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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석창우 화백

“두 팔 없이 의수만으로 김연아 명품연기 그리죠”

자신만의 ‘수묵 크로키’ 기법 개발…장애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긍정 아이콘’

배수람기자(baeba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5-15 01: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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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창우(사진) 화백은 국내 1호 ‘수묵 크로키’의 대가다. 감전사고로 양팔과 발가락 두 개가 절단됐지만 의수를 이용해 작품을 그린다. 그는 의수를 착용할 수 있다 사실에 감사하며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한 본인만의 독자적인 미술 기법을 개발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손은 그림을 그리는 하나의 도구잖아요. 몸에 붙어있던 떨어져있건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껍데기가 어떤지는 큰 관계가 없어요. 그 속의 내면이 어떤지가 중요하죠. ‘팔이 온전했으면 이랬을 텐데, 또는 저랬을 텐데’라는 헛된 상상은 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고 주어진 것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죠”
 
석창우(64·남) 화백은 지난 1984년 감전사고로 양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약 30여년간 전기기사로 일하던 그는 사고 이후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접하게 됐다. 의수에 붓을 꽂고 온몸으로 자신만의 수묵 크로키 기법을 개발해 낸 석 화백은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를 극복한 특유의 긍정 에너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며 말문을 열었다.
 
양 손 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빠 되긴 싫어 독자적 ‘수묵 크로키’ 개발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했어요. 2만2900볼트에 달하는 감전사고로 팔다리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죠. 사실 전기를 다루면서 감전될 확률은 적어요. 그 적은 확률에 제가 포함된 셈이죠. 그런데 다행히 의수가 딱 들어갈 만큼만 팔이 절단됐고 발가락 두 개만 잃었기 때문에 두 발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어요. 사고를 당했지만 감사하게 다쳤다고 생각했죠”
 
석 화백은 감전사고로 1년 6개월 정도 병원에서 지냈다. 가족들의 위로와 격려로 사고 직후에도 그는 본인이 얼마나 큰 사고를 당했는지 인식조차 안 될 정도로 편안했다고 술회했다. 눈앞에 놓인 절망보다 앞으로 무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다.
 
“두 팔을 잃고 무얼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어요. 오히려 사고 이후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세속적으로 30년을 살았다면 이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채워나갈지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아이들에게 팔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빠보다 무언가를 하는 아빠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4살배기 아들 덕분에 우연히 그림을 만나게 됐죠”
 
석 화백의 부인은 그림을 그려 달라며 고사리 손으로 종이와 펜을 들고 온 아들에게 무심코 “아빠에게 부탁해”라고 말했다. 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석 화백은 얼떨결에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이후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그는 가족들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 석창후 화백의 그림은 순간적인 붓터치로 단순하지만 과감하고 역동적인 스포츠 장면을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선이 아름다운 피겨에 영감을 얻어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주로 많이 그렸다. 사진은 석창우 화백이 그린 김연아(왼쪽) 선수와 붓글씨를 쓰고 있는 석창우 화백 [사진=석창우 화백, ⓒ스카이데일리]
 
“서예가 원래 그림보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몰랐어요. 그림을 배우려고 화실을 찾았더니 ‘팔도 없는 사람이 무슨 그림을 배우냐’며 거절을 하더군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한 게 수묵화는 먹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처제의 소개로 효봉 여태명 선생을 찾아 서예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석 화백은 장애로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즐거움을 얻기 시작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불편함과 고통이 수반됐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의수를 끼우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려 힘썼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가장 컸어요. 하루 꼬박 10시간씩 그림을 그리다보니 코피까지 나더라고요. 5년 정도면 손으로 그린 그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서예를 시작했거든요. 한 3년 정도 지나니까 어느 정도 그림이라고 부를 정도의 실력이 되더라고요. 게다가 손이 없다보니 온몸을 움직여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선이 더 자연스럽게 표현되더라고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셈이죠. 그림을 그린 이후에 발가락이 세 개뿐인 발 족적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죠”
 
“사실 ‘누드 크로키’는 정적이잖아요. 동적인 걸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많은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양팔을 잃은 후에 오히려 무언가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졌어요.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게 됐죠. 경기장을 직접 다녀보기도 하고 뮤지컬이나 공연, 연극 등을 관람하기도 해요. 인물을 표현하다보니까 그 인물의 가장 전성기를 그려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 사람 내면에 공감하고 그걸 그림으로 이끌어내고자 노력하죠”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석창우 화백은 본인만의 ‘수묵 크로키’ 기법을 만들어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필휘지로 그려낸 그의 그림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국내·외 400회 이상 전시 및 퍼포먼스를 펼친 그는 올 3월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수묵 크로키를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양팔 잃은 30년이 더 행복”…그림만 보고 정진하는 ‘긍정의 아이콘’
 
“사람이 견디지 못할 고통이나 시험은 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이 나쁘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편이에요. 좋은 쪽으로 바라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단점보다 장점이 보이더라고요.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긍정과 부정이 50대 50이었다면 다친 이후에 오히려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석 화백은 사고 후유증으로 남은 환상통도 자신의 일상생활 중 일부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일명 ‘긍정의 아이콘’이다. 사고 직후 의수를 착용한 채 외부활동을 꺼렸던 그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는 눈을 얻었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으면서 차츰 주위 시선에 무던해졌다.
 
▲ 석창우(사진) 화백은 본인의 작품을 본 사람들 중 그에게 손이 없는 줄 모르고 놀라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전했다. 그는 누군가의 ‘수묵 크로키’ 기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결국 아류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며 자신만의 기법을 찾도록 후배들도 이끌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팔을 잃은 30년이 왜 더 행복할까 돌아보게 됐어요. 가족들의 응원과 따뜻한 지지로 마음이 편안했던 것도 있고 종교를 통해 얻은 위로도 한몫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어요. 절대적인 목표가 없으면 포기하기 십상이지만 그게 뚜렷하면 힘들어도 과정으로 느끼고 해나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과정 안에는 희로애락이 있어요. 제가 열심히 하고 즐겁게 그림을 그리니까 주변에서도 함께 즐거워 해주더라고요.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게 다음 목표죠”
 
석 화백은 양팔을 잃은 장애 역시 자신만의 예술을 표현하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사고 후유증으로 얻은 환상통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와도 그 아픔조차 일상생활 중 하나로 받아 들였다. ‘환상통’은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지 않거나 뇌가 더 이상 자극에 대한 신호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수백 개의 바늘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다 그림을 그리다 획을 잘못 그을 때면 그는 자신을 탓하기보다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해 그림으로 다시 살려낼지 고민한다고 전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똑같은 회사원이었어요. 일하기 싫어도 참고 해야 했죠. 하지만 그림은 다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정년 부담 없이 계속 할 수 있죠. 그리고 제 흔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죠. 저는 무언가를 자꾸 고민하고 답을 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면 그 대상이 나를 찾아온다는 생각으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해요. 나중엔 외국의 어느 큰 광장에 나가 그림을 그려보고 싶기도 하고 국제 마라톤대회 출발부터 골인지점까지 한 번에 담아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간절하게 원하면 늘 이뤄지더라고요”
 
“2015년이 사고를 당한 지 30년째 되는 해였어요. 그때부터 제 삶에 대한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성경책을 매일 필사하고 있죠. 성경 말씀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아들을 통해서 그림이라는 걸 찾게 됐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이룬 셈이니 앞으로 나라는 사람을 그저 열심히 그림을 즐겁게 그리다 간 사람으로 주위에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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