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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은 지난달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만여명 증가한 것을 두고 “고용회복세가 뚜렷하다. 이제 (소득주도성장) 정책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취업자 수 증가폭 하나를 놓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변되는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내는 양 으쓱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6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욱 적극 추진하겠다"며 황 수석의 전날 발언을 지원 사격했다.
수치로만 따지면 지난 8월 취업자 수는 29개월 만에 가장 많이 늘기는 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함정이 있다. 늘어난 취업자 수의 87%가 60대 이상 고령자다. 정부가 공공근로 등에 재정을 쏟아 부은 결과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이제 다 안다. 오히려 경제활동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30~40대 취업자는 13만6000명 감소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1년전 최악의 고용상황에서 나온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떤 나라가 전쟁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전쟁 후 10% 성장하면서 경제가 제대로 돌아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아 대통령의 ‘경제 교사’ 역할을 했던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도 황 수석의 발언 후 페이스북에 “(정부가) 지난해 5월 이후 통계를 선별적으로 이용해 대국민 홍보용으로 활용하고는 했다”면서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런데 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듯해서 답답하다”고 개탄했다.
주변의 아우성이 들릴 텐데 이 정권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하는 것을 보면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눈곱만치도 없는 듯하다. 오히려 김 석좌교수의 지적처럼 이 정권은 틈만 나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통계치를 가지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4월 통계청은 새 소득분배 지표로 뜬금없이 소득 상위 10% 인구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40% 인구의 소득 점유율로 나눈 값인 ‘팔마비율’을 발표했다. 이 통계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6개국 중 30위에 그치며 분배 수준이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주장해온 우리나라의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뒷받침하기 위함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선진국인 미국,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낮다. 결코 우리나라가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분배 수준이 최악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수치가 낮을수록 소득 양극화가 덜 함을 의미하는 팔마비율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74배에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42배까지 떨어졌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7년 1.44배로 소폭 올라갔지만 전체적으로 하락세다. 특히 이전 정권에서는 소득 불평등이 계속 개선돼 왔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에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것처럼 주장하며 이런 철면피(鐵面皮)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광두 석좌교수는 이를 놓고 “요즈음 흔히 '활용되는 말'대로 실정법상 범법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지식을 활용한 지능적 사기일 수는 있다”며 사기 수준으로 비유했다.
지난해 여름,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은 연말쯤 소주성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말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11월에는 내년(2019년)이 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는 소주성으로 인해 소비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경기가 좋아지고 소득의 양극화도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달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1분위(소득 최하위계층)와 5분위(소득 최상위계층)의 소득격차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양극화가 역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통신사인 ‘뉴스1’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가 올해 2분기에 1990년대말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며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소득의 분배가 엉망인 셈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진 것일까.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소주성의 주축인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고용악화를 초래했고, 오히려 이들의 소득의 감소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바로 소주성이라는 얘기다.
지난 7월12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약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됐다. 동결을 기대했던 영세 자영업자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들을 달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을 겨냥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1만원으로 올리지 못한 것이 소주성 정책 폐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지율과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두 달이 지난 현 시점, 문재인 정권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을 내세워 자신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소주성의 늪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작금의 상황은 심각하다.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밀려오며 암울하기만 하다. 조선일보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R의 공포’를 인식하고 각 부서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 작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 글로벌 경제 악재를 고려해 기존의 비상대책(컨틴전시 플랜)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수정·보완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권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라도 빨리 소주성을 완전 폐기해야한다. 오기와 아집을 버리고 시장에 시그널을 줘야 우리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다. 그것만이 문재인 정권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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