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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예술과 인생

벗은 모습은 아름답다…누드 스토리 2

“때와 먼지 가득한 정치판 한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07-22 22:06:37

▲ 김수영 서양화가
7. 8월, 이 계절은 노출의 계절에다 바야흐로 누드의 계절인 것이다. 이 멋진 계절에 누드 얘기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필자가 성에 호기심을 갖고 거기에 몰두하게 된 것은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아마도 중학교 시절 같다. 십대의 왕성한 신체적 변화에 못 이겨 이성 이야기가 나오는 대중잡지의 성문제 상담 코너나 소위 “빨간 서적”에 온통 눈이 멀었었다.
 
당시는 정식 성교육이 거의 없었고 생물시간에나 약간씩 맛보기로 간지럽게 가르쳐 주거나 아니면 주로 친구나 선배들에게 ‘집체교육’ 형식으로 성문제에 접근했었다. “자 모두 지퍼를 내리고 연장(?)을 꺼낸다. 실시!”  “실시!!!!!”
 
필자도 미술실에서 선배들의 교육에 의해 누드를 그리면서 여성의 가슴은 어떻고 오르가즘은 무엇이며 멘스는 왜 생기며 남성들의 신체구조와 포경 수술에 관한 이야기 등등 실로 우리가 배운 성교육은 “소곤소곤 귓속말 교육”이 전부였다. 
 
1960년대 국산영화, 역시 키스 장면은 거의 안 나오고 혹 가다 키스 장면이 나온다 치면 군대에서 절도 있게 행동하는 형식의 입을 갖다 대다가 마는 영혼이 없는 그런 식이었다.
 
당시 히트 쳤던 1968년도 작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여배우 ‘문희’가 ‘신영균’의 가슴에 안겨 살그머니 입을 대는 장면이 나온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당시는 군사독재 시절이어서 영화검열도 대단했기에 성적인 장면이 나오면 가차 없이 난도질을 당했기에 그렇다.  
 
검열 얘기에 이런 일화가 있다. 당시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이라는 영화는 본래 2시간 40분짜리인데 정작 영화 상영 시간 때는 1시간 30분짜리로 극장에 개봉을 했을 정도였다. 무려 한 시간이상을 검열에 걸려 영화의 내용이 온전히 전달되었을 리 없었다.  
 
훗날 검열이 다소 완화되고 본격적인 애로영화라고 했던 70년대 ‘어우동’ ‘뽕’ ‘내시’ ‘물레야, 물레야’ 등에서도 진한 섹스장면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가령 섹스장면이라면 여성의 가슴은 보일락 말락 하고 남자의 등이 보이는 속에 둘이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진다. 그 뒤 여배우의 얼굴이 잠시 클로즈업 됐다가 엷은 커튼이 보이고 침대가 흔들거리는 정도로 맛보기만 있고 관람객이 상상하게 하며 교묘하게 자극하는 정도였다. 요즘 성인물과는 하늘과 땅이다.    
 
영화이야기는 훗날 속속들이 파헤치고 오늘은 미술에서의 누드 이야기이다. 나체에 대한 관심은 중세의 단절을 예외로 한다면 서양회화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하나의 경향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남성과 여성의 벗은 몸은 모두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엄격한 신(神) 중심 사회였던 중세 시대에 육체는 정신을 방해하는 욕망과 죄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더군다나 그림의 역할이 문자를 모르는 대다수 민중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는 도구로 제한되면서 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사람의 몸은 칭칭 감은 옷 속에 감추어졌고, 성경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한두 가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신체를 드러내는 게 허용되었다. 그중 하나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에 대한 일체의 감정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는 인간의 나체가 제한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의 경우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이다. 옷이 벗겨진 채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신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나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일대 부흥을 맞이하면서 벌거벗은 신체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일부로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서 복권된다. 처음에는 남성의 몸이, 그 뒤를 이어 여성의 몸도 묘사 대상으로 재등장한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그림만 하더라도 여성의 나체는 주로 신화나 종교를 매개로 하여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의 여성 나체가 독립적인 예술의 대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근대 미술에 이르러서야 여성 나체는 적극적인 묘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여성의 나체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화가들이 가장 자주 사용한 방법이 목욕하는 장면이었다. 신화나 종교의 옷을 빌려 표현할 때보다 아무래도 목욕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신화의 옷을 빌릴 때는 정치적인 부담이야 줄어들지 모르지만 대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함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의 옛 화가 신윤복도 <목욕하는 여인들>에서 조선 여인들의 누드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여인의 상반신이 나오는 정도지만 한국 선인들의 여인 누드가 시초가 아닌가 하는데, 작품 속에는 몰래 숨어서 여인들의 목욕장면을 보는 스님들의 모습이 매우 해학적이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유난히 여인을 많이 그렸는데, 다른 화가에 비해 목욕을 하는 여인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었다. ‘르누아르’는 “만일 여인의 유방과 궁둥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여인의 벗은 육체에 심취했고 풍부한 색감과 질감으로 이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 <목욕하는 여인들> 르느와르 1887년도
 
목욕하는 여인을 묘사한 ‘르누아르’의 작품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단연 <목욕하는 여인들〉이다. 서양 미술을 소개하는 미술 책이나 잡지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으로 드가의 작품과 함께 단골로 등장하는 그림이다.
 
아마 한국인들도 화집이나 잡지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가면 벽면을 장식하는 대형 타일 그림이 있는 그림 속 여인들은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작품은 강 주변으로 나무들이 울창하고 강둑에 수풀도 풍성하다.
 
하늘은 푸르고 화창해서 목욕하기 딱 좋은 날이다. 앞의 세 여인이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른쪽의 여인이 물을 끼얹으려 하자 왼편의 여인이 손과 발을 들어 막는 동작을 취한다. 뒤편의 여인은 이제 물로 들어가려는 듯 몸에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는 중이다. 세여인 모두 마치 경쟁하듯 풍만한 육체를 뽐내고 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가 3년간 온 힘을 기울여 완성했다. 여러 개의 데생과 습작을 통해 준비했을 만큼 깊은 애정이 담긴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르누아르’의 인상주의 화풍을 선호하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목욕하는 여인들〉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의 엄격한 형식미를 모방하는 고전주의적인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인들의 목욕이라는 소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그리스 조각품이 주는 느낌과 유사하기는 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이 보기에 이 그림은 미술의 후퇴였을 것이다.
 
여기서 사족(蛇足)<목욕하는 여인들>에서 보듯 인간의 원래 모습은 나체다. 여기에  “당신은 때 빼고 광내고 다니는가?”라고 물으면 독자는 무어라고 답할 것인가? 때, 이 더러운 때는 누구나 지니고 산다. 털면 먼지 안 나온다는 식으로... 먼지 또한 인간에게는 영원히 붙어 다니는 숙명이다.
 
하지만 때가 있고 먼지가 몸에 붙어 있다면 우리는 성당에서 말하듯,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하고 영성체(領聖體)를 몸으로 받아 들여 새롭게 주님 앞에 당당히 서 서 행하리라 라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최근 정치판에서 보면, 때와 먼지가 가득한 사람들이 여전히 판을 치고 세상을 흔들고 싶어 안달이다.
 
지난 4.13 선거에서 국민들의 혹독한 심판을 받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무릎을 꿇을 때는 언제고 표로 심판받고 여론에서 저주 받았으며 민심에서 발길질을 당해도 여전히 언제 그랬느냐? 하고 다시 헐뜯고 활개 치며 “나는 맞고 너희들이 틀렸다.” 라고 큰소리치며 뉴스 판에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나오는 걸 보면 국민들은 아예 절망한다.
 
당신들이 보수의 가치를 더럽히고 보수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한 것을 모르는가? 희대의 살인마이고 교조적이며 지구상에 둘도 없는 악독한 독재자인 적에게 사과와 속죄를 받지 않고 그와 웃으며 손을 잡고 적에게 무엇을 주지 못해 안달하는 자들과 그들의 무한질주를 막아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땅에 떨어진 존재가치도 모르는 이 한심한 자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나는 그런 정치인들에게 크게 손가락질하며 외치고 싶다. “니들이 아직도 몸에 붙어 있는 더러운 때와 지저분한 먼지가 가득한 걸 모르느냐?”
 
▶참고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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