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입장문에 돌아온 ‘주어’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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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입장문에 돌아온 ‘주어’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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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1-19 12:12:18

“저와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8일 ‘다스’ 'BBK' ‘국가원정보원 댓글 및 특수활동비’ 의혹과 관련해 내놓은 입장문이다. ‘부도덕한 이명박 정권’이라는 국민 여론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잘 짜여진 각본’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밝힌 8문단짜리 짧은 입장문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노무현 소환정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정치보복’을 주장한데는 현 문재인 정권을 ‘노무현 죽음에 복수하려는 세력’으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엿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스타일과 달리 바로 반격에 나선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입장문 어디에도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불법 비리의혹에 대한 해명이 없다는 점이다. ‘120억 비자금 의혹’ ‘공권력을 동원해 140억원을 빼돌린 의혹’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 ‘국정원 특활비 전용의혹’ 등에 대한 해명이나 반박은 한 줄도 없다. 경제인 출신답계 피알(PR·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의 정석을 보여준 입장문이다.

세번째 특징은 그가 밝힌 입장문의 문장 대부분에 ‘주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는 국정수행을 열심히 한 대통령 △내 부하들의 비리는 없다는 점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 등 유독 ‘자신’을 강조하는 문장이 많다.

지난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몇 일 앞두고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7년전인 2000년 10월 광운대학교에서 행한 강연 동영상이 공개돼 대선판도를 흔들었다.

“저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해서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사이버 증권회사를...“

이를 근거로 당시 야권(지금의 여권)과 시민단체는 ‘BBK 실소유자는 이명박’이라며 즉각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명박 후보측은 ‘두 번째 문장에 주어가 없으니 이명박 후보가 BBK를 설립했다고 볼 수 없다’라는 황당한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나경원 대변인은 “동영상에는 ‘BBK를 설립했다’고만 언급돼 있지 ‘내가’ 설립하였다고 돼 있지 않다. 주어가 없다”며 “이것을 ‘내가 설립했다’라고 광고하는 것은 명백히 허위의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숨겨진 주어, 생략된 주어’가 ‘존재하지 않은 주어’로 해석되는 국어문법사의 희기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광운대 강의는 1인칭이 없는 ‘유령강의’라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불리할 때는 ‘나’가 없고 억울하거나 유리할 때는 ‘나’가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10여전 모습이 뜻밖에도 이날 입장문 말미에 깜짝 재현됐다.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말고 ‘나에게 물어라’”고 하더니 정작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로 입을 닫은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소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길게 보면 한달, 짧으면 1~2주이내다. 그가 지금 시점에서 입장문을 발표한 것만 봐도 검찰 소환과 구속은 멀지않아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 정권 인사들이 사 기업에 취직이라도 할라치면 그 회사 대표에게 세무조사를 암시하는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밥줄을 끊기도 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부자에다가 대통령까지 됐으니, 돈 문제만큼은 다소 의연할 법도 했을 텐데...“, “법 어겨가며 기업 했더라도 대통령쯤 됐으면 법 지키는 모습을 보였을 법도 한데...“, 하는 의아함과 아쉬움이 그의 입장문을 보며 배어나오는 나의 한숨이다.

[김진강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김진강 산업경제부장·부국장 kjk5608@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