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땀 흘린 돈 빼돌린 총수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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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진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8-15 21:47:20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던진 유리컵이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이어 그의 어머니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집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경비원에게 가위를 던졌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이들 모녀의 심리를 정신과 의사들이 분석하는 언론 보도까지 쏟아졌다. 의사들은 재벌 2, 3세들이 부와 권위를 그대로 대물림하면서 중세 봉건적인 특권의식에 사로잡혔다고 분석했다.

권위를 이용해 위험한 물건을 던진 이들에게 응당한 처벌이 가해지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일련의 갑질로 인한 수사는 기껏해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것이다.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것도 모자라 유예 기간 중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다.

막강한 변호인단을 선임한 총수 일가는 최근 모든 구속수사를 피했다.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 전 전무와 이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해 신청·청구된 구속영장은 4차례나 기각됐고 횡령·배임, 사기,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위기에 놓였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구속을 면했다.

총수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관세청은 조 전 부사장의 밀수·탈세 혐의에 대해 마무리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 전 이사장도 고용노동부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진그룹 위장계열사 카드를 빼들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조 회장의 3남매는 대한항공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의 주식 100%, 유니컨버스의 주식 85%를 소유하고 있다. 싸이버스카이는 기내면세품 쇼핑몰 사이트에 입점한 업체들로부터 받은 광고수입을 전부 챙겼다. 그런데 업체 유치에 필요한 일은 대한항공이 모두 도맡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짜 갑질은 여기에 있다.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콜센터 업무를 대행하면서 시설 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대한항공에 떠넘겼다. 심지어 시설유지비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총수일가가 대주주인 회사가 계열사 일을 맡으면서 업무·비용은 떠넘긴 채 이익만 챙기는 ‘통행세 징수’ 행위를 한 셈이다.

공정위는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재판부는 “이 정도 규모 거래를 통해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가 사익을 편취하고 경제력의 집중을 도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집단 내부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 자체를 처벌해야 하는 입법정신에 위배되는 판결이다.

물컵을 던진 일은 엄밀히 말해 경미한 폭행이지만 직원들이 일해 번 돈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행위는 매우 심각한 갑질이다. 중세 봉건적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총수일가에게 이를 일깨우고자 한다면 관심을 갖고 사법부와 정부를 지켜봐야 한다.

사람을 향해 물컵을 던지는 갑질은 재벌 3세를 경찰서에 한 번 불러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경제적 재벌 개혁만이 직원들이 물컵을 맞지 않고 노동의 대가를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다. 총수일가가 포토라인에 서 고개 한 번 숙였다는 사실로 만족한다면 진짜 갑질은 조용히 묻힐 것이다.

[남승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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