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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민변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가 여성 최초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각영 검찰총장을 비롯한 사시 12~18회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들이 포진한 검찰 내에서 사시 23회인 여성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두고 ‘서열을 파괴한 과격인사’, ‘검사들 모두 사표를 내야한다’는 등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재임 14개월 동안 준법서약서 폐지, 검사동일체 원칙의 ‘상명하복’ 규정 삭제, 검찰의 수사권 독립 및 정치적 중립 유지 등 검찰 내 개혁을 주도하면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는 언행에 ‘강장금’, ‘강효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강사모(강금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영입대상 0순위로 부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불면서 한나라당의 참패와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예견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 장관은 각계의 집요한 출마요구에도 불구하고 불출마를 선택했다.
200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 전 장관은 또다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떠올랐다. 서울시장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홍준표·이해찬 등 유력 정치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그의 대중적 인기는 여전했다. 하지만 또다시 출마를 고사했다.
강 전 장관은 집권당의 삼고초려가 한창이던 2006년 2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나의 고민을 요약하면 ‘공인으로서 나의 철학·성격·언행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서울시장의 역할과 그에 필요한 전문성 측면에서 내가 적합한지의 문제이다. 선거의 후보라고 한다면 그게 요체라고 본다”며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출마여부의 잣대를 ‘정체성’과 ‘적합성’에 두고, 자신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시장 선호도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금, 강 전 장관의 과거 행적이 떠 오른 이유는,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하며 핫 이슈로 부상한 강연재 자유한국당 노원병 후보와 배현진 송파을 후보의 정치적 자질과 도덕성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후보로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강연재 변호사의 정치입문은 의외로 열린우리당 입당을 통해서였다. 이후 2012년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의 모태가 되는 청년당에서 당 대변인을 맡았고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았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강 후보는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안철수 의원(당시)을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고 상근 부대변인을 맡았다. 안철수 의원이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하자 ‘안철수의 새 정치’를 지지하며 합류해 당 부대변인에 임명됐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간판으로 강동을에 출마했지만 또 다시 낙선했다.
2017년 6월 발생한 국민의당 ‘문준용 취업의혹 조작사건’은 ‘국회의원’이라는 강 후보의 목표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곤두박질 쳤고, 사건의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해 7월 11일 강 후보는 마침내 “안철수의 새 정치는 없다”며 국민의당을 탈당했다. 촉망받던 ‘안철수 키즈’(강연재·이준석·이유미)인 강 후보는 ‘정치적 의리’보다 ‘국회의원’이란 목표를 선택한 것이다. 청년당·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을 거치며 정치역정을 함께 한 정치적 스승 안철수에 대한 배신은 세간에 상당한 충격을 쥤다.
그리고 자신에게 금배지를 달아 줄 새 적임자로 홍준표를 선택했고, 올해 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열린우리당→청년당→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그의 폭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은 ‘공산당에만 입당하면 그랜드슬럼을 달성하는 것’이란 말을 낳았다.
서울 노원병은 안철수에게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준 ‘정치적 고향’ 같은 곳이다. 따라서 강 후보의 노원병 출마는 ‘국회의원을 향한 집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안철수와 보수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홍준표를 뒷배 삼아 옛 스승의 정치적 고향을 탐내는 강 후보를 향해 ‘정치도의를 상실한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꽃가마를 탄 채 서울 송파을 지역구를 꿰찬 배현진 후보는 지난 13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바로 잡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자유를 확장하고 지키는 것이 정치철학이자 목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MBC 소속 PD와 아나서운서들이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일 당시 배 후보는 “뉴스 앵커로서 시청자만 바라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파업현장을 빠져 나와 앵커 자리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가 진행한 ‘MBC뉴스’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국민의 자유권을 축소시키는 정권의 도구로 이용됐다. 결국 ‘MBC뉴스’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고,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신동호 전 아나운서 국장과 함께 ‘배신남매’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강연재·배현진 두 후보는 홍준표 대표가 전략공천한 대표적 인물이다. 두 후보는 당선을 자신하며, 오늘도 지역구 곳곳을 훑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누르고 당선 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서울 노원병에서 강연재 후보가 상대하게 될 민주당 김성환 후보는 서울시의원(노원구)과 5기·6기 노원구청장을 지내며 지역기반을 탄탄히 다져 온 강력한 상대다. 과거 ‘안철수 키즈’ 동료였던 이준석 바른미래당 후보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상당한 득표력을 갖추고 있다.
서울 송파을에서 배현진 후보가 넘어야 할 민주당 최재성 후보는 당의 핵심 요직을 거친 3선의 거물 정치인이다. 친문 핵심인사이기도 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홍준표 대표도 강연재·배현진 두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확신하며 공천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비교 조차 안 된다는 것을 홍 대표가 모를 리 없다. 정작 홍 대표의 속셈은 따로 있어 보인다.
홍 대표는 노원병·송파을 두 곳에 내 보낼 자신의 인맥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선심성 전략공천을 통해 강연재·배현진 두 후보를 ‘자기사람’으로 만드는 한편, 당 내에 자신의 지도력과 파워를 과시하는 이중 효과를 계산했을 것이다.
홍 대표가 선거 이후에도 당 대표로서 건재하다면 강연재·배현진 두 후보 모두 설령 낙선한다 하더라도 정치생명은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홍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 이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보장해주고 공천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보스를 찾을 것이다.
강연재·배현진 후보가 선거 출마에 앞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너무 어린나이에 철새정치와 배신의 정치세계를 맛보았고, 비전 제시도 없이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바로 잡겠다”는 선거 구호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서글퍼질 정도다.
‘국회의원’이란 정치권력만을 쫓는 철없는 불나방들은 자신이 ‘꽃가마를 탄 공주’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다.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김진강 기자 / 판단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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