗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까지 하면서도 작품에 몰두하며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우리 내면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내 영혼 안에는 거대한 불길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무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굴뚝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연기밖에 볼 수 없는지라 그냥 제 갈 길을 가지.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땀 흘리며 자기 안의 불을 보살피면서 누가 와서 불가에 앉아서 머무르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하겠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런 시간이 언젠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따스하고 찬란한 불길을 기다렸지만 끝내 살아있을 때, 그 불길을 보지 못하고 불과 37살 1890년 7월 27일 그가 작품 소재로 즐겨 그리던 들판으로 나가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살하고 말았다.

오늘날 서울의 용산 삼각지 주변에는 미술가를 위한 화방, 액자 만드는 집, 그리고 화실이 즐비하다. 이곳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자 미군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팔던 화랑이 생겨나서 시작 된 미술 전문 거리이다.

이곳에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고호’들이 널려 있는 곳이다. 허름한 재개발예정이 된 건물 2~3층에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그림실력이 특출한 화가들이 앉아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삼각지 화랑거리에서 그림 그리다 출세를 한 이모 작가는 미협 이사장도 했고 한국미술대전에 대상을 차지한 작가도 있다. 이곳의 그림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 화상들이 수입하는 경우도 있고 국내에서도 지방화랑에서 구입해가는 미술도매시장으로 통한다.

“언젠가 내 작품이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매겨질 때가 있을 겁니다”라며 그들은 그 옛날 고호처럼 가난과 비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삼각지, 지금도 이곳에는 화가들이 언젠가 눈부시게 타오르는 불꽃을 기다리며 오늘도 가난과 시련의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집에 미술작품이 몇 점 있나요?’ 라는 질문에 화가의 육필이 있는 작품은 단 한 점도 없고 값비싼 식탁이나 소파는 갖추고 사는 몰 문화, 몰 예술, 졸부 여러분, 지금 삼각지에서 살아 있는 고호의 그림을 구입하여 걸어 놓으십시오. 훗날 자녀들이 부모의 예술적 심미안에 크나큰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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