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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이 외국 먹튀자본의 먹기 좋은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그 원인의 일단이 자승자박을 하는데 있다면 경제파국을 걱정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징후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들인 수출 대기업들이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방어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오히려 먹기 좋게 밥상을 차려주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입법이 착착 진행 중인 것이 긴장스럽다.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기업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현 정부의 전방위 옥죄기에도 불구하고 기업당 많게는 수백조원에서 적어도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구모 투자를 잇따라 약속하고 나섰다. 이들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수출 최전선에서 효자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규모 투자의 대가는 선물이 아니라 혹독한 시련으로 닥치고 있다. 현직 경제부총리의 읍소에 가까운 호소에 묵직한 투자로 응답한 대기업들이 오히려 올가미에 걸려들 신세가 될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종횡무진 국내 자본시장을 누비며 거액의 잇속을 챙겨가는 이른바 먹튀자본은 그 대표적 사례다. 올해 들어서도 헤지자본들의 횡포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잘 알려진 엘리엇은 많지 않은 지분으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삼성을 향해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아 상당기간 경영이 마비되다시피 했던 엘리엇의 과녁은 지금 현대차로 향해 있다. 지난 5월에 이어 최근에도 그들의 잇단 압박은 가히 도를 넘었다.
지배구조 개편을 해야 하는 틈새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주식가치를 끌어 올리는 설계까지 치밀하게 그려 내놓았다. 후계구도를 감안한 경영권 방어를 해야 하는 현대차그룹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지주사 중심의 새로운 세팅을 위한 합병비율 등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임에도 엘리엇은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취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
우리의 자본시장법을 어기면서까지 특정 주주의 입장만을 들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 기준도 충족하기 어려운 정말 엉뚱한 설계도를 엘리엇은 내놓았다. 누가 봐도 회사와 전체 주주의 입장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이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증권가에 따르면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핵심기업인 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의 주식을 각각 3% 미만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이 많지 않은 지분으로 굴지의 글로벌 자동차그룹 기업지배구조 재편작업에 세세한 부분까지 들먹이며 큰 소리를 치는 것에 강하게 대응해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왠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그런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우리 내부에 상당히 있다.
우리 기업들은 외국의 먹튀자본들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카드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때마침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 중에는 먹튀자본들이 먹기 좋을 만한 푸짐한 밥상들이 많이 준비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대기업들로 하여금 먹튀자본의 공세에 정면돌파를 하지 못하게 하는 작지 않은 요인이 되고 있다.
상법개정안 중 핵심인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은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강력히 손발을 묶는 장치다. 자회사·손자회사에 모회자 주주가 소송을 걸 수 있게 하고 1주 1표 의결권을 이사수만큼 확장하는 제도 등은 주주권리를 확장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대 또는 먹튀 의도를 갖는 공격에 기업경영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큰 허점이 있다.
경영에 막강한 힘을 행사할 감사위원 선임에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액주주 권리가 확장될 듯해 보이지만 특정 주주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불필요하게 경영에 간섭할 요인이 된다. 외국계 투기자본들이 연합해 언제든지 소송을 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나 감사위원이 이사진에 진출토록 하면 해당기업의 경영권은 사실상 빼앗기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확장하는 것은 물론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국내 기업들의 성과가 투기자본들의 배를 불리는 밥상으로 전락하면 오히려 국내 대다수 선량한 소액주주들은 부지불식 피해자로 떨어진다. 투기자본이 이사진과 감사위원회에 옹립되면 과도한 배당과 알짜 자산의 매각 등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미래이익이 아닌 당장의 이익을 내도록 해 고액배당을 타고 단기차익을 본 후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나아가 비밀스럽게 진행해야 할 투자나 연구 등의 분야에까지 개입하면 기업 비밀이 빠져나가 경쟁력이 송두리째 빼앗길 우려까지 있다. 실제로 이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기업은 권력과 사정기관들로부터 언제든 칼질을 당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가고자 한다면 기업들에게도 방어권을 함께 줘야 한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은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지 않는 방어권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차등의결권은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 굴지의 대기업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제도다. 대주주 가문에 의결권을 몰아줘 경영의 안정성을 꾀하거나 주식 장기보유시에도 의결권을 강화해 주주가치 안정을 꾀하고 있다. 포이즌 필도 명백하게 기업이 공격을 받거나 부당한 간섭을 받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제도다.
기업경영은 다소 불합리한 점이 있더라도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늘 전쟁같은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쉽지 않다. 특히 비교우위에 있지 않은 제품력과 브랜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빠른 의사결정은 기업 전체의 생사를 좌우한다. 또한 경쟁업체들의 편법과 불법 등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범죄선상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죄인의 위험을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
자본시장은 외견상으로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 틀 밖에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많은 기업인들이나 경영인들은 그래서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칼을 목에 걸고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허다하다. 나아가 자본시장의 내면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착하지 않고 착할 수 없는 경쟁자들이 도처에 넘친다. 투자한 기업의 발전이나 미래는 관심 없이 오로지 돈벌이에 목맨 주주들도 많은 배경이다.
경제민주화는 공정하고 착한 경제를 지향하지만 시장이란 치열한 운동장에서 경쟁의 관대함과 미덕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패배자들이 양산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한 사람들이 자본시장에서 착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정책을 취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시장개입과 도덕적인 잣대는 자본시장에서 더 많은 선량한 실패자를 만들어 내는 비극을 반드시 초래한다. 우리가 힘겹게 가꾼 부가가치와 기업 경쟁력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탄 외국자본들에 손쉽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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