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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 샐러리맨 도전해 450명 회사 키웠어요”

창업주 같은 근성 샐러리맨 19년 조용준씨(태웅로직스 상무)

김형철기자(humbl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3-03-07 1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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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준 상무(태웅로직스) ⓒ스카이데일리
“남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 없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19년 샐러리맨으로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인정받고 일해 왔던 것은 낙천적인 성격과 조직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래됨이 묻어나는 서류가방과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태웅로직스 조용준(46) 상무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지난 1996년 태웅로직스에 입사 할 당시 6명 밖에 안 되는 소규모 회사에서 지금의 450명 규모로 성장한 중견회사의 임원이 된 그는 자신을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겸연쩍어 했다.
 
그는 “학창시절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자신이 이룬 크고 작은 성취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학업을 소홀이 했던 건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진로 계획은 없었어요. 그래서일까 주변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관심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사실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하며 스포츠기자가 되고 싶어 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괜찮은 광고회사에도 합격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역업 직종으로 자리를 잡을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명확한 목적의식과 승부욕이 필요했어요”
 
“저는 천성적으로 게을러요. 그래서 명확한 목적의식과 승부욕이 필요했지요. 남들은 명사들의 조언이나 독서를 통해 또는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좋은 습관을 체득한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달랐어요”
 
 ▲ 지난 1996년 설립된 태웅로직스는 국제물류주선 전문업체다. 전 세계를 상대로 육상, 해상, 항공운송을 하고 있다. 사진은 조 상무가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취재원 제공>

그는 첫 직장생활과 동시에 명확한 목적의식과 승부욕이 자신도 모르게 생겼다고 한다.
 
사실 그는 강원도 시골 태생으로 지방 국립대를 다녔기에 치열하게 사는 것과는 멀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상경해서 첫 직장 생활을 했을 때 문화 충격을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을 것이다.
 
해운업이나 무역업이라는 직종의 존재 유무도 몰랐다던 그는 직장 생활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진 않았다고 회고했다.
 
조 상무는 한번 선택하면 우직하게 끝까지 해본다는 근성이 있었기에 19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인정받는 샐러리맨이 될 수 있었다.
 
지각 많이 하는 빈틈 많지만 개방·소통 중시
 
그는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냉철한 분석가도 아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회사에 지각도 잘하는 빈틈 많은 상사였다.
 

 ▲ 조 상무는 창업자 같은 정신으로 전 세계 17곳의 해외지사를 개척하고 누비며 고객들을 찾아 다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창업 당시 6명이던 회사가 450명(본사 150명, 지사 300명)으로 커진 중심에 그의 구슬땀이 있었다.  사진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당시 모습.

그런 그가 어떻게 남들에게 인정받는 임원이 됐을까 궁금했다.
 
“저는 똑똑한 상사라기보다는 지각도 잘하는 빈틈 많은 사람이었어요. 다만 저는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했죠. 나의 능력에 의지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활용했었죠”
 
조 상무는 채용·면접에서도 다양성을 중시했다. 그는 채용·면접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책임감은 있었지만 내성적이고 자심감도 부족한 지원자가 있었어요. 저는 기존 영업부 팀에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선발하려 했지만 나머지 면접관 모두가 반대를 했었죠. 영업직에 적합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이유에서죠. 그러나 저는 그를 영업부 팀원으로 선발했어요. 제가 중시하는 다양성 때문이었는데 후에 그는 우수한 영업사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샐러리맨 인생에서 성공적인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업부 직원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거래처와의 접대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체질이라 아직도 접대 자리에선 늘 곤욕스럽다고 한다.
 
“영업부에 있으면 술자리가 많아요. 특히 거래처와 고객들을 만나서 자주 접대를 하다보면 술을 자주 마셔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만 마시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 신뢰가 더 쌓이더라고요”
 
회사·가정에서 인정받는 길 살아 온 ‘진솔함’
 
조 상무는 사람과의 관계를 커뮤니케이션 교육이나 경영학에서 말하는 인사관리, 노무관리에 해결책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는 진솔한 태도에서 형성된다는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있는 듯 했다.
 

 ▲ 샐러리맨은 창업자와 다르다는 생각을 갖는 샐러리맨이 많지만 조 상무는 업무에 관한한 샐러리맨이 아닌 오너로 임했다. 이런 그의 적극적인 생각으로 해외에 그를 알고 신뢰하는 지인이자 고객들이 매우 많다. 사진은 모잠비크(위)에서 파트너와  화물운송 협의를 하는 장면 및 현지 협력회사 직원들과 찍은 사진.

“회사 조직을 운영하는데 인사관리, 노무관리 교육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직원들을 이해하려는 진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건 수고했다고 등 한번 두드려 주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조 상무는 가정에서는 어떠한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회사에서와 동일하게 진솔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잠시 머뭇거렸냐고 묻는 질문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서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크게 잘해 준게 없는 것 같아요. 집안 일은 주로 아내가 도맡아 하는데 그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걸렸어요. 그리고 아이들하고는 평소에 잘 놀아주지 못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여행은 참 많이 다녔어요”
 
아내와 아이들에게 특별히 감동받을 만큼 잘해주진 못했지만 조 상무는 과장하지 않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진솔하게 자주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년이면 조 상무는 20년째 한 무역회사의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는 셈이다. 창업주 내지 오너 이상의 애정으로 회사를 키운 샐러리맨 인생이었다.
 
 ▲ 조 상무는 힘들었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회사의 업무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얘기하기를 주저했지만 눈물나는 고통의 순간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대표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생각하는 조 상무는 평범한 샐러리맨도 성실하게 살면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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