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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올 것이 왔다. 수출이 18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4월, 5월 연휴에 대비해 수출물량을 조기 선적했기 때문에 발생한 기저효과가 일부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지난달 수출은 1.5% 감소했지만 올 1~4월 누계 수출실적은 여전히 6.9%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수출증가율은 15.8%로 전 세계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은 수출 증가세를 시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수출 6위, 전체 교역량 9위 국가로 발돋움 했다.
세계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외견상 우리 수출이 가장 분위기를 잘 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수출에서 단일 품목인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작년에는 전체 수출의 17%를 차지하더니 올 들어서 20%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반도체가 수출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
또한 대기업의 수출 비중이 60%에 달할 정도로 소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대하다. 삼성 수출 비중은 무려 20%를 웃돈다. 특정 상품 혹은 기업에 의한 수출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셈이다. 어렵다는 목소리가 분출하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해법 또한 없어 난감하다.
고작 1개월 수출 감소를 두고 과민하게 호들갑이냐는 핀잔도 들린다. 그러나 마지막 보루인 수출이 흔들려 우리 경제를 에워싸고 있는 제반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점에서 위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로 원화 환율은 계속 절상되고 있고 교역상대국들의 보호무역 기치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의 가동률은 70%를 겨우 턱걸이해 2009년 3월 이후 9년 만에 최저치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의 재고율은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설비투자는 5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하고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는 ‘고용 한파’가 겹치면서 사면초가에 이르렀다.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가 갈 때까지 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에 대한 인식이나 이를 해결하려는 기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핵협상, 적폐청산, 댓글 조작, 지방·보궐 선서 등으로 정치는 난무한테 경제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일희일비하는 냄비 근성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경제에 대한 관심은 아예 뒷전이다.
이런 우리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경쟁국들은 펄펄 난다. 우리 수출이 주품하는 사이 중국이나 일본의 수출은 더 기지개를 켠다. 해외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상품에 밀리는 이른바 ‘뉴 넛 크래커’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확연하다.
과거에는 일본의 품질, 중국의 가격에 고전했지만 이제는 중국의 품질, 일본의 저가에 밀리는 신(新)샌드위치로 모습이 바뀌고 있다. 자동차·스마트폰·가전·디스플레이·조선 등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중국은 한국 수출상품을 따라잡기 위해 품질이나 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혈안이다. 일본은 엔저를 장착해 잃어버린 시장을 착실히 복구해 나가고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외환시장 개입마저 제한되고 있어 향후 2~2년 내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제품 개발이 지연되고 가격경쟁력마저 약화될 경우 믿었던 수출시장이 초토화될까 우려된다. 지난해 수출의 우리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율이 64.5%에 달했다. 2016년 12.1%에서 무려 52.4%p나 상승한 수치다. 세계 경기 회복과 이에 따른 글로벌 교역 확대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수출이 잘못되면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 몫 챙기기에 혈안…민감한 경제 문제 ‘서랍 속’에 방치
일본 기업은 마른 수건을 짜듯이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 노사가 똘똘 뭉쳐 난국을 헤쳐 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수출 확대에 총력 경주를 하고 있다.
우리를 추격하는 중국 기술 혹은 상품은 계속 사정권 안에 진입하고 있다. 시야를 안으로 돌려 우리 내부 사정을 보면 더 한심하다. 잊을만하면 재벌의 갑질 비리다 터져 나온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노동자들의 반발과 시위는 더 기승을 부린다. 모두 내 몫 챙기기에 바쁘다,
정부와 정치는 이를 내팽개치고 상대에 대한 공격과 흠집 내기로 날밤을 샌다. 생색내기와 공치사로 일관하고 민감한 문제는 서랍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잘못 끼워진 단추로 계속 공회전을 한다. 기업이 살아나야 투자와 수출이 늘어난다. 그 결과로 일자리도 창출되며 소비 확대로 연결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구조조정 지연, 임금 인상, 노사 분규,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 사기가 거의 바닥이다. 제조업 현장은 몸살로 비실비실 거리다 못해 아사 직전에 처했다. 한국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따리를 싸려고 한다.
중소기업 10개 중 8개가 2년 내 해외 진출을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진다. 대기업은 통상 보복 확대로 목표 시장에 가서 둥지를 틀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제조업 공동화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여기서 추락을 저지하지 못하면 앞으로 3~5년 후에 한국 제조업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국가 아젠다를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조만간 더 후회할 일이 닥칠지 모른다. 납북 간의 화해와 적폐 청산이 경제 살리기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경제가 버텨야 남북 협력도 가능하고 미래 세대에 희망도 심어줄 수 있다. 지구상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나라들의 국가 아젠다 1순위를 경제 회복이다. 미국은 제조업 있는 1등 경제대국, 중국은 첨단산업 굴기로 기술 패권 확보, 일본은 기업의 기(氣) 살리기를 통한 경제 재흥(再興), 프랑스는 노동개혁과 혁신·창업 국가 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글로벌 정치 혹은 안보 이슈에 대해서도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것들이 그들의 경제보다 절대 우위는 아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제조업 업그레이드’에 사활을 건다. 중국은 기존 산업과 인터넷의 결합, 일본은 구조개혁과 첨단 설비투자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우리에겐 이런 현상이 전무(全無)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또 따로 있을까 싶은 심정이다. 광장을 양분,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제 살 깎아먹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한다.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하면서 미래 먹거리 개발을 위한 담론을 이끌어내고 그 내용을 담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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