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갉아먹는 투기자본 주의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한국경제 갉아먹는 투기자본 주의보

스카이데일리 칼럼

임현범 기자페이지 + 입력 2019-03-25 00:07:33

올해 주주총회에선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이 유독 활발했다. 국내 자본시장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연기금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선다고 밝힌 데 이어 엘리엇 등 해외 행동주의 펀드까지 가세해 목소리를 높고 있는 탓이다.

대부분 행동주의 펀드들이 요구하는 사항은 비슷하다. 배당 확대와 이사 선임 등의 요구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차이가 있는 국내 기업들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목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정부마저 재벌개혁을 외치며 연기금과 행동주의 펀드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들 행동주의 펀드들과 연기금의 주주제안이 과연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여부다. 이들은 모두 기업 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단기간 주가를 끌어올려 시세차익을 내고 ‘먹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기대보단 우려가 앞선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을 향해 공세를 펼친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엘리엇은 올해 초 주주제안을 통해 현대차에 주당 2만1967원의 배당을 요구했다. 이를 배당금으로 환산하면 총 5조8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6450억 원의 4배에 가까운 규모다.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변화하는 산업환경에서 적극적인 투자에 임해야하는 회사 입장에서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는 엘리엇이 과연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요구인지 의심드는 대목일 수 밖에 없다. 이날 주총장에서도 엘리엇 측은 “주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요구”라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엇의 경우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합병비율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적으로 대량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엘리엇이 내세운 명분은 기업 가치 제고지만 결국 목표는 시세 차익에 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간섭은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개입한 지 1년만에 전년 대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41%, 83.6% 급감했다. 고용은 18.1%, 투자는 무려 23.8% 줄었다.

특히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상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개입은 단순히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제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행동주의 펀드가 노리는 건 대부분 대기업 그룹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그룹이 차지하는 전체 수출의 비중이 3분의 2에 달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무리한 경영간섭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질 경우 수출시장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우리나라 주주들은 명분만 앞세운 행동주의 펀드의 무리한 요구를 가려낼 수 있을 정도로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재벌개혁을 외치며 대기업 그룹을 상대로 무차별 규제와 압박을 일삼기 보단 경영진이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업소유에 대한 방어수단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발목까지 잡진 말아야 한다.

임현범 hby6609@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