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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돌풍’ 미국 억만장자 로스 페로 별세

두 차례 미국 대선 출마한 원조 아웃사이더

임보련기자(bllim@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7-11 1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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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지난 1992년 5월5일 대선출정 시기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내 입을 주목하라”고 농담하며 웃고 있다. 페로는 9일(현지시간)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사진)가 텍사스주 댈러스의 자택에서 8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CNN 방송은 9일(현지시간) 페로가 최근 5개월간 백혈병으로 투병생활 끝에 이날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페로는 1962년 단돈 1000달러로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EDS)를 창업한 뒤 대형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로 키워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IBM 판매사원으로 출발한 그는 정보통신기술회사인 페로시스템을 창립해 지난 2009년 델 컴퓨터에 39억달러(약 4조6070억원)에 매각하며 억만장자가 됐다.
 
그는 ‘제 3의 후보’로서 1992년과 1996년 두 차례 대선 출마를 통해 미 정치권 지형을 뒤흔든 아웃사이더로도 유명하다. 처음 출마한 1992년 대선 당시 그는 18.9%를 얻으며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2인 구도를 흔들며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다. 워싱턴포스트(WP)는 “로스 페로가 득표한 약 19% 지지율은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27%를 득표한 이후로는 무소속 또는 제3의 후보로서 최고 득표율”이라고 밝혔다. ‘페로 돌풍’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가 나뉘는 바람에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진보 표가 집결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후 페로는 개혁당을 만들어 1996년 대선에 재도전했지만 10% 미만의 낮은 득표에 그쳤다.
 
텍사스 출신 미 해군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9년 비행기를 동원해 북베트남에 갇혀 있는 미군 포로들에게 음식과 의료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미국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뉴욕타임스(NYT)는 평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페로는 1974년 국방부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시기에 현지에서 EDS 직원 두 명이 인질로 잡히자 사비를 들여 전직 군인 등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동원, 일명 ‘핫풋 작전’을 수행해 테헤란에 갇혀 있는 그의 직원 2명과 수천 명의 정치범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페로 돌풍’의 피해자였던 부시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와 미국은 강한 애국자를 잃었다. 로스 페로는 기업가 정신과 미국적 신념의 전형”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임보련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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