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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플라스틱의 시대에 와 있다. 현대 인류의 삶에서 플라스틱 없는 일상은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플라스틱에 의존해 살고 있다.
‘플라스틱’의 의미는 ‘조형’을 뜻하는 그리스어(plastikos)에서 파생됐다. 성형외과의 영어표현이 ‘플라스틱 서저리(plastic surgery)’인 것도 ‘모양을 만드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184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개발된 플라스틱은 무엇이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기적의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플라스틱은 만들기 쉽고, 가볍고, 무엇보다도 쓰고 버릴 수 있는 소재였다. 쉽게 버릴 수 있는 플라스틱을 본격적으로 사용한지 100년이 채 안된 1997년 태평양에서 한반도의 7배나 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발견됐다.
그리고 지난 6일 영국 가디언은 미세플라스틱 공해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돼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연구팀은 영국의 호수와 강, 미국의 지하수, 중국 양자강, 스페인 해변 등 세계 도처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발견했다.
미세플라스틱(마이크로플라스틱)이란 5mm 이하의 다양한 크기의 플라스틱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버린 플라스틱이 아주 잘게 부서져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자연 속에서 순환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잘게 부서지면서 생기기도 하고 화학섬유의 올이나 자동차 타이어 마모에서 생기기도 한다. 이런 플라스틱 부스러기가 비나 바람에 의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 속과 해수면을 떠다니며 해양 생물을 교란시킨다.
미세플라스틱 뿐 아니라 큰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물의 피해는 최근 간혹 보도되고 있다. 플라스틱 고리에 몸이 낀 채 기형적으로 자란 거북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오인해 뱃속에 플라스틱을 잔뜩 담은 채 죽은 고래의 소식도 들린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배 속에서는 플라스틱 컵 115개, 플라스틱 병 4개, 비닐봉지 25개, 해변용 샌들 2개 등 6kg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생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면 미세플라스틱의 최종 종착지는 인간의 몸이다. 바다 속에 부유하거나 해저에 가라앉은 미세플라스틱을 해저생물이 먹으면 이후 먹이사슬을 통해 최종 소비자인 인간의 몸에 미세플라스틱이 누적된다.
최근 영국의 연구팀 발표에 따르면 연구팀이 조사한 모든 바다 포유생물의 몸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한 해양생물을 먹이로 취한 탓이다. 인간의 몸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가는 경로는 해양생물 뿐 아니다. 연구팀은 유럽, 일본, 러시아 사람들이 지하수나 수돗물을 통해서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현상은 이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이다. 사실 미세플라스틱 자체가 인체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특성 중 하나인 소수성(疏水性)이 문제가 된다. 소수성이란 ‘물과 친하지 않는 성질’인데, 플라스틱이 물과 친하지 않는 바람에 그 표면에 다른 물질이 쉽게 달라붙는다. 따라서 미세플라스틱은 인체에 해로운 미생물을 흡착해 인간의 몸속에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연구팀은 인근 해변에서 미세플라스틱을 채집해 분석한 결과 미세플라스틱 275개 조각에서 400종 이상의 박테리아를 발견했는데, 그 중에는 인체에서 위장염을 일으키거나 상처 감염을 일으키는 등 해로운 박테리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에게 유해한 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많은 플라스틱을 만들어 쓰고 버렸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우선, 플라스틱 제조와 사용을 멈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물질문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플라스틱을 버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금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당장 손끝에 닿아있는 컴퓨터 자판과 휴대전화, 자동차 등 우리가 온통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플라스틱을 포기할 수 없으면 최대한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통해 채찍과 당근 즉, 규제와 보상으로 국민의 생활습관을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화장품·치약 등에 쓰이던 미세한 플라스틱 알갱이(마이크로비즈) 사용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또 지난해 8월에는 테이크아웃이 아닌 카페 매장 내 손님에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제공하면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처음엔 이 규제가 잘 지켜지는 듯 하더니 요즘은 간혹 매장 내 손님에게 일회용 컵을 내주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의식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보상제도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례로 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덴마크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비닐봉지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객이 비닐봉지가 필요하면 약 70원 정도를 지불해 구입하고 나중에 되가져오면 두 배로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필요한 비닐봉지 사용을 막는 대신에 회수해서 재활용하는데 방점을 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6년 기준 98.2kg으로 세계 1위로 발표됐다. 전 국민이 버리는 플라스틱 양은 과연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플라스틱은 만드는데 5초, 쓰는데 5분, 분해되는데 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플라스틱이 지구상에 쌓여 있고 앞으로도 수 백 년 동안은 그 위에 고스란히 쌓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재난처럼 몰려온 미세먼지 속에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미세먼지는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틀어서 일시적으로나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몸으로 침투한다. 너무 늦기 전에 개인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연대해서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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