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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34>

유라시아대륙의 민족 이동 바로 보고 역사 말해야

춘추전국시대 전후의 상황과 기마민족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0-20 00:23:23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중국 춘추시대
(春秋時代)는 서기전 770~서기전 403년까지 367년간이며 전국시대(戰國時代)는서기전 403~서기전 221년까지 200년의 혼란한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는 반도가 아닌 유라시아를 무대로 펼쳐진 역사이기 때문에 당시 유라시아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4세기~6세기에 걸쳐서 유라시아대륙은 민족의 대이동(大移動)이 일어나 중앙아시아 민족이 대륙의 동()과 서(西)에서 활동한 시기이다.
 
특히 4세기 유라시아의 중앙부에 있었던 훈족(Hun;濊貊(銳麥=匈奴)이 서방(西方)으로 이동(移動)해 여기에 압도된 유럽 북동부 게르만인의 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이 분열함으로 여기에 침입해 게르만인의 여러 나라를 건설했다. 이 나라들은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帝國)이 멸망한 후에도 동로마제국(帝國)은 콘스탄티노플을 수도(首都)로 해 번영했다.
 
로마(Roma)제국(帝國)은 지배 하의 제민족(諸民族)의 저항(抵抗)과 노예(奴隸)의 반란(反亂)이 가해져 게르만인()의 침입에 의해서 동서로 분열(分裂)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서아시아(西亞細亞)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로마가 번영했던 것이다.
 
서기 395년 로마(Roma)를 수도(首都)로 하는 서로마제국(帝國)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首都)로 하는 동로마제국으로 분열(分裂)해 더욱이 서로마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인의 용병대장(傭兵隊長)이 이끄는 오도아르군에 멸망되었다.
 
(西)아시아에선 이란고원(高原)에 사산조()페르시아를 일으켜서 독특한 미술공예(美術工藝)를 발달시켜 중국과 로마를 연결하는 통상로(通商路)를 구축해서 강대한 왕국(王國)을 만들었다.
 
4세기 초 인도(印度)에서는 자연이 신()을 찬양한 옛 파라문교(婆羅門敎)로부터 발전해 인도(印度)고유의 민간신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한 종교인 힌두교는 히말라야에 사는 파괴의 신 시바를 달램을 통해 행복을 얻는다는 신앙으로 인도의 기본적 종교로 널리 펴졌다. 따라서 인도(印度)에서는 불교(佛敎)보다도 힌두교가 일반신앙을 믿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2세기 후반이 되자 한()나라의 정치가 혼란해져 궁전(宮廷)에서는 황후의 일족이나 측근이 제멋대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민중 간에 태평(太平)이라고 말하는 태평세(太平世)’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일종의 종교가 일어나 농민은 황색의 수건을 두르고 반란(反亂)을 일으켰다. 또 각지의 호족(豪族)은 서로 다투었다.
 
그 때문에 한()나라는 멸망하고 황색의 수건을 두른 황건군(黃巾軍)도 호족군(豪族軍)에 진압(鎭壓)되었다. 그리해서 만들어진 것이 위((), ()의 삼국(三國)인 것이다. 이 삼국은 50년간 계속 되었다.
오늘은 유라시아에서 명멸(明滅)한 춘추시대(春秋時代)4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서 민족 대이동이 있었던 대륙에서 활약한 고대 우리민족이 중국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역사가 사실임과 진()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을 준 것도 기마민족인 것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의 철기사용과 춘추전국시대의 상황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서기전 770~서기전 403년까지 367년간 계속되는데 이 기간 사서(史書)에 나타난 유력한 민족은 10국이 넘는다. 그리고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서기전 403~서기전 221년까지 약 200년간을 말하는데 이 때 중국은 구래(舊來)의 나라는 진((()과 신흥(新興)의 전제(田齊((() 7개국이 병립(竝立)한 시대로 여기서 위()와 초()는 조조의 위()나 유비의 촉()이전의 춘추시대임을 유의해야 한다.
 
이때는 약육강식의 풍조가 점점 강하여지기 때문에 각 제후(諸侯)들은 부국강병전책(富國强兵政策)에 나선시대로 부국(富國)이란 조금이라도 많은 농경지를 넓혀서 곡물의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고 강병이란 인구 증대에 의한 병력증가와 우수한 지휘관의 획득인 것이다.
 
이때 제후난립(諸侯亂立)의 전국시대를 제압해서 중국을 통일(統一)한 왕은 진()나라의 정() 즉 진왕(秦王)인데 후에 진시황(秦始皇;서기전 259~서기전 210)이라고 불리는 왕이다.
 
그는 전국시대 가장 문화가 앞서고 우수한 인재가 많았던 나라가 멸망한 때 많은 인재가 진()에 이주(移住)한 것과 우수한 군마(軍馬)와 이를 잘 다루는 주변의 유목민(遊牧民)을 많이 포용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거의가 동이족이지 화족(華族)이 아니다.
 
동이족들은 현재 중국 사천성지방(四川省地方)인 파촉(巴蜀)의 땅을 얻은 것 등을 들고 있다. 이 파촉(巴蜀)의 땅은 지도(地圖)를 보면 그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盆地)이다. 그러나 물산(物産)은 풍부하기 때문에 중원(中原)이 전란(戰亂)이나 기근(饑饉)으로 살기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풍부한 사천(四川)을 향해서 이주(移住)할 정도로 요지(要地)이다.
 
후의 삼국시대에 위()나 오()가 평야부(平野部)에 의지한데 반해 촉한(蜀漢)의 군사(軍師)인 제갈공명(諸葛孔明;181~234)은 좁은 땅이면서도 물산(物産)이 풍부(豊富)한 사천성을 선택해 20년간에 걸쳐서 국가(國家)를 경영(經營)한 것은 유명하다. 이 사천(四川)의 땅은 티베트와 인도(印度)까지 교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역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국시대(戰國時代)(서기전403~서기전1)7()인 진(((전제(田齊((()7개국이 병립(竝立)하던 중 가장 문화가 앞섰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가 가장 먼저 쇠락(衰落)한 이유는 위()는 연()을 제외한 5강국과 국경(國境)을 접()해서 늘 침략을 받아 피폐(疲弊)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국(本國)의 무위무책(無爲無策)에 실망한 많은 위인(魏人)들은 다른 앞선 문명국에 가기보다는 이웃나라인 진()에 망명했던 것이다. 당시 진()은 문명(文明)이 가장 뒤쳐져 있던 국가로 망명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한편 진()에 있어서는 뒤쳐진 문화를 높이는 유능한 인재(人材)를 포용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 진()은 북··남의 세 방면에 이민족(異民族)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과 함께 이민족(異民族)의 병사(兵士)를 키워 기마전술(騎馬戰術)을 습득(習得)하고 군마(軍馬)의 수입증산(輸入增産)에 힘을 써서 중원(中原)을 겨냥할 준비를 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북방의 유목민족(遊牧民族)으로부터 기마전술(騎馬戰術)을 배운 군사대국의 조()나라와는 라이벌이 되었다. 그러나 진()이 북방의 유목민족으로부터 기마전술을 배운 군사대국(軍事大國) ()나라와 싸워 이기니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군사 균형이 일거에 붕괴돼 진()은 바로 중국통일(中國統一)을 이룩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의 달성한 통일지역은 현재의 중국 본토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선진 기마민족의 철기(鐵騎)와 무기(武器)며 전략(戰略)이 주효(奏效)했던 것이다. (以上崔仁, ‘韓國學講義’75~6,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72~99 參照, 引用하다.)
 
()을 멸망케 한 것은 예맥(銳麥;濊貊)과 남월(南越)이다
 
()에 의해 중국은 통일되었으나 주변의 이민족(異民族)의 움직임도 활발하게 되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당시도 진()에 가장 위협이 된 나라는 중국인이 흉노(匈奴)라고 하는 예맥(銳麥;濊貊)이었고 진()을 타도한 것도 예맥(銳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과 일본은 진()의 멸망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등장에 의해서 멸망하였다고 사서에 쓰고 있으나 이는 진()의 멸망애 대한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수차례 기술했다.
 
여기서 진() 멸망의 사실에 대한 그 배경과 그 실제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진왕(秦王) 정치는 멸망한 타국(他國)의 유민(遺民)의 한()과 반감(反感)을 사는 것이 많았다.
 
그 위에 외정(外征)을 여러 번이나 행한 것 때문에 그 백성들은 원격지(遠隔地)로부터 군무(軍務)에 복무할 수밖에 없고 왕복하는 부담만으로도 심대(甚大)해 각 지에서 반진(反秦)의 봉화(烽火)가 있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에 의해 서기전 206년 진()이 멸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미 수차에 걸쳐서 기술(記述)한 바와 같이 진()이 망한 것은 중국 역사가들은 진()을 타도(打倒)한 자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진()을 타도하였다고들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 왜곡(歪曲)된 것으로 진실(眞實)이 아니다. ()을 타도한 것은 예맥(銳麥;濊貊)과 남월(南越)에 의해서임을 알 수 있다.
 
그 진실은 진()이 예맥과 남월의 전란(戰亂)으로 혼란에 빠진 것을 계기로 진승(陳勝)과 항우(項羽)가 궐기하였던 것이고 유방(劉邦)은 더더욱 아니다. 진승(陳勝)은 대택(大澤)에서 혁명군(革命軍)을 일으켜 강권(强權)으로 인민(人民)을 억압해온 폐해(弊害)에 천하(天下)가 호응했으나 진()을 타도(打倒)한 자()는 예맥(銳麥;濊貊=匈奴)과 남월(南越)인 것이다.
 
그것은 진왕(秦王;秦始皇)의 죽은 8년 후에 남방(南方)의 광동(廣東)에 있던 남월왕(南越王)과 복건(福建)에 있던 민월왕(閩越王)이 독립하고 또 북방(北方)에서는 흉노(匈奴)의 모돈(冒頓)이라는 영웅(英雄)이 서기전 209년 단우(單于)가 수장(首長;)이 되어 다시 강대해갔다.
 
여기서도 예맥(銳麥;(濊貊;匈奴=Hun)의 기록을 지우고 있는데, 예맥(銳麥;濊貊;匈奴=Hun)은 동주(東周)시대부터 1000년 이상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대륙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한 기마민족의 대표 격인데 예맥조선을 지우고 있다. (以上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85~87. 崔仁, ‘韓國學講義’ 75~76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유라시아 지배한 기마민족 지울 수 없다
 
4~5세기 이후 아시아는 기마민족이 지배한 시대이었다.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앞선 무기와 강한 기마전술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것 지금까지 살펴왔다. 그런데 중국은 역사에 문제가 많고 이들은 상고사가 없어 역사에 내세울 것이 많지 않음에서 역사를 조작 왜곡하며 우리 선조와 역사도 지우며 자기들의 역사라 우기는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무엇을 해도 제멋대로이나 상대가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결코 용서 하지 않는다는 성벽(性癖)을 갖고 있다. 이것은 중화사상과 제멋대로 해버리는 습성이 있다.
 
중국은 한마디로 말하면 주변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침략과 말살, 국내에 있어서는 왕조교체(王朝交替)때마다 수십만 수 백만 단위의 대 학살(虐殺)이 있음은 참으로 전율(戰慄)할 역사다.
 
중국이 과거 수천 년의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침략하고 지배하며 약탈·학살·차별·학대를 반복하였는가를 자기들의 국민에게는 가르치지 않음으로 자기들이 대단한 역사라 여기나 그 정반대의 경우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는 너무 미화돼 있다.
 
필자는 18년간 중국 관련 책이나 역사 관련된 분야의 학문 서책에서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고인류학적(古人類學的)이나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 조사해 가보면 그들은 거의가 동이족이 지배한 역사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족(漢族)이 어떠한 민족인가도 모르고 있다.
 
즉 자기들의 조선(祖先)이 어떠한 민족이며 부족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2016년 중국에 역사탐방으로 중국의 박물관마다에 진열된 삼황오제(三皇五帝)며 중국의 역사 인물이 어느 민족으로 중국사에 나와 있는가 하고보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시대(歷史時代) 중국의 고대 국가 은()은 사서(史書)들에 의하면 은()의 시조(始祖)()’는 전설의 왕조 하()의 우왕(禹王)에 의한 황하치수사업(黃河治水事業)을 도운 공적(功績)에 의해 제순(帝舜)의 시대에 하남(河南)()’에 봉()해졌다.
 
()나라는 서기전 1600년경 부족국가의 연합체로서 화북일대(華北一帶)를 지배했으나 이 제국(帝國)도 유목민인 기마민족(騎馬民族)이었음을 숨길 수 없다. ()1300년경에 정교한 청동기(靑銅器)를 제작하고 갑골문자(甲骨文字)도 발명했다고 하나 우리가 한 것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3세기 말기의 소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과 서기전 770~서기전 1년의 춘추전국시대 우리민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론, 철제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업을 진보시킨 것과 기마전술에 예맥이 중국에 크게 기여한 것은 모두 우리기마민족이었다.
 
또한 10세기~20세기에 이르는 1000년동안 중국이 내세우는 정복왕인 요(;거란족(;여진족(;몽골족(;만주족)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이들은 기마민족의 문화라 할 수 있는 이주(移住)문화를 구축한 민족으로 모두 우리 동이족이지 중국의 화족이 아니다. 이 요(((()은 우리역사에 편입돼야 할 나라들이다.
 
글을 맺으며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거짓으로 조작된 역사(歷史)는 역사라 할 수 없고 진실(眞實)만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忘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역사는 지각없는 인간들에 의해서 상고사와 고대사도 지워져 있는데 이를 제대로 제 위치에 바로 세워 복원해야 한다.
 
유구(悠久)하고 찬란(燦爛)한 역사를 바로 정립해야 한다. 이는 우리 선조(先祖)들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며 우리 자손들이 올바른 연구를 통해서 반드시 이뤄야할 사명(使命)임을 자각하고 중국과 일본에 의해 뒤엎어진 역사를 이제 바로 세워 후손들에게 바로 물려줘야 한다.
 
중국의 저명한 서양지(徐亮之) 박사는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동이족이 중국 전체를 차지했다는 것을 자신의 저서에 밝히고 있다. “은주시대(殷周時代)에 동이족()이 활동한 사실로 오늘날의 산동성(山東省), 하북성(河北省), 발해연안(渤海沿岸), 하남성(河南省), 동남강소성(東南江蘇省), 중북 호북성(湖北省), 동우(東隅), 요동반도, 조선반도(朝鮮半島) 등 넓고 큰 지역을 포함한다고 했다.(中國史前史話 267) 역사를 바로 봐야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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