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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깃발을 들었던 권력기관 개혁이 1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하자 대통령이 핵심참모들을 모두 모아 놓고 마치 진군의 나팔을 불듯이 ‘강행’을 주문하고 나선 것은 기대도 되지만 우려가 큰 사안이다. 권력에 대한 최고 권력의 의지가 담긴 칼질이란 점에서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이 오히려 걱정을 키운다. 권력기관 개혁의 정점에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이는 일이 가장 우선인 상황인 탓이다.
물론 대통령은 고위공직자수사비리처(공수처) 신설을 통해 자신도 예외없이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당도 대통령 자신이 발목을 잡는 밑그림을 그리는데 대해 야당이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언뜻 보면 최고권력자의 순수한 의지가 정의롭지 못한 장애물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 상황처럼 전개되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 취지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대목이 바로 이 부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수많은 권력이 정의의 이름을 강력히 옹립할 때 오히려 그 전방위 칼로 인해 오만과 불의가 싹텄다. 하물며 독재를 넘어 왕조정권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도 인민(국민)을 위한 정의의 깃발 만큼은 가히 늘 최고였다.
최고권력의 수반이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카드까지 거내들며 사실상 권력기관의 권력을 해부하고 해체하기 위한 ‘돌격 명령’을 내린 것은 동시에 초권력의 탄생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 자신에게 회초리를 들겠다는 각오의 개혁의지는 가장 멋진 그림이다. 누구도 이를 막아서기 힘들다.
우리는 대통령의 순수 의지를 믿고 싶다. 이를 통해 권력기관들의 비대화에 따른 부도덕한 행위나 관행적 비리들이 청산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른바 국민과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적폐가 있다면 당연히 청산돼야 옳다.
하지만 권력이 권력을 제어하면 제어하는 권력의 위상이 현저히 커진다. 공수처가 스스로 그 권력을 제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공수처는 오히려 야당의 주장처럼 옥상옥이 될 뿐만 아니라 초권력을 위한 또 다른 칼잡이나 보호막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정의의 깃발 아래 자해를 각오한 도덕적 칼날들이 권력을 자신의 입맛대로 지휘하는 초권력의 지위로 빠진 역사가 이를 수없이 증거해 왔다.
현 정권의 개혁대상이 국정원, 검찰, 경찰인 것을 보면 이런 우려를 씻지 못한다. 이들 기관은 국민을 위한 최후 보루의 기관들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다. 어쩌다 이들 기관들이 하나같이 최고권력의 도마위 요리감으로 올랐는지 자괴감이 든다.
이들 기관의 위상을 냉정히 살펴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 국정원의 경우만 봐도 국내외 정보수집 기능은 국민과 국가의 사활이 걸린 최고권력의 올바른 정책판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글로벌 정글싸움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국들의 움직임을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용서가 없는 생존게임에서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사안이다. 남북화해 물결이 일고 있지만 대공정보 기능 또한 여전히 손을 놓아서는 안 될 막중한 업무다.
국정원이 최고권력의 눈과 귀가 되는 소중하고 막강한 권한을 내부 권력용으로 칼을 돌려 정치인이나 민간인 등을 사찰했던 비위행위는 응당 잘못됐다. 이를 원천적으로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걱정되는 것은 국정원 본연의 업무가 위축되거나 축소될 우려가 크다는데 있다.
실제로 국정원 전·현직 인사들의 밑바닥 여론을 보면 ‘열심히 일할 의욕을 잃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국정원의 업무특성상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경우가 일상적이어서 통상 애국심이 없으면 업무에 충실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권력에 따라 신분보장이 되지 않거나 사령탑이나 고위직들의 불행한 말로들을 보면 사력을 다해야 할 업무보다 눈치보기가 급급해졌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의 경찰이관에 대해서도 분분하다. 남북관계 화해무드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북한 권부의 속내와 은밀한 내부 동선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해야만 화해모드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정보기능이 우방국일 수록 강한 배경이다.
막연하게 믿으면 사이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나 행동은 국제관계에서 정말 순진하기 이를데 없는 판단이다.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바를 맞추지 못해 화해무드가 깨질 공산을 키운다. 대공 정보기능은 남북화해 무드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최고권력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국정원이 꼭 해야 할 일이다.
검·경의 수사권 조정은 어느정도 합의를 이뤄나가고 있지만 이 또한 앞날이 걱정되는 사안이다. 검찰의 무소불위 단죄권을 분산하자는 취지는 일단 좋다. 하지만 범죄는 잘 보지 않고 권력만 보고 있다. 마치 범죄자나 범죄행위자를 일사분란하게 처벌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에서 배제되는 듯한 양상이다. 단죄는 단호하고 분명해야 한다. 냉정하게 집단지성의 도덕성이 선진국에 이르지 못한 우리의 처지에서 권력이 분산되면 이 기능이 더욱 잘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상이다.
권력과 권력이 서로를 감시·견제하는 시스템이 꼭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범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그 틈을 노려 오히려 단죄를 피해나갈 상황을 더 많이 만들 가능성을 키운다. 특히 지능형 기획 범죄자들이나 권력지향형 조직폭력배와 이들의 뒷배를 타는 권력형 범죄들은 내심 반길 일이기도 하다.
범죄는 단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단죄를 통한 예방효과가 훨씬 중요하다. 범죄에 대해서는 속된 말로 창구 일원화를 통한 강력한 단죄 의지가 중심에 먼저 서 있지 않으면 예방효과가 낮아진다. 단죄 과정이 분산된 루트를 타면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들이 실제 많아진다.
문재인 정부가 척결해야 할 적폐로 내세운 유전무죄(有錢無罪)나 유권무죄(有權無罪)가 더 많아지면 단죄에 따른 예방효과가 그만큼 상쇄된다. 검찰권력 자체의 문제만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검찰권력 존재만으로 효율성 좋게 자동제어되고 있는 범죄 예방효과를 소홀히 보면 안 된다.
권력제어만을 염두에 두면 범죄자들의 악마성을 부추겨 국민을 범죄의 사각지대로 더 내몬다. 국민불안을 키우고 종국에는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범죄 예방효과가 줄어들면 국민 상호간 불신까지 확산된다. 나아가 국론분열까지 조장될 여지를 키운다. 강력한 단죄권력이 여전히 중심을 잡아야 할 이유다.
작금의 권력기관 개혁은 기존 권력의 해부·해체를 통한 권력의 헤쳐모여 식 재편이다. 그 운전대를 잡고 있는 주인공은 권력이 되면 안 된다. 국민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권력재편이 국민을 위한 시스템으로 성숙한다. 역사적 피의 대가까지 거론하면서 나온 개혁은 초권력의 자발적 신고식이라는 평판까지 들린다. 권력이 권력을 재단한 역사를 보면 성공적인 개혁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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