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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결코 잊지말아야 할 치욕, ‘명성황후 시해사건’

국론통일·국력배양 중요성 일깨워주는 힘없던 조선의 비극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12 13:27:38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10월 달력에는 다른 달에 비해 공휴일과 기념일이 유난히 많다. 1일엔 국군의 날이 있고 3일엔 개천절이 있다. 이밖에도 5일 세계 한인의 날·8일 재향군인의 날·9일 한글날·15일 체육의 날·19일 문화의 날·21일 경찰의 날·24일 국제연합의 날·25일 독도의 날·28일 교정의 날·29일 금융의 날 등 빼곡하다.
 
그런데 우리에겐 무척 중요한 날임에도 잊혀져가는 날이 있다. 그날은 바로 124년 전 10월 8일(음력 8월 20일)로 조선의 국모(명성황후)가 침략자 일본제국주의에게 처참하게 죽어간 날이다. 이를 역사적으로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고 한다. 다만 너무 평범한 용어이기에 을미참변(慘變) 또는 을미국치(國恥)라는 용어로 바꿔져야 할 것이다.
 
1~2군데 이외 대부분의 언론들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의미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으며 조폐공사에서 선보인 ‘명성황후책봉금보’ 기념메달이 공개되었다는 소식만 보도했다. 마치 근대사 문제로 대립중인 일본을 더 이상 이 문제로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언론단합(?)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에 “과거를 잊어버린 자는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과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는 아놀드 토인비의 명언이 떠올랐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시켜야 할 언론의 침묵이 가히 심각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일본정부 차원에서 기획한 명성황후 시해 [사진=필자 제공]
 
반면에 북한 매체는 울분을 토하면서 “만약 일본이 지난날 우리에게 저지른 극악무도하고 반인륜적인 국가범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재침의 피 묻은 칼을 뽑아든다면 우리 민족은 지난날의 쌓이고 쌓인 원한을 합쳐 그 대가를 백배천배로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결의를 다졌다”고 보도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개요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망해가는 조선을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했다. 동학농민봉기로 야기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자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폈다. 이에 난관에 봉착하게 된 일본은 걸림돌인 명성황후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총리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전임 공사로부터 지시를 받은 미우라 공사는 1895년 10월 8일 일본인 폭도들과 군대를 이끌고 경복궁을 범궐해 건청궁(乾淸宮)·곤녕합(坤寧閤)·옥호루(玉壺樓)에서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시해했으며 시신은 증거인멸을 위해 불태워버렸다. ‘에조 보고서’로 밝혀진 당시 시해과정은 참으로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이며 참혹하기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들 모두 재판에 넘겨졌으나 일본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 1895년 프랑스 주간지에 실린 삽화 [사진=필자 제공]
 
이어 명성황후는 일제의 압력으로 폐서인됐다가 다음날 다시 빈으로 승격되고 얼마 후 왕후로 복위되었으나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명성황후로 추존된 후 국장이 거행됐다.
 
조선은 일본 때문이 아닌 스스로 망한 것
 
명성황후의 죽음으로 조선왕조는 사실상 사망한 것과 마찬가지 상태였다. 물론 대한제국이 세워지는 등 나름대로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말이다. 무장한 소수의 외국인들이 궁궐에 난입해 국모를 죽여도 어찌 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나라를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시 조선은 껍데기만 남은 죽어가는 생명체였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외침에 의한 임진·병자 양대 전란을 거치면서 국토가 많이 파괴돼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져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곤궁해졌다. 그럼에도 조정에서는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파싸움과 세도정치만을 일삼았으며 왕통마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왕권이 땅에 떨어져 정치가 무척 불안정해져 백성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게 됐다.
 
조선은 자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봉기마저 자력으로 수습하지 못해 청·일 양국 군대를 불러들였다가 이 땅에서 양국이 전쟁을 벌이는 등 이미 요지경이 돼버린 상태였다. 한 마디로 멀쩡했던 조선에 강력한 일본이 쳐들어와 사투를 벌이다가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망조가 들대로 든 조선을 일본이 힘 안 들이고 취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당시 명성황후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여러 가지로 갈리고 있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 정치적 평가에는 항상 치적과 과오가 병존하는 법이다. 분명한 것은 일제는 명성황후 죽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치적을 최대한 숨기고 과오를 혹평하고 과장해 세상에 퍼트렸을 개연성이 높다. 현재 친일적인 요소가 농후한 역사학계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당시 서양의 외교사절 부인들은 명성황후가 총명하고 판단력과 뛰어난 외교력을 지닌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고 말했으며 영국에서 발간된 책에서는 지식인이자 우아한 자태를 가진 귀부인이라고 묘사됐다. 왕실주치의였던 언더우드 여사는 우아하고 근엄했다고 표현했다. 반면에 일본 화가들이 남긴 삽화에는 모두 뚱뚱하고 심술궂게 여우 같이 그려져 있어 대비를 이룬다.
 
▲ 2020년 도쿄올림픽에 공식 등장할 욱일승천기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 [사진=필자 제공]
 
124년 전 10월 8일에 일어난 치욕의 을미참변을 상기하자는 이유는 그녀의 정치적 평가에 대해 갑론을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모라도 언제든 외적에게 저렇게 처참하게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향후 국론통일과 국력배양에 힘을 기울여야한다는 취지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의 장본인이었던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근대사의 만행에 대한 반성은 커녕 오히려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고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내년 도쿄올림픽에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124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 시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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