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귀농, 『자연과 함께 한 1년』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이정일의 문학푸드

먹는 방식이 곧 세계가 움직이는 삶의 방식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5-05 21:22:37

미국의 소설가 바바라 킹솔버가 있다.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 문학수업 필독서로 선정된 소설 『포이즌우드 바이블』을 썼다. 킹솔버는 유명 작가이지만 애리조나 주의 큰 도시에서 살다가 3천 킬로나 떨어진 애팔래치아 산 인근으로 귀농을 했다. 처음으로 흙을 밟고 채소를 키우면서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이 많아 이를 정리하여 책을 냈다. 식물의 생활사에 눈을 뜨는 과정을 논픽션 『자연과 함께 한 1년』에 담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을 다닌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주어지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은 다르다. 킹솔버의 이야기는 귀농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첫 시작은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는 편의점으로 시작한다. 도시에 살면서 소음과 인위적인 풍경에 시달리지만 막상 도시를 떠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가를. 그 아쉬움에 작가는 작별인사를 길게 한다.

음식을 보면 삶이 보인다

시골로 오면서 작가 킹솔버가 새삼스레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먹는 방식이 이 세계가 움직이는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선 뷔페가 익숙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겐 이질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의 머릿속엔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이 낯설다. 프랑스인들에게 음식이란 한 끼를 때우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독특하고 풍부한 음식문화가 발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모든 먹을거리를 슈퍼마켓에서 해결한다. 요리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 한 치즈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킹솔버도 귀농하면서 처음 치즈를 만들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 이유를 실력부족으로 여겼지만 알고 보니 원인은 우유에 있었다. 치즈를 만들려면 무균질 우유를 써야 했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쓴 유제품들은 초고온 살균을 한 제품이다. 매장에서 파는 우유는 살균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오래두고 팔거나 장거리 운송을 위해서이다.

귀농의 그늘

우리는 삶의 퍼즐을 맞추고 살지만 직장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한번쯤 귀농을 꿈꾼다. 「자연인이 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것은 그만큼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나 경쟁으로 숨이 차다면 귀농도 답일 수 있다. 칼럼니스트 켈시 티머먼이 있다. 건설 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철학은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오자 40년간 일으켜 세운 사업이 반나절 만에 경매로 날아갔다.

인생 2막을 꿈꾸며 귀농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도시생활에 지쳐 귀농했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실패하는 원인은 여럿일 것이다. 밭에는 소음도 없고 전화도 없고 경쟁도 없다. 하지만 부모는 일정한 소득이 필요하고 아이들은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하다. 생활의 불편은 어느 정도 각오한 것이지만 소박하게 살려고 선택한 결정으로 빚더미에 오른다. 여기에 텃세까지 더해지면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런 아픔은 시골 토박이들도 겪는다. 1000원짜리 하나 만들어 팔 때 농부들의 몫은 150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가공업자, 판매업자, 운송업자에게 돌아간다. 토박이건 귀농자건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대형마트에 들어가면 3만개쯤 되는 제품들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려고 애쓴다. 이 경쟁의 링에서 판매자의 개성은 제품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도 모를 물건을 그저 싸다는 이유로 산다.

소비의 배신

브랜드 네임과 가격 면에서 유기농 식품은 밀리기 마련이다. 유기농이라 해도 더 싼 가격에 과일과 야채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재배농이 이긴다. 그런 재배농은 규모가 큰 사업체일 확률이 높다. 제품이든 식품이든 다 땀을 흘려 만들고 키웠을 테지만 대개는 사이즈가 큰 기업이 승리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먹는 방식이 이 세계가 움직이는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품이든 유기농이든 그저 싸다는 이유 하나로 소비자가 선택을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삶이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보다 더 실제적이고 더 미묘하다. 우리가 사는 값싼 상품이나 식품 뒤에는 땀도 있지만 상심과 배반이 깃들여 있기도 하다. 소비자가 이것을 눈치 챌 방법은 많지 않지만 가끔씩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들도 살펴보자. 먹는 방식이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하듯, 사는 방식도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한다.

이정일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