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한국 제조업, 중대 기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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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하면 바보’라는 나라가 어떻게 미래를 꿈꿀 수 있나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18-12-29 18:10:46

한국 경제의 젖줄은 누가 뭐라 해도 제조업이다. 이는 제조업이 버텨 주어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조업은 내수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수출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수출이 잘 돼야 기업이 살아 움직이면서 고용이 창출되고 시중에 돈이 돌아간다.

결국 승부처는 해외시장인 셈이다. 그리고 그 승부사는 기업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경쟁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잘 나가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경쟁국 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를 두고 요즘에는 ‘혁신(革新)’이라는 용어로 집약에서 표현한다.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세금을 낮춰주고, 규제를 축소하거나 없애면서, 한편으론 재정 지원이나 안정적 환율 기조 유지를 통해 이를 백업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제조업, 수출이 그나마 버텨온 것은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와 이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왔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제조업 환경이 돌변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대외적인 요인과 대내적인 요인이 있다. 대외적으로 보면 글로벌 시장 환경이 공급 과잉으로 바뀌고 있는 점이다. 시장의 수요가 공급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는 개혁·개방 40년을 맞는 세계의 공장 중국의 가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 확대될 것이다.

또 다른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와 인도의 합류는 시장 상황에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국경이 없어진지 오래다. 여기에다 자국 우선주의라는 보호무역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다.

과거에는 해외 시장 여건이 좋으면 우리 수출이 활기를 띠고, 기업 경영도 활발하게 돌아갔다. 이젠 이러한 등식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글로벌 경기와 무관하게 우리 제조업 내지 경제가 빠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 환경이 더 치열하고 험악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안으로 눈을 돌려 보더라도 대외적인 여건 못지않게 심각하긴 마찬가지이다. 중심축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비유이다. 소득주도 혹은 포용적 성장 등과 같은 언어적 유희로 본질을 빗겨간다.

미래는 없고, 현재 있는 파이를 나누는데 급급하다. 노동자나 기업 중 한 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이 손실을 보는 제로 섬 게임으로는 절대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임금 인상은 생산성에 맞추어야 하며, 노동자의 임금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방법은 세금을 낮추거나 물가를 안정시켜 주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

세금 인상에 따른 세수 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하물며 외국인들조차 한국이라는 나라를 ‘갈라파고스 섬’ 같다고 비아냥한다. 마치 규제 공화국 같다는 평가를 하면서 이런 기업 환경으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음을 공공연하게 지적한다. 기업하기를 포기한 나라 같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이 정도 되면 변화하지 않고 못 배길 터인데 아직은 그 어디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이 우리 제조업에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기나 한가?

사상 최초로 수출 6000억 불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제조업 현장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특정 기업 혹은 상품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보니 온기(溫氣)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중소·중견 기업 10곳 중 7 곳 이상인 74%가 올 매출이 정체되거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 공히 부진한 것이 원인이다. 제조업 현장인 지역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고, 공장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데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제조업 하면 바보라는 소리가 파다하다. 창원·울산·군산 등 산업 현장의 땅값은 10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거리는 없어지고, 외국인 근로자의 채용도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종사자 대부분이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장 동력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으면서 선진국 도약은커녕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양보는 없고, 불만만 가득하며, 모두 자기 배만 채우려고 눈을 붉힌다.

기술 축적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중국의 추격은 턱 밑까지 따라오고, 일본 경제는 완벽하게 부활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인 소니와 도요타가 우리 제조업에 다시 경종을 울린다.

고가 TV 시장에서 소니가 삼성과 LG를 위협하고 있으며, 도요타는 10년 만에 다시 살아나 15조 엔이라는 사상 최대 매출에 영업 이익은 무려 15%나 증가했다. 현대·기아 차가 고전하고 있는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한국 상품에 해외 시장에서 샌드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적신호가 도처에서 깜빡거린다. 일본 상품이 잘 팔리면 우리 상품이 고전하는 대체재 관계가 더 농후해지고 있다.

우리 제조업을 이대로 방치하다간 한국 경제가 거덜 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누구 혹은 어느 정권 탓이라고 수건돌리기만 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벅차다.

1980년, 90년대에는 일본을 따라 잡아야 한다는 비장함이 우리 제조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런 결단이 생기지 않으면 추락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를 꿈꾸지 않는 국가나 민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년이 한국 제조업의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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