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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 삼국사 산책

백제 건국의 주인공, 온조와 비류 그리고 구태

백제 시조신화 사실성에 담긴 역사의 굴절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09-15 18:20:48

▲ 정재수 작가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시조신화는 신성성(神聖性)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시조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북방계통의 천손신화와 알에서 태어나는 남방계통의 난생신화로 분류한다. 특히 소수의 북방유목민이 다수의 남방농경민을 지배하면서 천손신화와 난생신화가 적절히 결합한다. 삼국의 경우,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와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다. 피지배층인 농경민을 배려한 신화체계의 구성이다. 그러나 백제는 신성성이 배제된 사실성(事實性)이 강한 시조신화이다.
 
백제시조는 온조와 비류 그리고 구태다. 온조와 비류는 형제로서 계통이 같고, 구태는 두 사람과 전혀 다른 계통이다.
 
<삼국사기> 온조왕 편의 백제 시조(건국)신화는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된다. 첫째 단락은 시조 온조왕 기록이며, 둘째 단락은 시조 비류왕 기록이다. 두 기록은 백제 건국이 동부여에서 홀본(졸본)국으로 내려온 추모가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과 두 시조가 형제라는 점이 같다. ‘시조형제신화’이다. 다만 온조왕 기록은 두 시조의 생부를 추모로, 비류왕 기록은 우태로 설정한다. 어머니는 홀본국 왕녀 소서노이다. <삼국사기>는 온조왕을 시조로 확정한다. 그래서 ‘정설’이다. 비류왕은 ‘일설’이라 하여 ‘이설’로 취급한다. 셋째 단락은 중국사서를 인용한 시조 구태왕 기록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편찬자는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내놓는다. 한마디로 구태왕은 시조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투다.
 
온조와 비류는 고구려 계통
 
온조와 비류는 3살 터울이다. 비류가 형이고 온조가 동생이다. 또한 두 시조의 생부는 우태다. 추모는 양부이다. 다만 <삼국사기>가 추모를 생부로 설정한 점은 백제의 기원을 의도적으로 고구려 계통으로 묶어두기 위한 장치로 본다.
 
참고로 우태는 소서노의 전남편으로 동부여 시조 해부루의 서손(금와왕 서자)이다 소서노는 추모와 정략결혼하며 역사기록에서 자취를 감춘다. <삼국사기>는 우태가 죽어 소서노가 재가한 것으로 설명하나, <유기추모경>은 소서노가 살아있는 우태를 버리고 추모를 선택한 것으로 나온다. 우태는 역사기록의 희생양이다.
 
그렇다면 형 비류가 아닌 동생 온조를 백제시조로 확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온조가 정착한 하남위례성에 답이 있다. 온조는 비류와 함께 미추홀로 남하하여 2차례 이동(분립)과정을 겪는다. 1차는 마한으로 땅을 얻어 미추홀에서 직산(충남천안)위례성으로 이동하고, 2차는 어머니 소서노의 죽음을 계기로 직산위례성에서 하남(경기광주)위례성으로 이동한다. 하남위례성은 초기백제의 도성으로 온조의 세력기반이다. 온조의 후손집단 역시 하남위례성이 본거지다. 따라서 온조의 시조 확정은 당연한 수순이며 절차다. 만약 미추홀이 초기백제의 정착지였다면 비류가 최종시조로 확정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시조신화는 온조왕의 백제 건국역사를 담고 있다.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한산에 올라 살만한 곳을 찾고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십제를 건국하며 형 비류가 죽어 미추홀 백성을 흡수한 내용 등이다 [출처=우정사업본부]
 
구태는 부여 계통
 
구태는 <삼국사기>가 중국사서 <북사>, <수서>를 인용하여 설명한 백제시조이다. ‘동명(東明)의 후손 구태(仇台)가 있는데 어질고 신의가 있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漢)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그의 딸을 아내로 주어 드디어 동쪽 나라의 강국이 되었다.(東明之後有 仇台 篤於仁信 初立國于帶方故地 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 遂爲東夷强國)’ 특히 <삼국지>[위서]는 구태를 후한(後漢)말 중국대륙에서 활동한 위구태(尉仇台)로 소개한다.
  
<고구려사략>에 따르면, 위구태는 고구려 태조왕(6대)에게 패해 요서지역에서 서자몽(베이징 북쪽)으로 본거지를 옮겨 서부여(西扶餘)를 창업한다. 위구태는 서부여의 건국시조이다. 다만 부여왕족 출신인 위구태가 처음 어떤 사유로 요서지역에 뿌리를 내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부에서는 온조와 비류의 생부인 우태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후 위구태의 후손집단은 북방유목민족인 선비족에게 밀려 다시금 서자몽에서 요서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때 두 세력집단으로 분화한다. 대방(帶方-하북성 노룡현)세력과 녹산(鹿山-하북성 건평현)세력이다. 이 중 대방세력은 바다를 건너와 한반도 서남부지방을 장악한다. 특히 백제 국호는 이들 대방세력의 이동과 관계가 깊다. 백제는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100개 가(家)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줄임말에서 유래한다. 녹산세력은 요서지역에 잔류하며 서부여를 계승한다.
 
그러나 녹산세력은 대방세력에게 밀려 전연(前燕-모용황)에 흡수되며 멸망한다. 특히 한반도 대방세력은 자신들의 옛 본거지인 요서지역 대방 땅에 ‘요서백제군’을 설치하며, 또한 녹산세력(서부여)을 전연으로 밀치고 ‘진평백제군’을 추가로 설치한다.
 
▲ 부여기마족은 위구태의 서부여가 기원이다. 서부여는 대방세력과 녹산세력으로 분화하며, 대방세력은 바다건너 한반도 서남부지방으로 이동하여 백제 부여씨왕조를 세운다. 그리고 옛 본거지인 대방지역에 요서백제군을 설치하며, 또한 녹산세력을 밀쳐내고 진평백제군을 추가로 설치한다. 소위 ‘대륙백제’로 이해되는 요서지역 ‘백제군’의 실체다 [출처=<백제역사의 통곡>(논형출판, 2018)]
    
그렇다면 대방세력과 백제는 어떤 관계일까?
 
훗날 한반도 대방세력(부여백제)은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처참히 깨져 일본열도로 망명한다. <광개토왕릉비>에 상세히 나온다. 또한 이들 한반도 대방세력은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가 주창한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의 주인공이다. 4세기 중후반 퉁구스계통의 북방기마민족이 일본열도로 건너와 오사카일대에 야마토(大倭)를 건국한 주체세력이다. 참고로 이를 좀 더 보완한 서양학자가 있다.
 
레드야드(Gary Ledyard)와 코벨(Jon Carter Covell)이다. 두 사람은 이들 북방기마민족을 ‘대륙의 부여 전사(戰士)들’로 이해하고, 그 실체는 ‘4세기 중후반 한반도 서남부를 거쳐 일본열도를 점령한 백제세력’으로 규정한다. 바로 한반도 대방세력은 오늘날 만세일계 일본 천왕가의 본류인 부여기마족이다.
 
특히 한반도 대방세력 중 일부는 일본열도로 건너가지 않고 잔류하며, 이후 백제왕실을 아예 접수한다. 백제 부여씨왕조를 개창한 비유왕(20대)이다. 이로서 백제는 온조계열의 해씨왕조를 마감하고 구태계열의 부여씨왕조가 들어선다. 물론 부여씨왕조는 백제 멸망 때까지 명맥을 유지한다. 이런 까닭으로 구태는 세 번째 시조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시조신화는 승자가 정립한 진실을 선택
 
<삼국사기> 온조왕 편의 건국신화기록 말미이다. ‘온조가 처음 올 때 백성(百姓)이 즐겨 따라왔기에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 온조의 조상은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성씨를 부여(扶餘)로 하였다.(後以來時百姓樂從 改號百濟 其世系與高句麗 同出扶餘 故以扶餘爲氏)’ <삼국사기>는 백제(百濟) 국호의 유래를 ‘백성낙종(百姓樂從)’으로 설명한다. 백성은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용어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설정은 후대에 정리된 기록이다. 또한 부여씨는 온조와 관계가 없다. 온조는 해(解)씨이다. 국호 백제(百濟)와 성씨 부여(扶餘)씨 기록은 세 번째 시조 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다만 <삼국사기>는 온조를 시조로 확정하면서 구태 기록을 온조 기록에 편입시킨다.
  
백제 시조신화는 고구려와 신라의 시조신화와 달리 사실성이 매우 강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든가 또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등 신성성이 강한 천손, 난생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백제 시조신화에는 적잖은 역사가 굴절되어 있다. 시조신화는 실재한 역사적 사실보다 승자가 정립한 진실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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