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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조경곤 고수

“시각장애 인간문화재, 차별 없애려 출마했죠”

소리꾼 숨결 통해 장단 맞춰…‘인천 서구청장 출마’ 새 도전 나서

권이향기자(ehkwon@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6-05 0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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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지난 2013년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가 된 조경곤 고수는 10대 후반 사고로 눈을 크게 다친 후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20대 후반 시력이 완전히 잃었다. 이후 그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연습에 매진하면서 고법을 배웠다.ⓒ스카이데일리
 
“처음 시골에서 1만5000원을 들고 상경했죠. 북을 배워보겠다는 열망으로 서초역에서 노숙하면서 북을 배웠어요. 눈이 보이지 않아 역 철로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지만, 어떤 위험도 제 꿈을 향한 열정은 막지 못했죠.”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가 된 조경곤 고수는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덤덤하게 꺼냈다. 그는 10대 후반 사고로 눈을 크게 다쳤다. 이후 10번을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점차 떨어지며 20대 후반에 더는 앞을 보지 못했다.
 
사고로 시력 잃고 매일 10시간 이상 연습 매진
 
이후 그는 하루 10시간씩 손에서 북을 놓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고, 2003년 전국고수대회를 시작으로 서울 전국국악경연대회, 순천 팔마고수 전국경연대회 등에서 수상하며 국악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유독 판소리를 좋아한 집안에서 태어난 조경곤 고수는 어린 시절부터 판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구수한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고, 집안에서 북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큰아버지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판소리를 좋아했죠.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면서 판소리를 배웠지만, 당시에는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면서 갑작스럽게 세상의 빛을 잃게 됐죠.”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세상의 빛을 잃은 게 아니라 제 미래를 잃게 된 것 같았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고,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죠. 그때 그런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어린 시절 매일같이 듣고 부르던 판소리였어요.”
 
그러나 예상치 않게 가족들이 반대했다. 가족들은 눈이 보이지 않은 조 고수가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특히 그가 ‘소리꾼의 입 모양을 봐야 하는 고수를 하겠다’고 하자 다른 일 찾기를 원했다.
 
▲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던 조경곤 고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는 타고난 재능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면 성공은 뒤따라 올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사진=조경곤 고수 제공]
 
소리꾼 입모양 대신 숨결 통해 장단 맞춰
 
“제 주변에서 누구도 제가 대성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죠. 제가 타고난 재주꾼이 아닌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제가 좋아하는 판소리를 하고 싶었죠.”
 
“하고 싶은 일이니 만큼, 후회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죠. 타고난 재주가 있어도 본인이 좋아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혼자 10시간 넘게 방안에서 정자세로 앉아 북을 치다보니 손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기절도 했죠. 그래도 저는 행복 했어요. 성공을 바라고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북을 죽도록 좋아했기에 노력했고 그 결과 성공이 뒤따라 왔을 뿐이에요.” 
 
국악계에 ‘1 고수 2 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고수가 북이나 장구로 어떻게 장단을 맞추느냐에 따라 명창의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판소리는 상황과 관객 그리고 창자(唱者, 노래나 창을 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장단을 짚어야 하는 고수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고수는 없다고도 한다.
 
“판소리는 호흡이 중요하죠. 소리꾼이 힘들어할 때 기를 돋아주고, 슬퍼하면 같이 울어 줘야 해요. 고수 역할에 따라 초보 창자가 명창의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또는 명창이 아마추어 소리를 하기도 하죠.”
 
“그래서 고수는 손보다 눈이 중요하죠. 고수는 호흡을 맞추기 위해 항상 소리꾼의 입을 주시해야 히요. 그런데 저는 눈이 보이지 않아 고수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주변에서 얘기했죠.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창자의 숨소리를 느끼게 됐죠.”
 
조경곤 교수는 지난 2013년 고수 부문 최연소로 인천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 조경곤 고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천 서구청장에 도전했다. 조 고수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약을 통해 이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스카이데일리
  
장애편견 없는 사회 만들려 구청장 선거 출마
 
가시밭길을 거쳐 꿈을 이룬 조 고수는 잠시 쉬어갈 법 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자신처럼 장애를 가졌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인천 서구청장에 출마했다.
 
“유명 정당에서도 공천을 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죠. 제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장애인으로 살면서 겪었던 부조리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서죠. 당선이 목적이었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용기를 못 냈을 거예요.”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에 공헌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때 살아있음을 느끼죠.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자립하면서 살 수 있는 복지보다는 최소한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복지에만 치중했죠.”  
 
“장애인들만 모아서 교육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 차별을 부추긴다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장애인들끼리만 모여 살 수 없어요. 어찌 됐든 우리는 다 같이 살아가야 하죠. 장애인도 당당히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이해하고 공부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조 고수는 한복에 갓을 쓴 채로 선거유세를 다니고 있다. 이른 여름 날씨에 무덥고 힘들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선거 유세 중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알게 된 몇몇 시민은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구청장을 하느냐’며 험한 얘기도 서슴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편견으로 저를 보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하지만 제가 먼저 다가가 진심으로 대하면 언젠가 마음이 통하게 될 거라 믿어요. 몇몇 분들은 저에게 상처를 주셨지만 많은 분들은 제게 응원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죠. 그분들의 따뜻함에 아직 우리나라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어요.”
 
[권이향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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