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소련과 일본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체제 경쟁서 무너진 소련, 경제 전쟁서 무너진 일본 사례 고찰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8-24 12:50:38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힘에 부쳐 보인다. 중국 내부에서조차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크게 탄력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워낙 서슬이 퍼렇기 때문이다.

등소평의 지침대로 중국은 지난 1980년대 말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외교의 기본 철칙이다. 중국의 역대 정권들은 이에 기초해 발톱을 드러내다가도 빠르게 이를 감추는 행동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분위기가 급선회됐다. 미국 주도 패권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시는 상대가 비교적 온건한 ‘오바마’였지만 트럼프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트럼프 주변에 강경 매파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중국의 야심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그 서막이 바로 미‑중 무역 전쟁이다. 우선 경제적으로 중국을 흔들면서 점진적으로 고립화시켜 나가겠다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세계 경제에 주름살이 가더라도 미국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고삐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하는 중국의 버티기 작전도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국방력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미국에 절대적으로 열세이지만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주의 체제가 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보다 버티는 쪽에서는 강점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여론의 향배에 대해 신경을 덜 쓰도 되는 것 또한 유리하다. 결국 시간은 중국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이라도 한다면 앞으로 5년 동안 미국과의 어려운 싸움을 피하기가 어렵다. 중국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콩 사태에서 보듯이 내부의 동요가 심각하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민영기업에 대한 압박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과거와 같지 않게 식어가고 있다. 미국과의 경쟁으로 인한 출혈이 심해질수록 내부의 잡음이 더 커질 공산이 크다. 외부와 내부의 악재들과 싸워야하는 중국 체제의 험난한 여정이 선명하게 눈이 띈다.

10여 년 전부터 중국의 정책 브레인들이나 싱크 탱크들이 지속적으로 고찰해 나오고 것들이 있다.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무너진 구(舊) 소련과 경제 전쟁에서 밀려난 일본의 사례에 대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중국의 전략을 만든다.

이를 통해 미국의 공격을 피해나가는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일부 양보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강구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냉전 기간 중 소련이 미국과 소모적인 군비 경쟁 등 무리한 체제 전쟁을 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을 익히 안다. 미국에 덤벼들면서도 가끔 꼬리를 내리는 것은 소련같이 당하지 않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소련의 GDP가 자국의 40% 수준에 달할 때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의 70%에 근접한다.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한 2010년의 중국의 GDP는 미국의 41%에 달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 중국을 손 볼 겨를이 없었고 결국 판을 여기까지 끌고 온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미·중의 각본, 시나리오 등을 읽어야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것도 중국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에 대한 보복 관세 부과, 첨단 기술 접근 차단 등을 통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중국의 포지션을 약화시킴으로써 경제적 파워를 꺾어 놓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이는 중국에 현실적으로 타격을 주고 있기도 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서점 가에서는 중국 경제의 위기론에 대한 책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히 중국이 제2의 일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서슴지 않을 정도다. 부동산 버블, 산업 공급과잉, 부채 증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등 당시 1990년대 초의 일본 경제 상황이 현재의 중국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85년 미국 등 선진국들과 체결한 플라자 합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엔화 가치가 2배로 급등하면서 일본 상품의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제조업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GDP 규모는 미국의 약 45%에 달했다. 결국 환율로 일본이 백기를 들도록 유도했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관세→기술→환율로 연결되고 있는 시나리오를 간파하고 있다. 환율 방어는 중국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와 다름이 없다. 환율 전쟁에서 무너질 경우 일본과 같이 중국의 제조업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중국에 들어가 있는 기업의 탈(脫) 중국 속도가 더 빨라지고,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 제조 2025’도 일시에 물거품이 된다. 제2의 소련 혹은 일본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국의 모습이 역력하다.

현재의 중국의 경제력이나 구조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던 소련과 일본과 다르다는 것을 애써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국의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점에서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 쉽지 않다. 경제적 압박으로 약발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면 외교 혹은 군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다각적 전술이 단계적으로 동원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과 중국이 공히 사활을 걸고 있는 치킨 게임이라는 점에서 치열한 수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이들의 각본을 미리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김상철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