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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연합군이 백제의 남쪽에서 7월 10일에 만나 사비성을 쳐부수는 작전을 개시했음에도, 백제는 방어지를 놓고 의견통일을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 사이 이미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지나 도성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급보를 접한 의자왕은 계백 장군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거느리고 황산(黃山)으로 가서 신라군을 막으라고 했다.
당시 벼슬이 달솔(達率)이었던 계백(階伯) 장군은 출전하기에 앞서 이번 전쟁에서 백제가 이길 수 없음을 미리 예측하고는 “일국의 군사로 당과 신라의 많은 병력을 당해내자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도다. 내 처자식들이 붙잡혀 노비가 될까 두렵구나.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흔쾌히 죽는 것이 나을지니라”라며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비장한 각오로 황산의 벌판에 이른 계백 장군은 미리 험한 곳에 세 개의 진영을 설치하고는 신라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5천 결사대원들에게 “옛날 월왕 구천은 5천의 군사로 오왕의 70만 대군을 격파했다. 오늘 우리도 마땅히 각자 분발하여 승리를 쟁취해서 나라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정방이 이끄는 10만의 당나라 수군은 연안을 따라 기벌포에 이르렀으나 입구가 진흙수렁인지라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 버들로 자리를 만들어 깔고 군사들을 내리게 했다. 김유신 대장군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은 드디어 7월 9일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이끄는 백제의 5천 결사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자 신라의 김흠춘 장군이 아들 반굴(盤屈)을 불러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이 으뜸이요 자식의 도리로는 효성이 제일이니,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바쳐야 충·효가 모두 온전해진다”라고 말하니, 반굴이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바로 적진으로 들어가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이번에는 품일 장군이 부장으로 참전한 아들 관창에게 “너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높다. 오늘이야말로 공명을 세워 그 이름을 떨칠 때이니 어찌 용기가 없을쏘냐”라고 말하니, 관창은 “그렇습니다”라고 답하고는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는 바로 적진으로 달려 들어가 백제군사 여러 명을 죽였다.
그러나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백제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산채로 계백 장군 앞으로 끌려갔다. 계백 장군이 그의 투구를 벗겨보고는 어린 나이임에도 용맹한 것을 대견해하면서도 애틋하게 여겨 차마 죽이지 못하고 “신라에는 빼어난 인물이 많구나. 소년조차 이러하거늘 장수들이야 어떻겠는가”라고 탄식하며 관창을 그냥 살려 보내라고 명했다.
관창이 돌아와서는 “아까 제가 적진에 들어가 장수를 베지도 못하고 깃발을 뽑아오지도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습니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겠나이다”라고 말한 후,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는 다시 적진에 들어가 맹렬하게 싸웠다. 계백 장군이 다시 사로잡아 머리를 베어 그의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진영으로 돌려보냈다.
품일 장군은 아들 관창의 머리를 붙잡고 소매로 피를 닦아주며 “내 아들의 얼굴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구나.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도다”라고 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신라 병사들이 비분강개하며 전의를 다지고는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하니, 이번에는 백제군이 크게 패해 계백장군이 전사하며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7월 12일 나당연합군이 드디어 백제 도성인 소부리(所夫里)를 포위하자, 13일 의자왕은 웅진(熊津)성으로 피신하면서 병력을 다시 재정비해 웅진강의 입구를 막고 강가에 군사를 주둔시켰으나, 소정방이 웅진강의 왼쪽 언덕으로 나와 산 위에 진을 치고는 싸워 백제군을 크게 격파했다.
소정방은 보·기병을 거느리고 곧장 도성 30리 밖까지 와서 멈추었다. 백제 군사들이 모두 나가 싸웠으나 다시 패배해 전사자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당나라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성으로 치고 들어옴에 사태의 위중함을 깨달은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탄식하며 말하고는 태자와 함께 북쪽 변경으로 달아났다. 드디어 백제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연재에 ‘대청광여도’에 그려진 산동성 제남시 동남쪽 추평(鄒平)현에 있는 해발 168m의 황산(黃山)은 설사 공격축선이 가능하다하더라도 백제의 도성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곡부(曲阜)에서 방향이 남쪽이 아닌 동북쪽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계백장군이 전사한 황산으로 비정하기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곡부 남쪽에는 황산이 없을까. 만일 있다면 곡부가 백제의 도성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주변에 백강(백마하)이 있고 그 상류와 사하(泗河)가 연결되었던 흔적인 생태습지까지 있어 “소정방이 기벌포에 이르렀으나 입구가 진흙수렁인지라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라는 기록과 일치되는데다가, 만일 곡부 남쪽 추성(鄒城)에 황산까지 존재한다면 역사기록과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곡부 남쪽 추성에는 3군데 황산이 존재하는데 전황진(田黃鎭)에는 대·소황산이 따로따로 있는데 방향이 동쪽이고, 곽리진(郭里鎭)에 있는 해발 약 600m 황산은 서남쪽이라 그 가능성이 낮다.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90m의 간장진(看庄鎭) 황산이 계백 장군이 전사한 황산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이 정도만 책상위에서 찾아놓고 만일 답사 기회가 주어진다면 백제 사비성의 위치도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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