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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대프리카’ 늦더위를 잊게 한 대구식 육개장 ‘따로국밥’

[대구 노포] 70년 넘은 <국일따로국밥>‧50년 된 <교동따로국밥>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05 19:04:43

▲ 맛 칼럼니스트 유성호
대프리카는 역시 이름값을 했다. 대구지역이 여름이면 얼마나 더운지 열대 아프리카와 결합시켜 대프리카를 탄생시킨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섭씨 40도를 웃돌던 지난해에 비해 반도의 여름날씨가 올핸 양반이었다. 서울에서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을 접하고 더위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질 무렵인 지난 927대구수성못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대구행 기차를 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구 역시 더위가 거의 꺾였을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었다. 특히나 축제가 시작된 금요일과 다음날 비가 한차례씩 내리면서 습한 기운까지 가세해 눅눅하고 끈적였다. 늦더위가 찾아 온 것이다. 겉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가방 안에서 짐으로 존재했다. 백팩을 맨 등짝은 땀에 젖었고 어깨끈에는 허연 소금무늬가 생겼을 정도다.
 
이럴 때면 이열치열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특히나 대구는 탕반음식이 발달된 곳 아니던가. 수성못 인근을 돌아다니면서 골목 사이에서 설핏 따로국밥집 간판을 봤다. 대구에서 따로국밥 간판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로국밥이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로국밥은 육개장과 밥을 따로 주는 대구 향토음식
 
▲ 육개장이 대구에서는 따로국밥이란 별칭으로 진화했다. 따로국밥은 밥과 탕을 따로 내오는 음식을 말한다. 선지까지 따로 내오는 점포도 생겼다. [사진 제공=필자]
 
따로국밥은 일반적으로 육개장과 밥을 따로 주는 대구지역 향토음식이다. 원래 국밥은 밥을 탕국물에 토렴해서 한 그릇에 담아 나오는 음식이다. 따로국밥은 양반들 음식문화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한다. 과거 반상(班常)의 구분이 있던 시절, 양반들은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거리며 먹는 것을 상스럽게 여겼다.
 
따로국밥이 대구에서 발달한 것은 한국전쟁과 관련 있다. 당시 대구로 많은 피난민들이 몰렸는데, 소고기 국밥이 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자칭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은 밥을 탕에 말지 말고 따로 달라고 하면서부터 따로국밥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1946년 문을 연 <국일따로국밥>의 역사를 놓고 보면 한국전쟁 이후 갑자기 생겨난 음식문화라기 보다는 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밥따로라는 단어를 붙여서 만든 따로국밥이란 신조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전쟁통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실제로 <국일따로국밥>도 처음에는 국에 밥을 말아 팔았다. 연세 드신 어른들에게 예의상 국과 밥을 따로 내놨는데 이것이 따로국밥이란 이름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는 예부터 얼큰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소고깃국을 가진 도시다. 대구 육개장 특징 중 하나는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이다. 고추기름은 녹인 쇠기름을 이용해 만든다. 대구 육개장은 소뼈와 소 무릎 뼈를 반나절 이상 고아서 육수를 만든다. 다시 소고기 양지, 사태를 넣고 12시간 동안 더 끓인다. 소금·후추··고춧가루·마늘 등의 양념을 넣고 다시 30분 정도 끓여서 국과 밥을 따로 담아낸다. 맛은 얼큰하고 매운 듯 하지만 끓어오를 때 넣는 고추기름의 고소함과 파, 무의 단맛이 함께 어우러지면 매콤함과 구수함이 섞여서 오묘한 단짠이 된다.
 
고온다습한 대구지역 기후 특성으로 발달한 음식 
 
▲ 지난 9월 하순에 열린 대구수성못페스티벌은 늦더위와 오락가락한 비로 인해 고온다습했다. 사진은 축제장에 설치된 안개분수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 이런 날은 이열치열 육개장 같은 음식이 생각난다. [사진 제공=필자]
 
대구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분지 지형이다. 매운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여름에는 땀 배출을 돕고 겨울에는 몸을 덥혀 준다. 중국에서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은 훠궈요리가 유명하다. 최근 국내 식당가 출점이 활발한 마라의 원조가 충칭 훠궈다. 충칭은 아열대 몬순 기후에 속해 여름철은 상당히 고온다습하다. 그래서 매운 고추가 듬뿍 들어간 훠궈를 먹고 땀을 흠뻑 빼는 식문화가 유행이다. 대구 육개장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발전한 음식이다.
 
1926년에 창간됐던 월간 취미 잡지 별건곤1929121일 기사에서 묘사한 대구 육개장을 보자.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중략) 서말지기 가마에다 고기를 많이 넣고 곰국을 고듯 푹 고아서 우러난 물로 국을 끓이는데 고춧가루와 소기름을 흠뻑 많이 넣는다. 국물을 먼저 먹은 굵다란 파가 둥실둥실 뜨고 기름이 둥둥 뜨는 고음국에다 고은 고기를 손으로 알맞게 찢어넣은 국수도 아니고 국밥도 아닌 혓바닥이 데일만치 뜨겁고 김이 무럭무럭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침이 꿀꺽 넘어가고 엄동설한에 언 얼굴이라도 저절로 풀리고 언몸이 녹아서 근질근질해진다.(중략) 까딱 잘못 먹었다간 입술이 부풀어서 애인하고 키스도 못하고 애매한 눈물까지 흘리리라
 
우리 반상의 기본은 밥과 국이다. 국밥은 이 둘을 섞어서 말아 먹는 것이다. 국밥 문화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식문화다. 한국전쟁 전부터 주로 5일장에 오는 상인에게 제공됐던 장터국밥이 대표적이다. 육개장은 대구탕반, 대구탕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대구에서는 따로국밥이란 이름으로 발달했다. 원래 육개장은 사태와 양지 등을 이용해 육수를 낸다. 대구 따로국밥은 사골 육수에 선지가 들어간다. 원래 육개장이 발달한 대구에서 진화한 따로국밥이 갖는 특징이다.
 
대구 따로국밥 원조는 46년 개업한 <국일따로국밥>
 
▲ 1946년 개업해 역사가 73년 된 <국일따로국밥>의 따로국밥 [사진 제공=필자]
 
대구에서 따로국밥 하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국일따로국밥>이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 일본에서 돌아 온 서동술 씨와 부인 김이순 씨가 1946년 창업했다. 집안 내림음식으로 전해 내려오던 쇠고기 국밥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식당을 차리게 됐다. 2대 서봉수최영자 부부로 이어졌고 지금은 3대 서경덕 씨가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
 
필자는 20176<국일따로국밥>에 아침 식사를 위해 간 적이 있다. 당시 맛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페이스북에서 기록을 찾았지만 남아 있지 않았다. 대구에서 만난 따로국밥의 첫 기억은 그렇게 소멸됐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대구수성못페스티벌 이튿날 축제장 근처에 있는 <교동따로국밥>에서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같은 집이 아니었지만 구수한 고추기름이 듬뿍 담긴 따로국밥의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구수성못페스티벌은 수성구가 기획하고 만든 축제다. 수성못 수변길과 상화동산, 수성랜드, 울루루문화광장을 무대 삼아 음악 행사를 중심으로 23일간 펼쳐진다. 축제 기간 중 토요일에는 수성못 건너편 들안길에서 푸드페스티벌이 열려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푸드페스티벌은 들안길먹거리타운번영회 소속 식당에서 부스를 차려 자신들의 메뉴를 판매한다.
 
50년 전통의 <교동따로국밥>서 옛맛 떠올려 
 
▲ 대구시가 지정한 향토음식점인 <교동따로국밥>에서는 밥, 탕, 선지를 따로 내온다. 특따로국밥은 한번 더 끓인 후 고기를 좀더 넣어서 내준다. [사진 제공=필자]
 
평가를 위해 축제장을 몇 바퀴 둘러보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날이 습하고 더워서 등솔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이열치열을 위해 첫날 봐둔 <교동따로국밥> 집을 찾았다. 간판에 업력 50년을 써 붙여 놓고 자랑하는 집이다. 73년 된 <국일따로국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50년 업력도 대단한 것이다. 대구시가 지정한 향토음식점이란 자랑거리도 적어 놨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는 무조건 메뉴판 제일 상단에 적혀 있는 것을 시킨다. 그 집이 주력메뉴를 적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동따로국밥>은 특따로국밥(9000)을 가장 앞세웠다. 보통 따로국밥보다 2000원이 비싸다. 필자의 주문 기준대로 특따로국밥을 주문했다. 주문을 해 놓고 교동이란 지명에 대해 알아봤다.
 
교동은 향교가 있던 동네에서 유래했다. 처음 향교가 있었던 곳의 위치는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 조선시대 태조 7년에 동문 밖 고성에 세운 향교가 불타버리자 정종 7년에 부동으로 옮겨지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다른 이름으로 향교골, 향교동이라 했다. 향교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자 1599년 새로 건립한 것을 1605년 교동 자리로 옮겼고 1933년 현재 향교자리(중구 명륜로 197)로 이건했다.
 
교동은 대구 한가운데 중구에 위치한 법정동명이다. 대도시에는 대부분 중구란 자치구가 있는데 가장 오래된 구도심으로 보면 틀리지 않는다. 대구에서는 <교동따로국밥>, <교동면옥> 등 교동이란 이름을 붙인 음식점이 여럿 있다. 상호에 대구의 오랜 역사를 녹이고 싶은 것이라 생각된다.
 
옻칠한 사각 나무쟁반에 한상 차림으로 따로국밥이 나왔다. 육개장과 밥만 따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선지까지 따로 그릇에 담아 내온다. 선지는 숟가락 크기 만한 두 덩이가 나온다. 선지를 따로 내줌으로써 따로국밥집이란 스토리를 강화했다.
 
그런데 검붉은 고추기름이 둥둥 떠 있는 대구 따로국밥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국물이 희멀건 하다. 고추기름을 따로 달라고 주문했다. 당연히 기성품으로 나온 고추기름을 양념통에 담아 내주겠거니 했는데 뜻밖의 장면을 접했다. 작은 그릇에 고추기름을 담아왔는데, 큰 솥에서 끓이고 있는 육개장 위에서 걷어 온 것이다. 무도 한 조각 들어 있고 소고기에서 나온 부유물이 떠 있다. 소문대로 매운 맛보다는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특따로국밥은 따로국밥과 달리 소고기를 조금 더 넣어주고 가스 불에 한번 더 끓여주는 차이다. 그래서 따로국밥은 주문과 동시에 나오는 반면 특따로국밥은 끓이는 시간만큼 약간 뒤늦게 나온다. 중국집으로 치면 짜장면과 간짜장의 차이 정도란 생각이 들었다. 사골 베이스의 농후한 육수에 대파, 무의 익은 정도와 맛의 밸런스가 좋다.
 
전반적으로 단맛을 내는 식재료가 많이 들어가 달근한 국물 맛을 낸다. 국물은 한번 더 끓이면서 염도가 살짝 올라가 짠맛이 느껴진다. ‘단짠으로 유명한 대구음식의 특징으로 고스란히 담은 한 그릇이다. 고추기름 때문에 입술이 번지르르하고 이마와 콧등엔 땀이 송글 맺힌다. 2년 전 <국일따로국밥>에서 먹었던 맛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맛은 기억이며 동시에 추억이다.
 
대구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창업해 70년간 3대에 걸쳐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옛집>, 독특하게 소면을 내주는 30여 년 역사의 <대구전통따로식당>, 56년 역사의 3대 내림가게인 <벙글벙글집>, 40년 전통의 2대 내림가게면서 선지국이 강한 <대덕식당>, 한우국밥이 강한 <양정화네온천골>, 따로국밥과 수육이 강한 <한일식당> 등이 이런 저런 모양의 대구탕반 맛집으로 소문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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