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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97

강성한 기마민족(Hun), 유라시아까지 지배했다

흉노(匈奴=예맥:銳麥=濊貊), 유럽 민족이동을 유발시킨 강대 민족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1-12 11:52:37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중국이 유라시아를 휩쓴 북방유목민족
(北方遊牧民族)에게 짐승의 이름을 붙여서 흉노(匈奴)’. ‘예맥(濊貊)’이라 했으나 이들은 유라시아의 유목민(遊牧民)으로 훈족(Hun)과 돌궐족, 몽골족들을 말하는 유목민이다. 하지만 춘추시대(春秋時代) 중국을 정벌한 민족은 예맥이다.
 
후한서에 이 사실을 동이전에 기록하고 있다. 회남자(淮南子)11에 흉노와 예맥이 종발(縱髮), 즉 피발(被髮)한다고 했는데, ‘동이전에 기입한 것을 보면 흉노가 아니고 예맥이다. 예맥은 동주시대부터 한무제시대까지 천여 년 동안 중국을 정벌, 정복한 사실이 중국사에 명기되어 있다. 예맥은 3천년 전 세운 나라로 중원을 지배하고 유럽까지 진출한다.
 
중국인들이 흉노(匈奴:(Hun)족이라고 하는 것은 3천년 전에 건설한 예맥조선(銳麥,濊貊,穢貊)을 지칭하는 것으로 부여, 고구려도 예맥과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예맥(銳麥,濊貊,穢貊)은 중국 산해경(山海經), 대황동경(大荒東經)에 기록한 유위국(有蔿國)으로 본래의 이름은 위국(蔿國)이고 어조사(語助辭)로서 유자(有字)를 붙여서 유위국(有蔿國)이라 칭하였다.
 
이들은 너무 강대해 중원을 정벌함으로 중국인이 증오심으로 예맥((銳麥,濊貊,穢貊)이라는 악명을 붙이었다. 관자전서(管子全書)卷十一, 소칭편(小稱篇)예맥(銳麥)은 흉악(凶惡)하다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공자(孔子)예맥에게 맥()이라는 짐승이름을 부친 것은 악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최인(崔仁) 선생은 예맥(濊貊=穢貊)을 예맥(銳麥)이라 고쳐 말하고 있다.
 
최인 선생은 주석을 통해 국호의 예()는 예병(銳兵)으로서 천하를 정복하는 강대(强大)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고, ()은 내한(耐寒)의 곡물로서 한냉(冷寒)한 지대에서 성장한 맥(-미수가루)을 상식(常食)하면서 강병(强兵)을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던 모습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한고조(漢高祖)는 천하를 얻은 후에 자신과 생일이 같은 노관(盧綰)을 연()나라 왕으로 임명했는데 건국 후 2년 후인 서기전 200년에 흉노를 정토(征討)하려다 오히려 흉노의 모돈단우(冒頓單于)가 이끄는 40만 기마군단에 패한 후인 건국 4년째 되는 서기전 198년에 이 노관(盧綰)이 부하인 사기꾼인 위만(衛萬)과 같이 한고조(漢高祖)를 배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예맥(銳麥)은 한()과의 전쟁에서 항복을 받아들이고, ()의 조공(朝貢)과 한()의 공주(公主)를 왕후(王后)로 들이는 때라 한()의 지원요청에 용감한 정예기병(騎兵)을 보내어 한()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漢書, 卷之一, 高帝紀 第一上). 이같이 예맥은 한()과 대립관계가 아닌 때에는 한()을 도와주기도 했다.(以上崔仁, ‘韓國學講義’ ,63~64面 參照 引用).
 
오늘은 고대부터 많은 제후(諸侯)들이 동주(東周) 도읍인 낙읍(洛邑: 현재의 낙양(洛陽))은 대륙중원문화의 발상지(發祥地)로 산물(産物)도 풍부한 이 하남성 황하유역주위에 많은 나라들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당시 환족(桓族)과 한족(漢族)의 국가기원 등 사실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민족(韓民族)의 국가기원(國家起源)
 
현재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역사는 다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자국(自國)의 기원(起源)을 제대로 모르고들 있다. 그것도 역사를 연구한다는 사람이나 저명인사들까지도 국가기원(國家起源),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을 빼고, 고조선을 국가기원으로 하고 있는데 제정신들이 아니다.
 
그것도 사가가 아닌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도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하여 환국(桓國)이 오랜 옛날 있음을 말했는데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고구려백제신라가라(加羅)로 이어지고 있는데 고조선의 제후인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집어넣고 배달국, 예맥, 부여를 빼고 있다. 이는 역사 체계를 잘못 잡았을 뿐 아니라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古朝鮮)에 관해서는 위서(魏書)에 의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영역을 산동성(山東省)의 동명(東明),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 백제 패망지역인 강서성(江西省)의 덕안(德安)과 한반도(韓半島)까지로 하였다. 위서(魏書)에서도 상고시대의 구리(九黎)를 빼었다.
 
그런데 중국25에서는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로 기록하면서 고조선 이전에 구리(九黎)고구려백제신라가라(加羅)로 이어졌다고 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보다 우리 민족기원을 한 차원 위인 구리(九黎)로 하면서도 단군조선의 2096년을 1048년으로 오기(誤記)했다.
 
, 단군조선 2096년을 1048년으로 하면서 구리(九黎)시대의 치우천자(蚩尤天子)는 기록하고 있으나, 단군기록은 없다. 구리(九黎)시대의 치우천자(蚩尤天子)의 능()이 기자의 묘가 있는 안휘성(安徽省)의 몽성(蒙城) 북쪽 동평(東平), 태산(太山)서쪽에 있어서인지 바로 기록하지 않았다.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조선을 기록했다면 구리(九黎)도 규명(糾明)해 기록했어야하는데 구리시대(九黎時代)를 삭제하고 신화(神話)로 기록하여 우리 민족사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일연이 소동파(蘇東坡)의 지도를 3번 본 후, 소동파의 왜곡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것은 중국25사에서 우리 민족의 영역은 서화에서 반도까지 기록하고 있음에서 그 영역은 대륙과 한반도 전역(全域)이다. 삼국사는 우리민족의 체계를 구리(九黎)고구려백제왕신라가야가라()칸신라((新羅)로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영역은 중국25와 같이 대륙의 서화(西華)중심의 동쪽에서 반도까지로 하였다. 그런데 김일연은 우리민족의 구리(九黎)삼국사(三國史)중국25가 밝혀져서 삼국유사를 기록하면서도 우리 역사를 반도 안에 가두기 위해서 이를 숨기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기록이 없어도 조작하여 역사를 변조하며 왜곡하고 있는데 대륙사를 반도사로 기록한 김일연과 신채호의 반도 안에 우리역사를 맞추어 가져다 놓은 것은 큰 패악(悖惡)이다.
 
그리고 언어가 다르고 행정권이 지금 달라졌다고 해서 광개토태왕비와 유적, 중국25삼국유사기록이 제대로 입증하여 줘서 고조선 이전 배달국과 환국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국 민족의 국가기원(國家起源)과 삼황오제(三皇五帝)
 
우리는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역사조작과 왜곡이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벼농사를 비롯한 콩, 보리 등 농경생활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고대에 토기, 금속기재작기술을 발명하여 촌락사회로부터 도시국가로 전화(轉化)했다고 되어 있다. 이는 세계의 인류학자와 고고학자간에서도 인정되어 세계사학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민족은 세계의 제민족(諸民族)과 같이 자기민족이 현주지(現住地)에 자생해서 그 문명을 자력으로 만들어왔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황된 것임이 바로 밝혀진다.
 
특히 중국인들은 자국의 문화가 도덕도 재능도 다른 민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인(聖人)이 황제가 되어 유용한 기술을 발명하고 미개한 인간과 사회를 교화(敎化)해서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인생활을 창조했다는 전설을 갖고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이는 모두 허구이다.
 
최초의 성제(聖帝)는 유소씨(有巢氏)라고 부르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고 하고, 그 때 인간이 먹는 것은 패류(貝類)인데 이를 날()로 먹기 때문에 위장(胃腸)이 상해 병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 한 성인(聖人)이 나타나서 화타석(火打石)을 때려서 불을 피우는 기술을 발명해서 패류(貝類)를 삶아서 먹을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는데 위병(胃病)이 낳음으로 그를 수인씨(燧人氏)로 불러서 왕의 위()로 올렸다고 하고 있다. 수인씨(燧人氏)는 동이족이지 화족이 아니다.
 
중국고서(中國古書)에서는 삼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으나 이러한 성인(聖人)은 무엇인가! 이상한 정기(精氣)를 가지고 낳은 자로 복희(伏羲)라는 성인이었다고 하고 있다.
 
이 복희(伏羲)는 머리는 인간(人間)이나 온몸은 비늘로 덮여있고 거의 용()과 같았고 그 황후 여왜(女媧)는 인면사신(人面蛇身)이었다고 돼 있다. 이것은 다 전설로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理性)의 힘으로서 야만인으로부터 문명인이 되었다는 계몽주의적(啓蒙主義的)인 진보적(進步的)인 역사관(歷史觀)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삼황(三皇)에 관해서도 오제(五帝)라는 성인(聖人)이 임금이 되어 계속해서 임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도 조작이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황제(黃帝)이다. 황제(黃帝)는 염제(炎帝)와 싸워서 이겨서 왕위(王位)에 오른 자이다.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는 그 부족(部族)의 시조(始祖)를 말하는 자이다.
 
황제(黃帝)는 말하자면 중국민족의 공통의 조선(祖先)이었던 것이다. 중국민족은 황제(黃帝)를 민족공동의 조선(祖先)으로 믿고 황제(黃帝)의 자손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째 황제는 헌원(軒轅)이고 그 다음에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이 계속해서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모두 우리 역사 인물인 선조(先祖)들이다.
 
그들은 상고사(上古史)가 없음에서 우리 조상(祖上)들을 가져다가 자기 조상(祖上)이라고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 조상까지 조작하여 왜곡하고 있다. (以上은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17~147面 以下. 貝塚茂樹,‘中國歷史22~27面 參照, 引用하다.)
 
중국 정사(正史)와 사학자들도 인정한 우리 역사다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사학자(詐學者)들은 우리 역사와 영역을 왜곡하고 조작하여 우리의 역사를 말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은 우리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대륙(大陸)에 선주(先住)해서 나라를 세우고 유라시아를 지배한 것을 바로 알고 있다.
 
예컨대 중국인족사(中國民族史)를 쓴 임혜상林惠祥)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중국의 중부 및 남부는 본래 우리묘족(苗族)이 거주하던 지역인데 한족(漢族)이 이곳에 들어온 뒤부터 점차 묘족(苗族)과의 접촉이 이루어졌다.(民族史 第5章 附九黎三苗)”고 했다.
 
그리고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상권(上卷) 2장에서는 주()나라 성왕시기(成王時期)에는 중국영 토가 가장 좁았다고 했다. 수도()의 동쪽에는 래이(萊夷), 모이(牟夷), 개이(介夷), 거이(莒夷) 등 동이족이 거주하고 있었고 중국은 이에 비하면 5분의 1정도 였다고 말하고 있다.
 
, 왕동령(王桐齡)중국통사(中國通史)4쪽에, 4천 년 전에 ....현재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의 땅은 이미 묘족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세운 나라 이름은 구려(九黎)이며 군주의 호칭은 치우(蚩尤)였다고 했다. 상서(尙書)는 이르기를 구려(九黎)는 치우가 이끄는 무리이다.”라고 하였으며, 응소(應召)가 이르기를 치우는 옛 천자(天子)의 호칭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사학자 서량지(徐亮之)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267절치직피((折枝織皮)’의 은문(殷文)에 대한 연구(硏究)’에서 서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과 주()나라가 서기 이전부터 은()나라 주()나라 시대까지 동이족의 활동지역 이었음을 양심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현재의 산동성, 발해연안, 하남성의 동남쪽, 강소성의 서북쪽, 안휘성의 중심지역, 및 북부호남성의 동쪽 변방, 그리고 요동반도와 조선반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이었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역 이었다고 했다. 이 내용들은 중국 정사(正史) 25사에 다 기술된 내용들이다.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硏究’83~85, 이강민,‘대한국고대사’289~299. 參照,引用).
 
그런데 우리나라 강단학파(講壇學派) 중에는 아직도 연구는 뒷전으로 일본이 왜곡한 역사만을 신주(神主)같이 그대로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삼국유사, 삼국사기서화에서 한반도까지라 한 기록을 중국25가 기록을 입증해주고 있는데도 이를 부정하는 자, 학자라 할 수 없다. 이 사서들을 부정하면 광개토대왕비, 창녕진흥왕비에 나온 것 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가!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 아닌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서 더구나 자기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수치(羞恥)의 거짓 역사로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역사를 바로보고 가르치기를 바라진다. 거짓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이며 자랑스러운 민족혼(民族魂)을 죽이는 일이다.
 
전후 중국, 일본사학자들도 반도사관을 버린 자가 많은데 자기나라 역사를 바로 가르치지 않고 왜곡된 역사 바로 세우려고도 않는 것은 한국인이라 할 수 없다. 이는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상고시대부터 구족(九族)12개 다민족국가가 세계로 뻗어간 것을 바로 알고 가르쳐야 한다.
 
주체성을 상실한 사학(史學), 재출발해야 한다
 
우리 기마민족은 서방의 유럽까지 정복하였다. 그리고 세계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거란(契丹)과 여진(女眞)은 무력으로 중원(中原)을 제패(制覇)했으나 철학사상이 없음으로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하고 타민족의 철학사상을 신앙하다가 타민족에 동화되어 멸망했다.
 
중국과 이스라엘도 타민족의 무력(武力)에 패배(敗北)하여 패망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철학사상이 있고 중국은 우리 민족이 전하여준 철학(哲學)이 있음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자주(自主), 자존(自尊)의 정신이 강열하여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고 도리어 우리가 전해준 그 철학사상으로서 정복민족을 지도 흡수함으로서 재기(再起), 갱생(更生)하였다.
 
일본은 소박한 사념(思念)이 있고 체계화(體系化)한 사상이 없기에 유교(儒敎) 불교(佛敎)등 우리가 전하여 준 외래사상을 신앙하였다. 그들은 대륙에서 일보열도로 온 후는 해중원도(海中遠島)에 동 떨어져서 타민족의 압박을 받지 아니하고 성장함으로 오만한 습성이 육성되었다.
 
그들은 800만 이상의 미신(迷信)이 있는 일본이 외래사상을 신앙하면서 신도(神道)라는 자연종교를 더 존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주(自主) 자존(自尊)의 민족의식(民族意識)을 토대(土臺)로 외래사상을 신앙함으로 근대화에 성공 하고 오늘의 번영과 선진국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고유한 철학사상이 없음으로 오늘에 병폐(病弊)를 일으키고 지도이념에 고민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민족(民族)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무력(武力)이 아니고 철학사상(哲學思想)이다. 따라서 철학사상(哲學思想)은 그 민족의 생명력(生命力)인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족은 그 생명력을 회복하는 의식사상적(意識思想的)운동을 전개해야 재기(再起)하고 갱생(更生)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조선조부터 퇴계사상(退溪思想), 실학사상(實學思想), 외래사대사상(外來事大思想)에 구걸함으로 우리의 사상체계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OECD 35개국 가운데 탈 이데올로기(ideology)시대에 아직도 이에 헤매는 나라는 없다. 지난날 조선조 때 세계가 급변하는 세계에 조선 서생(書生)들은 퇴계사상(退溪思想), 실학사상(實學思想), 외래사대사상(外來事大思想)에 구걸함으로 시대변화에 둔감해서 국치를 당했다.
 
오늘날도 정치철학과 법사상은 19세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천민사상(天民思想)과 인간사상(人間思想)과 한국의 고유한 신선사상(神仙思想)으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를 존중한 우리민족이 지금은 황패(荒敗)하여 퇴락(頹落)하고 만 느낌이다.
 
우리는 신선사상(神仙思想)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단군시대에 인간사상(人間思想)이 제창되어 예맥시대(銳麥;濊貊;穢貊時代)[21세제=20분의1세제(稅制)]로서 인간을 사랑하고 고구려가 인간을 존중하여 매혼(賣婚)을 하지 아니하고, 백제가 사형수를 석방하고, 신라의 화랑도(花郞道)가 원수를 사랑하고, 고려(高麗)시대에 부모도 자식의 배례(拜禮)에 반답례(半答禮)하였다.
 
이 사실들은 우리가 인간을 존중하는 독창적(獨創的)인 철학사상(哲學思想)이 있음을 재확인(再確認)하고 확정(確定)할 수 있는 것이었다.(以上 崔仁,‘韓國學講義’,15~21面 參照 引用).
 
지금 우리는 가치관의 변질로 애국심(愛國心)과 민족공동체의식이 실종되어 있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철학사상은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주의로 세계가 바라는 자랑스러운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역사가 뒤엎어있기에서다. 이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바로세우지 않고는 국가도 바로 설 수 없다. 우리가 각성 할 것은 우리역사에 있어서 유교(儒敎)가 대중화 한 것이 5백년을 넘었고 불교(佛敎)가 상류계급에 보급된 것이 1천년을 넘지 못 했다. 그런데 2500년 전에 저술한 논어(論語)2300년 전에 저술한 이아(爾雅)’회남자(淮南子)’한국은 인간을 사랑하는 군자국(君子國)이라찬양한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이제 옛 찬양이 아쉬운 오늘, 역사를 바로 세움이 지상과제(至上課題)임을 다시통감하게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 .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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