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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달에는 2박3일씩 두 차례 ‘2019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둘러보기 위해 영양, 울주, 통영, 산청, 고령, 강화, 수원, 담양, 전주, 해남 등 전국을 누볐다.
다니면서 외식한 이야기와 주요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 소개를 차례로 싣는다.
이번은 반도의 땅끝 전남 해남에서 만난 한정식, 집밥 백반, 독특한 닭요리 음식 이야기다. <필자 註>
한적한 시골마을 식당에서 만난 대통령 친필
‘땅끝’이란 단어가 주는 아련함을 품고 사는 반도의 끝자락 해남. 해안을 인접하고 있지만 워낙 넓어서 해남읍에서는 바다를 만날 수 없다. 다만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물로 만든 음식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난 24일 점심에 담양에서 질보다 양으로 밀어붙인 식단 때문에 더부룩한 속을 깔끔하게 달래준 식당을 해남에서 만나 반가웠다. 땅거미가 거의 내려앉을 무렵 도착한 <한성정>. 전통한정식전문을 표방하는 해남군 지정 우수음식점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으로 아담한 정원에 툇마루도 있는 정겨운 곳이다. 창호지를 바른 전통 격자무늬 여닫이문을 여니 삐꺽 소리가 난다. 방안에는 인원수만큼 방석만 덩그마니 놓여 있다. 밖에서 차린 상을 통째로 들고 들어오는 집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상이 들어 올 동안 방안을 둘러보니 붓글씨 한점과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敬天愛人’이라는 글씨 옆에 1997년 초여름을 뜻하는 ‘一九九七年 初夏’와 뜻밖에도 고 김대중 대통령 이름이 보였다. 아호 후광(後廣) 때문에 글쓴이가 김 전 대통령이란 걸 확증할 수 있었다. 1997년 초여름은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불과 몇 달 전이다. 대통령 선거는 그해 12월 18일에 있었다.
아호 후광은 그의 고향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붓글씨로 휘호를 써 선물을 많이 했다. 주로 실사구시(實事求是)나 경천애인(敬天愛人)을 많이 썼다. <한성정>에 걸려 있는 경천애인 휘호에는 김대중인(金大中印), 후광(後廣), 만방일가(萬邦一家) 등의 낙관이 찍혀 있다. 평소 즐겨 찍던 낙관들이다.
한상차림 통째 제공되는 퍼포먼스로 입맛 돋워
이런 저런 구경을 하고 있자니 상이 들어 왔다. 종업원 두 사람이 양쪽에서 잡아야 하는 큰 상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갈한 남도 바닷가 밥상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먹힐 것’만 차려 내왔다. 민어, 홍어삼합, 삼치구이, 문어숙회, 전복회, 전어무침, 코다리찜 등 상차림이 “여긴 바다를 접한 도시 해남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떡갈비도 씹히는 식감과 맛이 제법으로 잘 만들었다.
4인이 반찬을 거의 비우고 홍어를 조금 리필할 정도로 양이 적당하게 차려져 나왔다. 사실 직전 식사를 한 담양에서 36첩이라는 쓸데없이 많이 차려진, 맛도 변변찮은 한정식을 접하고 왔기에 비교가 많이 됐다. 한식이란 이름을 달고 머스터드, 칠리소스 등을 거리낌 없이 뿌려가지고 나오는 등 살짝 입맛 상했던 점심을 완전히 잊게 해준 밥상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 해남읍내를 한 바퀴 산책했다. 아침식사는 숙소인 남도호텔에서 콘플레이크로 간단히 하자고 일행들과 약속했지만 읍내를 걷다보니 <중앙정>이란 기사식당이 보였다. 아침 7시라 식사가 될까 조심스레 여쭸더니 주인 부부께서 반가이 맞으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해남 읍내 30여년 된 내공 있는 기사식당
대부분 기사식당 음식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기사식당이란 이름은 손맛 없이는 쉽게 내걸 수 없다. 고등어 반을 독특하게 갈랐다. 대개 등뼈를 기준으로 2분할 하는 데, <중앙정>에서는 반토박을 냈다. 깻잎장아찌, 도라지볶음. 멸치볶음. 묵은지, 갓김치, 젓갈, 김무침, 계란부침, 돼지고기볶음, 미역국 등 전형적인 집밥 한상이 나왔다.
반찬 양을 최소화해서 잔반이 남지 않도록 배려한 모습이 엿보인다. 노부부가 30여년 째 같은 장소에서 밥집을 한다고 했다. 한 블로거가 올린 사진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반찬도 거의 변함이 없는 듯 보였다. 꾸준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밥상, 7000원으로 흡족한 식사를 했다.
행촌문화재단 수묵기행과 남도음식 축제 ‘관광자원 시너지’
해남을 찾은 이유는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인 ‘예술과 함께 떠나는 남도수묵기행’이 진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행촌문화재단이 수행기관으로 2월부터 지금까지 19회를 진행했다. 남도 음식체험과 템플스테이, 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 방문, 전통주‧남도 차문화 체험, 행촌미술관 전시관람 및 수묵체험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질 좋은 체험관광 상품이다.
행촌문화재단은 해남종합병원 설립자 행촌 김제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행촌 선생은 생전에 해남과 예향 남도지역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창작 과정에 동참하기를 즐겨했다. 또 예술가들이 해남에 머물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 남도 예술문화를 풍성하게 만들고자 노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의업(醫業) 2대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이 행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경남에는 예향 통영이 있다면 전남에는 그에 필적할만한 해남이 있다고 본다. 물론 시군이라는 측면에서 체급이 다르지만 해남이 가진 자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남도 문예의 한축으로써 묵직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을 정도의 역사‧문화‧예술‧관광‧식문화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때마침 10월31일부터 11월3일까지 4일간 해남미남축제를 올해 처음 여는 등 식문화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관광매력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야심차게 올해 첫 회를 여는 해남미남축제는 천년고찰대흥사 일대에서 일촌일식 푸드관, 해남미남 음식명인관, 2019인분 닭장떡국 나눔 등 킬러 콘텐츠를 선보인다. 음식칼럼리스트, 각종 요리대회 심사위원, 문화관광축제 평가위원인 필자 입장에서 해남미남축제는 남다른 관심이 간다. 달려 가보고는 싶지만 해남은 늘 물리적 거리감이 결정장애를 일으킨다.
토종닭 육회부터 닭죽까지 5가지 코스요리
해남을 떠나기 전 <진솔가든>이란 닭요리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남은 닭요리가 발달돼 있는데 해남읍 연동리, 삼산면 계동리 등에 닭요리촌이 형성돼 있다. 토종닭 한 마리(4인 기준)를 잡아 닭고기육회, 통닭, 닭주물럭, 닭백숙, 닭죽 등 갓 잡은 토종닭으로 5가지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 원조집은 <장수통닭>이지만 코스요리는 <진솔가든>에서 가장 먼저 개발했다고 한다. 애피타이저로 닭가슴살과 모래주머니 육회와 날개, 닭발, 닭다리 한쪽을 튀긴 통닭이 나온다.
잠시 후 닭가슴살 위주로 만든 닭주물럭이 나오고 뒤이어 나머지 반쪽을 삶은 백숙과 닭죽이 차례로 제공된다. 닭에 집중하다보니 밑반찬엔 손이 잘 가질 않는다. 한번 쯤 경험할만한 음식이다. 간판은 진솔통닭이지만 영수증에는 상호가 <진솔가든>으로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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