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과학화 전투훈련의 교과서 ‘엔더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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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이 현실을 이끌어가는 세계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9-23 00:20:49

매트릭스와 엔더의 게임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과학소설이 보여줄 때가 많다. 과학소설이 예견한 레이저 무기는 이미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변해가는 인간의 내면은 문학이 보여준다. ‘엔더의 게임’은 외계종족과의 전쟁을 다룬 소설인데 주인공은 6세 꼬마 엔더다. 엔더(이름의 뜻은 해결사)는 전투학교에 학생으로 선발된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16세가 될 때까지 일체의 휴가나 면회 없이 전투 훈련을 받는다. 전투학교의 존재목적은 우주선 선장, 함대 지휘관을 길러내는 데 있다.

모든 학생들은 모의 전투훈련을 받는다. 일종의 가상 전쟁게임이다. 미국의 과학화 전투훈련이 이 소설을 두고 만들어졌다. 미 국방부의 한 사람이 이 소설을 읽고 가상현실(시뮬레이터)을 통한 전투훈련의 개념을 잡았던 것이다. 주인공 엔더는 게임을 탁월하게 잘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실전이었다. 사실 엔더는, 그 자신은 몰랐지만, 지구를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될 절대자 ‘그’―매트릭스에선 절대자 ‘네오’―였다.

엔더가 게임하는 가상현실과 영화 매트릭스 속 가상현실은 앞으로 2030년이 되면 실현된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예견에 따르면, 2030년대엔 가상과 현실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다고 한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와 소설 ‘엔더의 게임’에서 아주 소수의 선택된 자만이 그것을 분별했다. 우리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문학이 준다.

과학소설은 우리의 미래를 여러 가지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자신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고백사회를 살고 있지만 과학소설이 예견하듯 점점 투명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미니 홈피가 누렸던 자기표현의 자리가 지금은 유튜버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수백만 명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사용자들과 유튜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생각과 느낌, 그날그날의 일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기록한다. 여기에 네티즌들은 클릭과 좋아요, 댓글과 구독하기로 반응한다.

이제 누가 뭐래도 페이스북은 소통을 넘어 효과적인 삶의 도구다.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20억 명이 사용하는 트위터는 노벨상 후보로도 추천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독 트위터에 애정을 보인다. 그는 거의 매일 20건 이상의 트윗을 날리고 주말엔 50개 이상을 날린다. 그가 트위터를 많이 한 날은 미국 주가가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도 그는 더 빨리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트윗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한 발 앞서 느끼려면 과학소설을 읽으면 된다. 예전에 영화 ‘터미네이터’를 볼 때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가 막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2016년 이세돌과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이기는 걸 본 뒤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앞으로 보이는 세계(삶의 도구)와 보이지 않는 세계(삶의 목적)가 충돌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문학은 삶의 목적을 탐구하지만 생활의 편리는 삶의 도구가 열어간다.

테크놀로지의 역설

스무 살이 될 때까진 시간이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지날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뒤돌아보면 지나온 시간 속에서 테크놀로지가 얼마나 빨리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실감한다. 테크놀로지는 편리함만 가져오지 않는다. 테크놀로지가 정보와 연결될 때 그것은 대중을 지배하는 권력이 된다. 페이스북은 자기표현의 유용한 도구지만 독재정권의 영리한 통치자들은 페이스북을 뒤져 반정부 인사를 무력화시키고 독재 정권에 도전하는 민주 세력의 싹을 사전에 잘라내는 데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투명사회에서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개인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다. 자기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어디에선가 사진과 기록이 뜬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소셜 네트워크는 이미 편재되어 있기에 우리는 어디에든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요즘 조국 장관이 과거 SNS에 남긴 글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가 있다. 영토, 국민, 주권이다. 국가가 만들어지려면 명확한 땅, 상주하는 국민과 정부의 통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중 영토는 국경선이란 물리적인 표식이 붙지만 사이버에선 제한이 없다. 20세기는 이민자의 세기였지만 21세기는 국경을 넘나드는 네티즌의 시대가 될 것이다. 과학소설 『엔더의 게임』에서 주인공 엔더의 형 피터가 보여주듯 개인은 익명으로 온라인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조작할 수 있다. 가상현실이 현실을 지배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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