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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서 사람의 얼굴을 대수롭게 보지 않는다. 전문 관상가는 아니지만 인물화를 그리다 보니, 나도 한가락 관상을 보는 편이다.
비교적 둥근 얼굴은 성품이 완만하고 낙천적이다. 대체로 추진력과 통솔력이 뛰어나며, 아울러 경제력도 왕성하다.
반면에 직사각형의 얼굴은 건강하고 강인하여 장수하는 상이고 턱이 빠진 모습에 광대뼈가 넓은 사람은 예민한 편이고 신경질이 많은 관상이다. 이밖에 역삼각형 얼굴은 재물과 명예욕이 강하여 자신을 혹사하며 말년에는 시련을 겪는 상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길흉사와 각자의 타고난 운명이 들어 있기에 나이 들어 자신의 얼굴은 본인의 생활과 경험에 의해 이룩된다고 본다. 한마디로 자신의 직업이나 마음가짐, 그리고 생활 패턴이 그 사람의 얼굴을 형성하고 표정지어 지는 것이다.
형사들이 얼굴을 보면,“범죄형”“순종형”“사기형”으로 잘 판단하는 것은 직업인 촉(觸)이다. 인사동이나 축제마당에 자리 잡고 인물 스케치 한번은 그려봤을 것이다. 대개는 간단한 스케치에서 자신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서양 사람들과 달리 매우 단순하고 굴곡이 적어 닮게 그리기가 쉽지 않다.
태조 이성계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을 건국하고 500년 도읍지를 정한 다음, 이 나라를 통치한 위대한 인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전북 전주에 가면 경기전(慶基殿)이 있는데 놀랍게도 600년 전 이성계의 어진((御眞) 이 잘 모셔져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과연 조선을 일으킨 태조 임금님답게 위용이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품격이 있는 자태다. 나는 어진을 보면서 한편으로 당시, 궁중 도화서(圖畵署)에서 임금을 모시면서 어진을 그렸을 궁중화가의 작업에 무척이나 궁금했다.
당시, 궁중화가는 종6품인 별제(別提)로, 잡직(雜職)으로서 일개 화원(畵員)이었다. 임금이라면 하늘과 같이 지체 높으신 분인데 감히 똑 바로 고개도 못들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임금님 앞에서 붓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며 털 하나하나를 그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숨 막히고 긴장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사진기나 영상 기기가 없으니 실제 임금님을 앞에 모시고 직접 그리는 방법 밖에 없어 당시 궁중화가는 천하를 호령하는 임금님 앞에서도 어쩌면 당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세 서양에서도 초상화는 우리의 도화서처럼 궁중화가들에 의해 기록화로 남겨져있다. 인물화의 대가, ‘렘브란트’의 섬세하고 정밀하게 마치 살아 있는 듯, 한 초상화와 ‘벨라스케스’의 인물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넘어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장르는 넘어서 이런저런 그림을 다 그리게 되는데 나야말로“몸 파는 것 제외하고 다해봤다”라면서 다양한 작품을 그려왔다. 워낙 다양하기에 이런 것이 한편으로는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몇 해 전이었다. 허름한 아저씨가 나의 화실에 찾아와서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화가 선생님, 저....제가 사실은 부모가 없는 고아입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그 밑의 놈도 크고 하니 나의 조상에 대한 궁금증과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뒤, 아들이 학교에서 효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학생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을 적어오고 미술시간에 할아버지를 그리라는데 그 것이 마음 걸려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저의 모습을 보시고 나의 부친의 모습을 상상으로라도 그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나이 서른 후반에 작은 아파트를 가질 만큼 모질게 살아서 이제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되어 먹고 사는 형편인데 하늘 아래 혼자라서 조상이 없는 것이 언제나 무거운 아픔이라는 것이다.
명절이면 다른 가족들은 조상님의 영정을 모셔놓고 제상을 차려 놓고 차례를 지내고 하는데 자신은 마땅히 영정은커녕 지방(紙榜) 하나 올리지 못하는 뿌리가 없는 천애고아라서 가슴이 아프다며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어깨를 들썩이며 흐르는 눈물로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측은하고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가 계신 것에 감사 하며 그의 아버지를 그리기로 했다. 우선,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그보다는 약 30년 정도를 더 먹은 아버지의 얼굴을 상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온화한 모습의 그의 모습에다 연륜이 있어 보이게 주름살을 넣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오래 된 사진처럼 색이 바랜 느낌의 작품을 정성들여 완성하고 그에게 전화를 하여 초상화가 완성되었으니 와서 보라고 했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급히 달려 온 그는 내가 그린 초상화 앞에서 감동을 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턱 주저앉더니, 이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초상화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큰 절을 두 번 올리는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흑 흑 흑 제가 그토록 보고 싶던 우리 아버지!!!” 하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흑 흑 흑 평생 내 입으로 처음 불러보는 우리 아버지! 흑 흑 흑”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퍽퍽 울면서 깊은 감동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진정하라고 이른 뒤, 급히 나가서 소주 몇 병을 들고 왔다. 그리고 우리 둘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 한을 같이 들어 주며 밤이 늦도록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이 그리신 저 초상화를 보니 찌릿하게 전기가 오면서, 내 머리에 아! 이거다! 하는 필이 왔어요! 정말 살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런 모습 같아서 30여년 쌓였던 한이 풀어졌고 동시에 반가움과 말 못할 이상한 감정이 겹쳐서 격한 감정을 억누를 수 가 없었어요!”
그로부터 2년 쯤 뒤였다. 잊고 있었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 저녁 대접을 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 주세요!”
그에게서 저녁 초대를 받은 건 좋은데 이상하게도 그의 집으로 직접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은 의아하지만 내 초상화를 받아가면서 너무도 특별하게 했던 그의 행동이 생각나서 그가 오라는 아파트로 찾아갔다.
그곳에 들어서니 응접실에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는데 나는 그를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 때 내가 그린 초상화와 너무도 닮은 어르신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초상화를 주문한 그의 아버지였다. 어렵게 경찰서에서 찾아 거의 40년 만에 이산가족이 만난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신기해서 초상화와 어르신을 번갈아 보면서 놀라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아들을 잃어버리고 조선 팔도 사방천지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다 이렇게 내가 다 늙어서 아들을 찾고 보니 우리 아들이 나를 안 잊고 이렇게 나의 모습을 미리 그려 놓고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리고 나를 보시지도 않고 이렇게 똑 같이 나를 그려주신 화가 선생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그 날 밤이 늦도록 화기애애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술판을 벌렸다. 그리고 부자지간의 얼굴을 맞대고 웃는 모습을 내가 무료로 그려 드리겠다면서 핸드폰으로 그 행복한 모습을 찍고 있었다.
“자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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