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릉비>가 기록한 백제 건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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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산책

‘고명세자 유리왕’ 백제 건국을 촉발시킨 동인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9-30 17:20:28

유리왕은 황조가(黃鳥歌)로 대표되는 고구려 2대왕이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雌雄相依念我之獨誰其與歸)’.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 황조가는 고구려초기 정치세력간의 권력다툼을 배경으로 한다. 화희(禾姬-골천출신)와 치희(雉姬-한인출신), 두 후궁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유리왕의 애달픈 심정을 담고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고명세자 유리왕

유리왕은 고구려시조 추모왕의 직계혈통이다. 그런데<광개토왕릉비>는 유리왕(儒留王)을 ‘고명세자(顧命世子)’로 표기한다. 고명은 왕이 임종 직전에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이다. 유명(遺命), 유훈(遺訓)이라고도 한다. 고명세자는 유훈으로 지명된 후계자를 말한다. 다시말해 유리왕은 추모왕이 죽기직전까지 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당시 태자는 유리가 아닌 비류이다(召西奴立朱蒙爲王而沸流爲太子溫祚爲王子<백제왕기>). 비류는 소서노의 첫째 아들이고, 온조가 둘째 아들이다.

추모왕은 홀본부여(홀본국) 왕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통해 고구려를 건국한다. 소서노의 홀본부여가 고구려의 모체이다. 비류의 태자 책봉은 추모왕이 소서노와 고구려건국을 놓고 벌인 일종의 딜(deal)이다. 그런데 추모왕의 직계혈통인 유리가 고구려를 찾아오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추모왕은 자신의 혈육인 유리를 후계자로 삼기를 원한다.

▲ 일반적으로 후계자 칭호는 태자(太子)를 쓴다. 고구려의 세자(世子) 칭호는<삼국사기>에 딱 한번 나온다. 고국원왕 시기로 후연모용황의 침공을 받은 고국원왕은 협상을 위해 세자를 파견한다.(王遣世子朝於燕王皝) 후연이황제국을 지칭하자 고구려 또한 황제국을 표방하며 세자칭호를사용한다. [사진=<광개토왕릉비>쌍구가묵본]

<삼국사기>는추모왕이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유리를 태자에 책봉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고구려사략>은 유리의 태자(정윤) 책봉에 반발한 소서노가 크게 노하여 본거지인 우양(牛壤)으로 가버렸다고 기록한다(上與禮氏類利謁神隧會群臣議正胤皇后大努與仇都仇賁等退居牛壤). 결국 유리의 태자 책봉은 소서노의 승인을 받지 못하여 미완으로 끝난다. 그래서 유리왕은<광개토왕릉비>의 고명세자가 된다.

참고로 온조의 본래 이름은 두절(斗切)이다. 추모왕은 두절이 유리태자를 위한 마음을 높이 사서 온조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上命以斗切太子為類利太子之故改名溫祚者也<고구려사략>) ‘온(溫)’은 따뜻한 마음이며, ‘조(祚)’는 태자를 가리킨다. 온조는‘유리태자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뜻한다. 당시 온조는 형 비류를 대신하여 유리의 태자 책봉을 용인한다. 형 비류에 대한 불편한 경쟁심리가 온조의 선택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유리왕의선택, 고구려 3분할 통치

추모왕 사후, 비류는 고구려왕이 되지 못한다. 대신 추모왕의 의지대로 유리가 후계자 고명을 받아 보위를 잇는다. 특히 <고구려사략>은 유리왕이 즉위 이후 비류, 온조와 함께 고구려를 3분할 통치한 사실을 전한다. 이때 유리왕은 소서노와 함께 수도 홀승골성(紇升骨城-요녕성 북진의 무려산)을 중심으로 소노부, 황룡국, 행인국, 구다국, 비리국 등을 담당하고,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을 도읍으로 순노부, 절노부를 담당하며, 온조는우양(牛壤)을 도읍으로 관노부, 계루부를 담당한다.

▲비류와 온조는 추모왕에 의해 엄표왕(淹淲王)과 한남왕(汗南王)에 봉해진다. 비류의 도읍 미추홀은 고구려 영토 내에 소재한다. 이후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미추홀 지명도 함께 가져온다. 한반도 미추홀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사진=<고구려역사의부활>(논형,2018)]

그러나 유리왕의 3분할 통치체제는 오래가지 못하고 갑자기 중단된다. 소서노가 고구려를 떠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소서노의 홀본부여계 정치적 입지가 유리왕의 동부여계에게 밀려 약화된다. 결국 소서노는 고구려에서의 꿈과 삶을 모두 포기한다.

소서노, 백제 건국의 실질 주체

소서노는 처음 동부여왕족 우태(금와왕아들)를 받아들여 홀본부여를 출발시키며,(서기전47년) 비류와 온조를 낳는다. 이어 북부여 왕족출신 추모왕과 결합하여 고구려를 창업한다(서기전37년). 그리고 추모왕이 직계혈통 유리를 선택하자,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한반도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다(서기전18년).

소서노는 홀본부여, 고구려, 백제 등 3국의 창업을 주도한 여걸이다. 그래서<백제서기>는 소서노가 ‘3국(홀본부여,고구려,백제) 사람들에게 신(神)처럼 존중되었다’(三國人皆尊之如神)’고 설명한다. 특히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조선 역사상 유일한 여제왕(女帝王)의 창업자’로 소서노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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