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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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1-15 00:02:10

홍콩사태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날로 악화되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선 시위대도 이를 진압하는 경찰도 이제 이성을 잃었다고 할 정도로 서로를 향해 극단적으로 대응하고 나섰고 현지는 전시 상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부터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 민주화 시위는 애초에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로 시작됐으나 이후 민주화 요구로 이어지면서 장기화 됐다. 그러다가 최근 민주화 시위 관련 첫 사망자가 발생하고 곧 이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정조준 실탄 발사로 피해자가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 홍콩 시민들의 거센 분노를 일으켰다.

경찰이 맨손의 시위 참가자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 장면은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시위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고 이 동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곧바로 전 세계로 퍼졌다.

현지 시각 11일 아침 7시 20분쯤 홍콩 사이완호 지역에서 포착된 사건 현장 영상에는 홍콩 경찰이 시위 참가자 한 명을 검거한 순간 또 다른 시위자가 달려오자 그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여느 홍콩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이 21세 남성은 경찰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경찰이 그를 겨눠 발사한 총에 맞아 곧바로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후 경찰은 쓰러진 피해자 구조를 위해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엎드려 놓은 채 무력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이날 총 3발의 실탄을 발사해 다른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홍콩 경찰의 이같은 과잉 대응은 지난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이 법에 따라 폭력을 진압·처벌하라면서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시한 이후로 두드러졌다.

경찰의 강경 대응에 분노한 일부 네티즌들은 시위 참가자에 실탄을 발사한 경찰관에 대한 신상털기를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해당 경찰 자녀들에 대한 살해 위협까지 나오는 등 시민들의 대응 역시 날로 과격해지고 있다. 우산에서 시작된 평화로운 시위는 이제 벽돌을 던지고 친중 발언을 한 남성에게 불을 지르는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변해갔다.

지난 4일 진압 경찰을 피하다 주차장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홍콩과기대 2학년 알렉스 차우츠록이 홍콩 민주화 시위 사태의 첫 사망자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집회에 참가한 홍콩인들은 경찰의 과잉 대응이 차우츠록을 사망으로 몰고 갔다고 비난했다.

공식적으로는 차우츠록이 첫 희생자이지만 현재 홍콩에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죽음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방한한 홍콩의 인권운동가 얀 호 라이 교수는 “젊은 시위 참가자 8명이 갑작스레 자살했으며 2명이 의문사했다는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3000명이 넘는 시민이 체포됐고 경찰이 마구 쏴대는 최루탄에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얀 교수는 “지난 주 차우츠록의 죽음을 겪으면서 우리는 한국의 청년 ‘이한열’을 떠올렸다”고 말하면서 한국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홍콩 시위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경찰의 폭력에 홍콩 시민들의 저항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인들은 현재의 홍콩 민주화 시위를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비유하며 한국인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지고 있다는 소식은 벌써부터 들려왔다. 얀 교수 뿐 아니라 다른 중화권 민주화 인사들도 한국을 향해 홍콩 민주화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들은 자유 대한민국을 모델로 삼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의회 외교위원회는 지난 9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심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홍콩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지지를 호소하는 홍콩인들의 요청에 우리 정부는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물론 정부로서는 미국에 내정간섭 말라면서 비난을 퍼붓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가에 게시한 홍콩 민주화 지지를 표현한 ‘레넌벽’이나 플래카드를 손괴하는 중국 유학생들로 보이는 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두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13일 저녁 서울 고려대 학생회관에서 열렸던 토론회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둘러싼 한·중 대학생들의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냈다.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토론회에 참가한 한국인·홍콩인·중국인 여러분 환영합니다” 라는 안내문을 내걸은 토론장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대학생이 예상 인원보다 몇 배 모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