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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동부여 대소왕은 고주몽보다 형이었을까

대소왕, 사망연도 기록 오기 아닐시 주몽보다 어릴 수 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7-05 23:31:15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고구리사초략」에는 “광명(유리명왕) 13년(B.C 7) 동부여에서 금와(金蛙) 왕이 죽고 아들 대소(帶素)가 즉위했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삼국사기」에는 대소가 언제 부여의 왕이 됐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두 사서 모두 대소가 동부여의 왕이 되자 고구리와 사이가 안 좋아져 서로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리에 무척이나 적대적이었던 대소 왕의 나이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금와 왕의 일곱 아들의 재주가 모두 주몽을 따르지 못했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주몽은 사람이 낳지도 않은데다가 인물됨이 무척 용맹스러우니 빨리 없애버리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고 기록되어있어 대소는 고주몽의 큰 형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동부여가 광명제 시절 수차례 침략을 했고 대무신제 5년(22) 2월에는 고구리 군대가 동부여의 남쪽으로 진군 중 동부여에 있는 군사란 군사는 모두 동원한 대소 왕이 기습을 시도하다가 진창에 빠졌다. 이를 본 괴유가 공격해 들어가 대소의 목을 베었다고 「삼국사기」와 「태백일사」에 기록도 있다. 그런데 「고구리사초략」에는 대무신제 5년이 서기 32년으로 기록돼 있다.
 
▲ 삼국사기와 고구리사초략의 재위기간 차이 [표=필자 제공]
 
위 두 기록으로 동부여 대소 왕의 나이를 추정해보자. 먼저 대소는 22년(삼국사기 기준)에 전사했으나 출생년도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나이 산정이 불가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주몽은 건국 19년 만에 나이 40세에 죽었으니 B.C 58년생이다. 주몽이 대소가 죽은 22년이면 80세다. 거기에 대소가 주몽의 큰 형님뻘이니 대소는 약 85세~90세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많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친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괴유의 칼에 목이 잘린 동부여의 왕은 대소가 아니라 분명 다른 인물이거나 아니면 대소가 고주몽보다 나이가 적어야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대소가 죽은 년도는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부여기」에는 고주몽이 B.C 79년생이고 「가섭원부여기」에는 금와 왕이 B.C 77년생으로 서로 비슷한 나이였다. B.C 47년 30세에 등극한 금와 왕은 41년간 재위하다 B.C 7년에 죽자 아들 대소가 재위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면 대소가 주몽의 아들뻘이 된다. 대소가 22년에 괴유에게 죽는다는 기록이 오기가 아닐 수도 있다.
 
▲ MBC 역사드라마 ‘주몽’에서의 대소와 주몽 [사진=MBC, 필자 제공]
 
삼국사기와 다른 고구리사초략의 내용
 
「삼국사기」와 「가섭원부여기」에는 14년(B.C 6)에 대소가 인질을 청하니 태자 도절(都切)을 보내려했으나 도절이 두려워하며 가지 않자 대소가 화를 냈다는 기록 이후 도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반면 「고구리사초략」에는 “도근(都㘦)이 책성(동부여의 도읍)으로 가서 대소의 딸과 혼인했다”고 다르게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후 대소가 군사 5만을 이끌고 사위의 나라인 고구리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고구리사초략」에는 20년(1) 신유 정월 도근 태자가 책성에서 돌아오다가 죽자 대소 왕은 이를 부끄러워하며 도근의 시신을 돌려보내면서 자기 딸은 데리고 있으려고 했더니 도근이 슬퍼하며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광명제 원년(B.C 19)에 태어난 도근은 소서노의 이전 지아비인 구태(仇台)의 딸인 아이(阿爾)비의 소생이다. 그녀는 광명 13년(B.C 7)에 춘추 서른의 나이로 일찍 죽는다.
 
광명제 26년(7) 정묘년에 대소의 형제 여덟이 보위를 다투면서 골육상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장남 대소가 보위에 오른다. 33년(14) 갑술 10월에 대불(帶弗)이 대소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42년(23) 계미 11월 대불이 쳐들어왔기에 학반령 아래에서 그 군대를 크게 쳐부쉈다는 기록이 있다.
 
대무 5년(32) 임진 2월 책성 남쪽으로 진군해 높은 언덕에 진영을 차렸는데 사방이 진창이라 고구리 군사들과 병마들이 모두 갇혔다. 고루(高婁) 태자의 군대가 대불과 맞붙어 싸우던 중 태자가 선두에서 전투를 독려하다가 흐르는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자 임금이 괴유를 불러 태자를 구하라고 명했다.
 
▲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 괴유의 공격 장면 [사진=KBS, 필자 제공]
 
괴유가 칼을 빼들고 크게 고함지르며 진창을 넘어 들어가 대불의 군대를 무찌르자 이에 용기백배한 군사들이 적의 본진을 공격해 대불을 붙잡아 목을 쳤다. 그러자 살아남은 동부여의 군사들이 놀라서 무너졌다. 대만(帶万)의 군대 역시 아수라장에 휩쓸려 일단은 물러났다가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고구리 군을 공격했다.
 
동부여 군사들은 비록 자신들의 왕을 잃고는 잠시 기세가 꺾였지만 굴복하지 않고 울부짖으며 죽기로 싸워 대무신제가 이끄는 고구리 군사들을 포위했다. 군량마저 떨어져 굶주리게 되니 대무신제가 하늘에 빌어 일주일간 짙은 안개가 끼었을 때 들풀로 만든 허수아비를 군영 안팎에 세워놓아 마치 무기를 든 군사처럼 위장하고는 밤에 몰래 빠져나갔다.
 
하늘의 도움으로 잠시 진창이 얼어붙는 바람에 포위망을 벗어나오긴 했지만 캄캄한 밤중에 신마와 큰 솥을 잃어버린 채로 고구리로 돌아왔으니 병사들이 굶주려 기진맥진하기에 들짐승을 잡아서 먹였다. 이윽고 북도(국내성)로 돌아와서는 장졸들을 실컷 먹고 마시게 했다.
 
대무신제는 죽은 자들을 조문하고 부상자들을 살피면서 그 부모들을 위로하며 “짐이 부덕해 동부여를 가벼이 보고 섣불리 치려했다가 대불 왕은 가까스로 죽였으나 그 나라를 멸하지도 못한 채 우리 군사들만 많이 잃었소이다. 이게 다 짐의 잘못이오”라고 슬퍼했더니 온 나라 백성들이 황상의 덕과 의에 감복해 모두들 “나라에 몸을 바치는 것은 고구리 백성들의 본분입니다”라고 화답했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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