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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혼을 떠받치는 헌법이 30여년만에 거의 혁명적으로 새 옷을 입기 위한 논의가 본격 시작된 것은 기대도 크지만 우려도 큰 사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130조 중 무려 90개 조항을 수정 또는 신설하기로 해 거의 대부분 조항에 손을 대는 가히 혁명적 개헌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 정도면 집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모두 허물고 새로 짓는 제정 수준에 가깝다. 여당의 개헌방향을 보면 단순한 기둥들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에서 서까래까지 모두 바꾸는 식의 방안들을 담고 있어 놀랍다.
집권당의 개헌 논의들을 보면 단순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5년 단임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준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할 국시를 전면 궤도 수정하는 방안들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이에 진보진영은 환영하지만 보수여론의 반발이 매우 크다. 개헌논의가 보-혁 간 갈등을 키워 국민여론을 분열시키는 또 다른 위기를 낳고 있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
헌법은 국민 모두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의지가 담긴 총화의 상징이다. 그 헌법이 분열의 요인이 되고 있다면 이미 헌법 가치의 추락이다. 헌법이 수없이 다양한 옷을 입는 소위 ‘권력형 정의 논리’에 빠지면 국민과 괴리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나아가 헌법의 근본정신이 단 30년 만에 혁명적으로 바꿔야 할 정도라면 우리 헌법은 이미 사상누각과 다름없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현행 헌법이 이른바 ‘1987 헌법’이란 점에서 낡고 노후된 집을 전면적으로 새로 짓는 식의 개헌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틀이 남아 있다면 현재에 걸맞게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맞다. 하지만 헌법 정신은 마치 수천년 변하지 않는 바이블처럼 절대 변할 수 없는 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시대와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일부 수정이 아닌 전면 대수술을 하는 것이 맞는지는 정말 심각하게 따져볼 대목이다.
헌법은 자구 하나라도 수정을 가할 때 반드시 국민적 총의를 담아야 한다. 국회의 의결을 거치고 국민투표를 거치는 다수결 형식을 취하는 것은 국민적 총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거치는 절차적 수순일 뿐이다. 예컨대 권력과 그 시대적 상황들이 스스로 불가침의 정의와 절대적 도덕률로 무장한 옷을 호화롭게 늘 입어 왔지만 그것이 권력의 가면으로 변질해 국가·국민을 배신한 행태들이 너무 많았었다.
실제로 우리 헌정사 대부분 정권이 자가 발전한 정의와 도덕률의 칼로 역심판을 받아 무거운 죗값을 받기 일쑤였다. 군부 정권 이후 지난 30여년 간 헌법을 해당 정권의 정체성에 맞게 뜯어 고치지 않아 온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전면적인 개헌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이유다. 따라서 지금 여당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잇는 개헌방향은 전면 개헌인 만큼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헌법의 기본 정신이나 가치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아야 할 정신을 담보해야 하지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를 사상의 자유로 확대하는 논의만 해도 반드시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우리가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사상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해야 할 기본가치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155마일 휴전선에서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북한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전시상황에서 북한의 주체사상만큼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북한 정권의 영혼이 되고 있는 사상을 허용한다면 국가보안법이 즉시 폐지돼야 하고 주적 개념이 사라져 우리 군은 존재할 의미가 없어진다. 이는 북한체제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줘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담은 헌법 정신과 정면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주권주의 대의명분 아래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는 여론중시의 개헌방향도 뜻은 좋아보여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법치주의는 강력한 법 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와 같다. 영장청구의 확대나 헌법재판관 자격 폐지, 국민 발안권 등은 기존 권위주의 권력의 무소불위 독선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여론 중시의 단죄는 자칫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인간심성의 악마적 근원인 군중 속 마녀사냥 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마녀사냥은 민의를 가장한 악랄한 단죄행위로 법치주의 근간을 흔들 사안이다.
헌법119조 2항 중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조정한다’로 강제 규정하고자 하는 것 또한 자유시장에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근간으로 한다. 자유는 곧 경쟁이고 그 경쟁이 자본시장의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이고 힘이다. 경제력 집중이나 오너들의 무한 지배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정부가 이를 인위적으로 지나치게 개입하면 시장은 무서운 역습을 가한다.
그 부메랑은 시장의 혼돈이다. 자유시장의 질서가 지나친 간섭으로 흔들리면 평등성은 강화되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 우리 경제의 기본가치인 효율성이 떨어지면 국부가 줄고 결국 국민적 피해로 돌아간다. 자본시장의 인간 이기심에 근거한 작동원리가 상호 이타심으로 승화 발전하는 시스템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면 그 끝은 시쳇말로 국민적 하향 평준화이고 총체적 가난으로의 항진이며 살기 팍팍한 경제의 공습이다.
자유와 평등은 오늘날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줄 수 있는 양대 기둥이지만 늘 엇갈린 시소를 타 왔다. 그런데 이율배반적 만남인 듯한 자유와 평등은 어느 한쪽에 쏠림이 있어서는 안 되는 절묘한 균형의 미를 상징하고 있다. 둘 사이는 상호 긴장관계 속에 국민적 조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평형이 무너질 때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경제가 위험해진다.
지금 여당의 개헌 논의의 방향은 누가 봐도 보-혁을 아우른 가치보다 정권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것이 현재는 스스로 물러설 수 없는 불가침의 정의이겠지만 쏠림의 위험한 행보라고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이 큰 정의를 휘두를수록 부정으로 변질될 확률을 키운다. 자유보다 평등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고, 나아가 그것이 옳다는 믿음이 극단적으로 커지면 정작 국가와 국민은 감당하기 힘든 화근을 만날 수 있다.
개헌은 상식적으로 보-혁이 싸우면 안 되는 사안이다. 개헌논의가 시작부터 벼랑 끝 전술을 쓰듯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형세는 그것이 아무리 정의의 옷을 입었다고 해도 지탄의 대상이다. 개헌 갈등은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후진국의 무지한 내전과 하등 다르지 않다.
헌법은 보수를 지키는 방패막이도 아니고 적폐의 대상일 수도 없다. 설사 헌법이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권력형 정의의 잣대로 재단돼서는 안 된다. 역사를 보면 권력형 정의는 승자의 정의로 도구화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헌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반대론을 수렴해 가는 국민화합을 전제로 한 절차적 정의의 완성이다. 국가 재설계 수준의 편향적 개헌이 이뤄지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헌법정신이 변질돼 우리 헌정을 누더기로 만들 여지를 높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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