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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45년 10월 악전고투 끝에 요택을 건너 당나라로 돌아온 당 태종은 줄곧 병으로 앓다가 649년 5월에 51세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당 태종의 사인을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맞은 독화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에 기록된 사인이 각각 내종(內腫), 한질(寒疾), 이질(痢疾)로 다르다느 것이다. 하지만 모두 요동에서 얻은 병 때문이라는 것은 일치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댔다. 역시 단재 선생다운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과연 어떤 상태였는지 ‘자치통감’의 기록을 보기로 하겠다. 귀국 얼마 후인 645년 12월에 종기가 나는 병이 났는데 태자가 부왕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는 지극정성으로 10일 만에 나았다고 한다.
얼마 후 다시 병들게 되자 당 태종의 건강상태를 심히 걱정하던 시중 유계가 어린 제왕을 보필하며 이윤과 곽광처럼 행세할 것이라는 모함을 받아 당 태종에게 자결을 명받는다. 이윤은 상나라 때 재상, 곽광은 전한 때 대장군으로 제왕을 폐위시키고 즉위시키기도 했던 최고 권력자였다.
당시 태자의 나이 18세였다. 만약 당 태종 자신이 태자가 성년이 훨씬 넘도록 오래 살 정도의 건강한 몸 상태였다면 최고권력자에게 폐위당할 어린 제왕이 마음에 걸린 나머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고변을 이유로 일국의 시중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당 태종은 태자가 성년도 되기 전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듬해 3월초 도성으로 돌아온 당 태종은 병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오로지 보양에만 집중하기 위해 태자를 불러 군사와 국가의 기밀에 관한 것을 모두 위임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당 태종의 건강상태가 상당히 위중했기에 2세 경영체제를 서두르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 태종은 머지않은 장래에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태자는 격일제로 태자궁에서 정치에 관한 일을 보고받는 일 이외에는 왕궁에 들어가 약과 음식 시중을 들면서 부왕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왕이 태자에게 잠시라도 나가 산책하면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말했음에도 태자가 사양하고 나가지를 않으니 당 태종은 아예 침전 옆에 별채를 만들어 태자를 살게 했다. 왕궁에 드나들다가 첫 눈에 반한 미모의 궁녀 무미랑(武媚娘)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태자는 그야말로 신바람이 났다. 궁녀 무미랑은 훗날 측천무후가 된다.
또한 당 태종은 요동정벌 당시 평양도행군대총관을 지냈던 형부상서 장량이 반역을 꾀하려했다는 고변에 대해 장량이 혐의를 부인하자 대신들에게 그의 처벌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아직 장량의 반란이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은 불가하다는 반대의견이 있었음에도 당 태종은 독단으로 자신을 위해 충성을 다하던 장량을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들을 노비로 삼았다. 정관의 치를 이룩한 명군의 정신이 이상해져 판단력이 흐려진 때문일 것이다.
지난 646년 10월초 영주에 행차했을 때 찬바람을 맞아 피곤했는지 당 태종은 새해가 될 때까지 다른 일을 안 하고 오로지 몸 보양에 전념했다고 한다. 11월초에 제사, 병마, 숙위, 대신들의 임명·해임 등 아주 중요한 사안 이외의 결재는 태자에게 받으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듬해 3월에는 중풍까지 맞았다고 한다. 국사를 돌보기는커녕 운신조차 힘들었을 걸로 보인다.
649년 3월 당 태종은 와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온힘을 다해 현토문 밖에 이르러 천하를 사면한 뒤 태자에게 칙령을 대리청정하기 직전에 대장군 이적을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그리고는 태자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이적을 불러들여 요직에 앉히라고 은밀하게 조언했다.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적으로부터 대를 이어 충성을 얻어내기 위한 기발한 조치였다. 이는 당 태종이 곧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는 말인 것이다.
5월 심한 이질로 고생하는 부왕을 간호하던 태자가 며칠간 먹지를 않아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 당 태종이 눈물을 흘리며 “네가 이처럼 효성스럽고 사랑스러우니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태자가 이토록 부왕 곁을 떠나지 않은 데는 그의 효성이 지극한 면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당시 부왕을 수발들던 무미랑을 너무도 사모한 나머지 항상 그녀와 같이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영웅 당 태종 이세민은 천하 2인자로서 하늘의 태양이 되고 싶어 무모하게 고구려에게 도전했다가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한쪽 눈을 잃고 연개소문에게 항복하는 수모까지 당했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병이 심해지자 5월 24일 처남 장손무기를 불렀으나 누워서 손으로 처남의 턱만 어루만질 뿐 말을 하지 못하니 장손무기는 곡을 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드디어 이틀 후 당 태종은 다시 장손문기와 저수량을 불러놓고는 “지금부터 모든 일을 공들에게 맡깁니다. 태자가 어질고 효성스러움은 공들도 잘 아는 바이니 잘 보필해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저수량에게는 “내가 천하를 갖게 된 데는 내게 충성을 다한 장손무기 덕분이니 내가 죽더라도 그를 이간해 참소치 말도록 하라”고 부탁했다. 태자에게는 “장손무기와 저수량이 있으니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는 곧 숨을 거두었다.
이렇듯 ‘자치통감’ 한 사서에만 기록된 당 태종의 병명은 종기, 풍질, 이질에다가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요동정벌을 떠나기 전까지 아파본 적이 없는 강철 인간이었던 당 태종이 요동정벌에서 돌아오자마자 온갖 병마에 시달리다가 4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사한 걸 보면 그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이 쏜 독화살을 눈에 맞은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한 사관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당 태종이 요동원정을 하려고할 때 말리는 자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또한 안시성으로부터 군사를 철수한 후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한탄하며 “만약 위징이 있었더라면 나에게 이번 원정을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려고하자 병석에 있던 방현령이 간언하기를 “노자는 만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으며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폐하의 위대한 명성과 공덕은 이미 만족할만하며 국토를 넓히는 일도 역시 멈출만한 정도가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폐하께서는 한 명의 중죄인을 처형할 때도 반드시 세 번 심사하고 다섯 번 변명할 기회를 주었으며, 검소한 식사를 올리게 하고 풍류를 중지하게 했으니 이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까닭입니다”며 “그런데 이제 무고한 병사들을 몰아다가 고구려의 칼날에 참혹하게 죽게 만들려는 것은 왜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십니까”고 간언했다.
나아가 “지난날 고구려가 신하의 절차를 어겼다면 벌주는 것이 옳고, 우리 백성들을 침략했다면 없애버리는 것이 옳으며, 뒷날에 중국의 걱정거리가 된다면 제거해버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며 “그러나 지금은 이 세 가지 조건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공연히 중국을 괴롭히면서 안으로는 선대의 치욕을 씻고 밖으로는 신라의 복수를 하겠다는데, 이것이야말로 정작 얻는 것은 작고 잃는 것은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고 이야기 했다.
또 “원하옵건대 폐하는 고구려가 스스로 새로 태어나도록 하시려면 파도를 헤쳐 나갈 선박을 불태우고 징발한 군사들을 돌려보내십시오”며 “그리 되면 자연히 중화에는 즐거움이 올 것이며 오랑캐들은 우리를 믿게 되어 먼 곳은 조용해지고 가까운 곳은 평안해질 겁니다”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황제는 이 말에 따르지 않고 동방을 폐허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삼으려다가 죽은 뒤에야 중지됐다. 사론에서 말한 ‘큰 것을 즐기고 공명을 좋아하여, 먼 곳으로 군사를 내몰았다’라는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유공권의 소설에서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가 말갈의 군사와 연합해 진영이 40리나 뻗치니, 당 태종이 이를 보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고 했다.
또한 “황제의 6군이 고구려 군사에게 제압되어 거의 꼼짝 못하였네. 이세적의 군기가 흑기에게 포위되었다고 척후병이 보고했을 때 황제가 크게 두려워했네”고 했다.
비록 끝내는 스스로 탈출했으나 저와 같이 겁을 내었거늘 ‘신·구당서’나 ‘자치통감’에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체면 때문에 말하기를 꺼려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구절은 식민사학계에서 위서로 분류한 ‘태백일사’의 기록과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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